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친박 비박이 다시 임전무퇴의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주도권을 놓고 김종인 세력과 문재인 세력이 맞서고 있다. 국민의당은 승리에 도취되어 대통령 결선투표제부터 하자고 선언했다.
이번 총선은 우리 경제로 보아 보통 중요한 선거가 아니었다. 불안한 민생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국민이 다시 일어서는 축복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선거가 흙탕물 싸움으로 번지면서 거꾸로 혼란과 좌절을 안겼다.
이런 상황에서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선거가 권력의 싸움판으로 변하면 보통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느껴 투표를 피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거를 방치할 경우 나라와 민생이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번져 많은 국민들이 투표소를 찾았다. 특히 대량실업으로 삶이 불안한 청년들이 대거 투표에 나섰다. 그 결과 정치인들이 다시 태어나 국정을 혁신하라는 여소야대와 3당의 국회가 탄생했다.
그러나 국민의 절박한 요구가 참담하게 무너지고 있다. 자칫하면 기존의 양당 계파전이 3당 계파전으로 치달아 정치가 더욱 혼탁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기본의식과 자세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소속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 이전투구를 불사하고 표를 얻기 위해 무조건 국민 앞에 허리를 굽힌다. 그러나 당선만 되면 국민 위에 군림하여 권력을 누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강화와 이익추구에 몰두한다.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당선이 안 되면 아예 다른 정당을 찾아 철새여행을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선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고 선심공약을 남발하여 정치와 경제를 한꺼번에 망치는 역기능을 낳는다. 이번 선거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정경유착의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선거전에는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복지 향상 등 국민을 위한 갖가지 경제정책이 나온다. 그러나 일단 선거가 끝나면 정부가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대기업에게 규제완화, 조세지원, 금융지원 등의 특혜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선거 때마다 정경유착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경제력 집중이 심화한다. 이에 따라 경제양극화가 계속 심화하고 성장동력이 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아예 경제와 민생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야는 무조건 싸움을 멈추고 반성과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여야 3당은 모든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나라와 국민을 위한 협치 체제로 거듭 나야 한다. 이에 따라 국민이 정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여 경제를 정경유착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당장 국회에 계류 중인 쟁점법안 논의에 여야가 힘을 합치는 모습부터 보여 정치개혁의 시작을 알려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겸임교수, 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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