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4월 25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A 씨(32)등 9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유령법인 39개 명의로 대포통장 300여 개를 개설한 후 필리핀 현지 환치기 업자 및 스포츠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팔아넘겼다.
대포통장 개설 및 유통 수법 개요도. 사진제공=부산지방경찰청
경찰에 따르면 이전에 대부업을 했던 A 씨는 지난 2013년 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인감증명서와 위임서를 200만~300만 원에 사들였다. A 씨는 이들의 명의로 법인 등기절차와 사업등록 절차를 거친 후 유령법인을 개설했다. A 씨는 신용불량자들이 금융권으로부터 신용 대출을 받지 못하는 걸 알고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 일당은 1인 명의로 최대 7개의 법인을 설립하고 1개의 법인 명의로 2~5개의 계좌를 만들었다. 이렇게 개설된 통장을 개당 50만~100만 원에 필리핀 업자들에게 팔아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2011년 4월 자본금 총액에 대한 제한규정이 폐지돼 이들의 범행이 더 손쉬워졌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유한회사 설립을 위해 1000만 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는 단돈 100원만 있으면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 이렇게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총 2억 2000만 원에 달한다.
이들은 총책, 통장 개설책, 통장 밀반출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다. 또한 타인명의의 대포차량이나 대포폰을 사용해 그간 경찰의 수사를 피해왔다. 경찰은 이들의 정보를 입수하고 필리핀 코리아데스크(필리핀에 파견된 한국경찰)와 필리핀 이민청의 협조를 받아 수사에 들어갔다.
대포통장 모집 및 판매 조직도. 사진제공=부산지방경찰청
지난 3월 10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체포된 F 씨(53)는 국내로 송환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F 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국내 일당들로부터 대포통장 20개를 받아 일부는 자신의 환치기 계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현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개당 100만 원에 되팔아 넘겼다. 수사결과 F 씨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에게 판 대포통장 규모는 150억 원에 이르렀다. 경찰은 현재 도박사이트 운영자와 현지 대포통장 유통책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이들에 대한 행방을 추적 중이다.
이번 사건은 파나마 페이퍼스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령법인이 탈세 외에 또 다른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 3월 3일 인천지방경찰청은 유령법인 명의로 만든 대포통장 1000여 개를 보이스피싱 조직에 팔아넘긴 일당을 검거했다. 지난해 4월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5000만 원의 수익을 챙긴 조직이 붙잡히는 등 유사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유령법인 관련 범죄가 많이 일어나서 법인계좌 개설에 관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또한 올해부터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으로 법인의 신원, 실제 소유자, 금융거래의 목적, 자금의 원천 등 고객확인과정이 강화됐고 관련 증빙서류도 철저히 검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