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든 음란물은 이곳으로 통한다.”
지난 4월 11일 폐쇄된 소라넷을 지칭하던 말이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최근 경찰 조사에서 파악된 이 사이트의 규모를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네덜란드 경찰과 공조해 소라넷을 폐쇄한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사이트의 회원수를 최소 100만 명으로 추정했다. 통계상 누리꾼 35명 가운데 1명은 소라넷 회원이라는 얘기다. 남성만 따지면 그 비율은 훨씬 더 높아진다.
여기에 압수된 소라넷 서버 15개는 총 120TB(테라바이트) 분량의 정보를 담고 있었다. 1TB는 1024GB(기가바이트)로, 음란물 한 편을 1GB로 보면 약 12만 개의 음란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이를 통해 경찰은 소라넷 운영자가 사이트 운영만으로 1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대형 음란 사이트가 폐쇄되면서 음란물 공유도 한풀 꺾일 것으로 내다 봤다. 하지만 최근 오히려 풍선효과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부터 존재해오던 음란물 사이트에 유입자가 늘어나는가 하면, 제2의 소라넷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 이들 사이트를 통해 소라넷에 업로드됐던 대량의 음란물들이 장소만 바꿔 그대로 공유되거나 추가되고 있다.
먼저 소라넷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던 ‘XX센터’의 경우, 최근 유입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약 3년간 이 사이트를 이용해왔다는 서 아무개 씨(35)는 “그동안 이 사이트에는 성인 자료나 P2P에서 유출된 자료 공유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경찰의 소라넷 수사와 폐지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이곳에 ‘도촬’ ‘노예녀 인증’ 등 범죄 인증에 가까운 위험한 수위의 자료들이 올라오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 게시판이나 댓글의 내용이 달라진게 확연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병원 커뮤니티로 보이지만 실상은 음란물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는 최근 다양한 ‘번개(모임)’ 게시물들도 올라오고 있다. 비공개 댓글 형태로 카카오톡 아이디나 휴대폰 번호가 교환된다. 나이트클럽을 함께 가기 위한 ‘조각’이라는 형태의 모임도 이를 통해 자주 이뤄진다. 일부는 상대방 여성의 사진을 촬영해 홈페이지에 후기와 인증을 남긴다. 해당 여성의 촬영 동의 여부는 알리지 않는다.
2012년 문을 연 이 사이트는 겉으로는 병원 커뮤니티다. 외과, 내과, 응급실, 영상의학과 등 일곱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실상은 폐쇄적인 음란물 사이트다. 소라넷과 같이 회원제 성격으로 일정 레벨에 오르지 못하면 게시물을 쓸 수도, 볼 수도 없다. 레벨이 오르려면 게시물을 꾸준히 올려야 한다. 음란물 공유가 활발히 이뤄질 수밖에 없는 운영 시스템이다.
여기에 독버섯처럼 이곳, 저곳에서 피어나고 있는 ‘제2의 소라넷’ 사이트들도 한몫 거들고 있다. 이들 사이트가 늘고 있는 정황은 기존에 새로운 접속 사이트 안내를 해왔던 ‘소라넷 트위터’만 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아직도 소라넷에 대해 “언제 재오픈하느냐”며 문의하는 ‘갈 곳 잃은’ 기존 회원들의 답글 사이에,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변종 사이트 안내 글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
이들 사이트는 대부분 ‘XX넷’으로 이름부터 제2의 소라넷을 표방하고 있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국적별로 음란물을 나눠 공유하거나, 회원들이 자유롭게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커뮤니티 게시판들을 볼 수 있다. 해당 게시판에 업로드된 게시물들은 대부분 ‘어플로 꼬신 XX’, ‘골뱅이 처자’ 등 자극적인 제목이 대부분이었고, 일부는 소라넷에서 공유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던 사진 등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 이들 사이트에는 공통적으로 각종 음란물 사이에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조건만남을 주선하는 게시판들이 존재했다. 해당 게시판에는 지역별‧종류별 성매매 업소 정보는 물론, 업소 여성들의 사진과 이름 프로필과 함께 ‘실장’들의 연락처 등이 올라와 있었다. 그곳을 이용한 사람들의 후기 역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트 가운데 일부는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원가입을 해야 하더라도 휴대폰으로 인증번호만 받으면 가입할 수 있는 등, 성인인증 절차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다. 청소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제2의 소라넷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또한 별도의 음란물 사이트 외에 SNS도 음란물 유통창구로 변질돼 있다. ‘텀블러(tumblr)’가 대표적이다. 신상이 노출될 염려가 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달리 텀블러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자유로운 콘텐츠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게시글이 삭제되는 비율이 낮다. 이곳에서도 소라넷에서 공유되던 음란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텀블러에서는 여성이 야외 노출 등을 ‘직접 찍어 올리는’ 게시물들이 인기가 많은데, 최근에는 이를 가장한 음란물들 사이에 성매매 업소 광고를 하는 계정이 늘고 있다.
그동안 텀블러는 다른 SNS에 비해 폐쇄적이라 검색 편의성이 떨어져 ‘알 만한 사람들만 안다’며 검색어를 모르면 접근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포털 검색창에 ‘제목없음’만 입력하면 음란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음란물과 전혀 연관이 없을 법한 단어로 검색이 가능하게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국내법을 준수하고 있다. 해외에 서버가 있다고 해서 음란물 유통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제목없음’ 등과 같은 용어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이 URL에 대한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라넷에 대한 경찰의 강력 대응에도 이 같은 음란물 사이트와 SNS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은, 역시 소라넷과 같이 주로 서버가 해외에 있기 때문이다. 유해사이트로 분류하고 접속을 차단해도 금세 도메인을 바꿔 운영을 재개한다. 서버 위치를 파악하더라도 금방 차단하기는 어려운 형태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소라넷 폐쇄한다고 해서 불법 음란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은 경찰도 잘 알고 있다”며 “소라넷 운영진 검거뿐만 아니라 아류 사이트 등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도 “신‧변종 음란물 공유 차단을 위해 포털과 SNS 등 업체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며 “모니터링 등을 강화해 각종 음란물을 접속차단하고 모바일에서도 접속이 불가능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