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당선인은 “삼성 X파일 사건으로 3심의 판결을 거쳐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유권자의 4심으로 다시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며 유권자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노 당선인이 26일 여의도 정의당 당사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삼성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3년 만에 돌아왔다. 그간 원외에서 답답함과 갈증은 없었나.
“이중삼중이었다. 유권자의 선택을 못 받아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 대법원의 납득하기 힘든 판결로 의원직을 잃었다. 억울함과 함께 답답함이 컸다. 또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까지 새누리당이 집권하면서 그 이전 이뤘던 적잖은 진전과 성과들이 허물어져가는 것을 봤다. 더 나아가는 것도 부족한데 경제민주화나 정치민주화나 후퇴한 측면이 많다. (원외에서 이를 지켜보자니) 답답함이 가중됐다.”
―어렵게 복귀한 만큼 유권자에 대한 고마움과 감회가 새롭겠다.
“강제로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유권자의 손으로 다시 등원하게 됐다. 삼성 X파일 사건으로 3심의 판결을 거쳐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이 유권자의 4심으로 다시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강제해직 당했지만, 국민의 최종심에 의해 복직된 것이다. 또 새누리당의 아성이라는 곳에서 당선됐다. 뭔가 우리 정치발전과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에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왜 지역 유권자들은 노회찬을 선택했을까.
“창원 성산에 2월 1일 출마했다. 지역 유권자들이 불과 두 달 전에 온 사람을 선출해 준 거다. 난 이곳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했던 것도, 성과를 냈던 것도 아니다. 냉정히 봐서 유권자들이 저를 선택했던 것은 그동안 저의 정치에 대한 평가다. 우리 지역구에서 정당 투표를 보면 정의당은 4위다. 그럼에도 저를 선택해주셨다. 어떤 분이 말씀하시더라. ‘노회찬 같은 사람 몇 명은 국회에 있어야 한다’고. 저의 지난 과정을 대체로 알고 계시기 때문에 평가해 주신 거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여소야대’라는 선거결과가 나왔다.
“기성 정치세대에 대한 심판이다. 정교하게 심판했다. 지역구 선출은 새누리당을 집중 심판했고, 그 반대급부로 더민주가 득을 봤다. 정당투표로는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심판을 받았고 그 반대급부로 국민의당이 득을 봤다. 국민의당의 득표는 평가가 아니라 앞으로에 대한 기대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목표로 내세웠던 10석을 채우지 못했다.
“이 대목이 핵심이다. 왜 정의당은 이를 못 가져갔고, 국민의당이 가져갔느냐. 우리가 결국 밀린 거다. 물론 환경 탓도 있다. 제도와 구도의 측면에서 정의당이 선전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환경 탓만 할 수 없다. 정의당 책임이다. 정의당이 돌파를 했어야 했지만, 제대로 했느냐. 이번 선거는 기성정당에 식상해서 제3당에 표를 주는 것인데, 여기서 정의당은 유권자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한계를 보인 셈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의 19대 비례대표 의원들 중 살아남은 이는 한 명도 없다.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정치자원이 적다. 원내 경험이 있는 자원이 많지 않은 상황 속에서 현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물론 반성하고 성찰할 대목이지만 분명 당선될 수도 있는 분들도 있었다. 선거전략의 문제, 당의 지원 등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앞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관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이번 과정에서 획득한 것이 향후 지역에서 성과를 내는 기초를 이뤘다고도 할 수 있다.”
21일 국회 216호에서 작업자들이 국민의당 당 대표실 내부 공사를 하고 있다. 그동안 216호는 정의당이 회의실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노회찬, 심상정은 앞으로도 당선 되서 4~5선 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두 사람 말고 또 누가 있냐’다. 지금까진 이렇다 할 답을 못 얻었다. 국민에게 인정받는 정치 자원을 늘리는 것이 핵심 과제다. 당에서도 이는 화두다. 차세대 자원을 기르는 다양한 시도가 있다. 사실 이번에도 30대 후보자들이 지역에 출마한 사례도 있었고, 아깝게 낙선했지만 비례대표 6번으로 출마한 조성주 후보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다.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
―많은 진보정당들이 총선에서 노크했지만 결국 원내 진입한 진보정당은 정의당뿐이다. 진보진영 내에서 통합과 책임 역할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사실 그 역할이 크다. 정의당은 원내 유일한 진보정당이다. 숙명이다. 20대 국회에서 국민들이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경제민주화’다. 진보정당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진보세력들이 과거에 비해 부진하고 후퇴한 상황이다. 여기에는 분명 분열이 한 요인이다. 이를 확장시키고 묶어세우는 것은 원내의 정의당이 강한 책임과 역할로 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피할 수 없다.”
―야3당 구도에서 정의당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현재의 구도는 국민이 정해준 구도다. 우리는 이제 제4당이면서 야3당의 막내이며 유일한 진보정당이다. 특히 야3당의 관계는 경쟁과 협력이다. 경쟁에 있어서는 유일한 진보정당답게 진보적 정책과 의제를 선점해 나갈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야권의 두 정당(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협력하지 않고 다투고 경쟁만 하는 경우다. 특히 대권의 길목에서 말이다. 이때 정의당은 야당의 일원으로 민의를 전달하는 통로로서 중대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앞서 20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를 중요한 주제로 강조했는데.
“이는 지난해 초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 국민들이 ‘20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첫 손에 꼽은 것이다. 과거에는 성장이 1위였지만 이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정의당도 단순히 ‘경제민주화’를 구호로서만 내세우는 문제제기형 정당에서 책임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정의당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온 것은 사실이다. 다만 우리도 정치를 하는 정당이다. 이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책임 있는 비전을 동시에 내놔야 한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의 문제도 그렇다. 이로 인한 피해도 걱정해야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된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인가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것이 과거와는 다른 정의당에 요구되는 모습이다.”
―당명 변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회민주당’이 유력하다고 하는데.
“이미 지난해 10월 진보세력의 1차 통합 당시 20대 총선 후 6개월 이내에 당명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이 문제는 곧 논의될 것이고 일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 정의당이 사회민주주의적 노선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다수 당원이 공감한다. 이 때문에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지난해까지는 절반 정도 공감대가 있었다. 다만 지금은 새로운 당원들도 들어왔고 새 국면이기 때문에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결국 결정은 당원의 총의에 의해서다. 당원의 다수가 원하는 당명이 채택된다.”
―20대 국회의 정국은 곧 차기 대선과 연결된다. 정의당은 어떻게 준비할 예정인가. 지난 대선에서 정의당은 결국 최종 후보를 내지 못했는데.
“상식적으로 독립 정당이 자기 후보를 내는 것이 맞다. 다만 야권 연대와 후보 단일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기본적으로 정의당은 대선까지도 야권연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핵심은 전략적인 연대다. 정책을 공유하고 책임도 공동으로 지는 연립정부, 이러한 선거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