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혁신도시 농촌진흥청 앞 철제 울타리에 설치된 유전자조작 작물 경고 문구.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농진청은 일부 경고 표지판을 다른 장소로 옮겼다.
“생물학적 위험(Bio Hazard)지역이니 관리자의 허락 없이는 출입을 금합니다.” 전라북도 정농마을 주민 여성만 씨는 마을 근처에서 이상한 표지판을 발견했다. 철제 울타리 안으로 출입을 통제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여 씨는 “농사를 짓기 위해 늘 오가는 길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경고 문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후 여 씨는 이곳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GM 벼를 비롯한 GM 작물들이 야외에서 시험 재배되고 있었던 것.
해당 지역은 농촌진흥청과 국립식량과학원이 위치한 전북 완주군 이서면 혁신도시다. 지난해 농진청 등은 이곳으로 청사를 이전했다. 여 씨와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시험 재배에 대한 사전 고지나 설명은 없었다고 했다. 농민들이 직접 농진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알게 됐고, 우연히 발견하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진 후 앞서의 정농마을 주민들과 함께 전북지역 농민단체, 45개 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시험 재배 단지 내 GM 작물의 씨앗과 꽃가루 등이 유출돼, 인근 농작물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 실제 시험 재배 단지 인근은 대부분 유기농 쌀을 재배하는 농가였다. 가장 가까운 곳은 시험 재배 단지에서 불과 3~4m가량 떨어져 있었다. 범위를 넓혀보면 이 농가들은 국내 최대 쌀 생산지 중 하나인 김제평야로 이어진다.
# GMO, 인류 식량난 돌파 해법 VS 파괴의 씨앗
GMO는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의 약자로 식물이 해충이나,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고 가뭄에도 살아남게 하기 위해 본래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생산된 농산물을 말한다. GMO 찬성 측은 인류 식량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고, 반대 측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인체에 질병을 유발시키는 ‘파괴의 씨앗’이라고 주장한다.
GMO는 지난 1996년 해외에서 처음 상용화됐지만,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작물’이 인체는 물론 주변 자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를 확인하려면 장기 누적 효과까지 따져봐야 하는데, 이는 한 세대(30년)가 지나야 가능하다.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농진청의 GM 작물 시험 재배를 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농진청, GM 작물 특허 출원 그리고 시험 재배
하지만 농진청은 그동안 GM 작물을 직접 개발하고 시험 재배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처음 폭로한 것은 GMO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도 우연한 기회에 해당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익산 지역 Non-GMO 선언을 위해 활동하던 중, 지난 2015년 9월 농진청이 벼에 대해 유전자조작 기술 상용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알게 됐다”며 “이후 익산에 위치한 농진청 호남작물시험장에서 재배된 유전자 벼가 특허청에 출원됐고 지난 2015년 12월 29일 등록결정서가 발송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허 등록 결정서를 보면, 지난 2014년 농진청은 벼의 염색체에 항산화 성분이 있는 ‘라스베라트롤’ 합성 유전자를 삽입한 벼를 특허 출원했다. 이 벼는 지난 2013년 전북 익산과 수원, 밀양에서 시험 재배됐다고 명시돼 있다. GM 작물 연구‧개발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 전북, GM 작물 연구‧개발 중심지
정부가 GMO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 2011년 농진청 산하에 GMO 작물개발사업단을 발족하면서부터다. 이후 사업단은 앞서의 익산 지역에서 시험 재배된 벼를 비롯해 가뭄에 강한 벼, 특정 제초제에 강화된 콩과 벼, 바이러스 저항성 GMO 고추 등 각종 GM 작물을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여기에 한국생명공학안전성센터에 안내된 실험승인현황을 보면, 지난 2015년 이후에는 제초제 저항성 들잔디, 바이러스 저항성 형질전환 감자, 레스베라트롤 합성 GM 벼 등이 야외 시험 재배 허가를 받았다.
농진청은 지난해부터 청사가 있는 전북 완주군 등에서 GM 작물을 시험 재배했다.
실제로 앞서의 작물들은 이후 전국 곳곳에서 시험 재배된다. 농진청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 시험 재배 허가면적은 348개 시험포장 단지를 포함해 20만 9876m²로, 그 중 농진청이 위치해 있는 전주와 완주의 시험 재배 허가 면적은 115개 시험포장 단지를 포함해 20만 6713m²다.
지난 2015년 GM 작물은 농진청 청사가 있는 전북 완주군과 전주, 밀양, 평창, 수원, 천안, 무안 등 총 7곳에서 벼, 콩, 유채, 감자 등 10개 품종이 시험 재배 됐다. 앞서의 정농마을의 경우 마을 바로 앞에서 사과가 시험 재배되고 있다.
여기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총 13개 국공립‧사립대학과 11개 민간‧공공 연구소도 GM작물을 연구하고 있다. 모두 정부 지원 사업이다. 연구소는 농진청뿐만 아니라 미래부 등 각 정부부처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 중이다.
다만 해당 연구소들은 야외 시험 재배 단계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GM 벼와 고추, 콩, 억새 등을 연구‧개발 중이다. 야외 시험 재배 승인은 아직 받지 않았다. 장기 과제기 때문에 연내 승인 신청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 GM 작물 유출 피해 우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전북이 국내 GM 작물 야외 시험 재배의 ‘중심지’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농민들은 “GM 작물이 주변 농작물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농진청이 “GM 작물 재배시에는 방풍림과 방충망 등 차단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유전자변형 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 통합고시’를 근거로 야외 시험 재배 단지에 철제 울타리 등을 설치했지만, 농민들은 이러한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김은진 교수도 “벼가 자가수분을 한다 해도 바람이나 태풍에 꽃가루가 날릴 경우, 곤충과 새, 쥐, 미생물이 옮길 경우 등 주변에 유출될 가능성과 변수는 다양하다. 안심할 수 없는 문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미국에서는 GM 작물이 시험 재배장에서 일반 농장으로 유출돼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지난 2006년 미국 최대 쌀 수출업체인 라이스 랜드의 수출용 쌀에서 GMO 쌀이 발견됐다. 이 GMO 쌀은 지난 2002년 GMO 개발 업체인 바이엘사가 시험 재배를 하다 중단했는데, 그 사이 씨앗이 인근 농장으로 유출된 것이다. 결국 바이엘사는 피해 농가들에게 총 7억 5000만 달러(약 8500억 원)를 배상했다.
또한 지난 2013년 4월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제초제를 아무리 뿌려도 죽지 않는 밀이 발견됐다. 이 역시 GMO 개발사인 몬산토가 10여 년 전 해당 장소에서 제초제 내성 형질의 GMO 밀을 시험 재배한 사실이 밝혀졌다.
두 사례 모두 한국 정부에 즉시 알려졌다. GMO 쌀의 경우 정부는 지난 2006년 8월 미국의 쌀 수입을 중단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으며, 밀의 경우에는 식약처가 지난 2013년 5월 해당 밀의 국내 유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내 유통제품 및 제조업체의 재고품을 전량 수거해 검사하기도 했다.
또한 국내에서 수입한 GM 작물이 전국 곳곳에서 자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9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생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09년에서 2014년 사이에 전국 59곳에서 옥수수 면화 유채 콩 등 총 184건의 GM 작물이 발견됐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015년 농진청 국정감사에서 “일부 축산농가 주변에는 GMO 작물이 군락을 이룬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며 “GMO가 자연환경에 유출될 경우 인근 자생종이나 재배종으로 유전자 전이가 일어나 자연생태계가 교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농진청 “적법한 시험 재배, 연구 개발은 계속될 것”
농진청은 “관련법에 따른 적법한 시험 재배였다”는 입장이다. 류태훈 농촌진흥청 연구정책 연구관은 “GM 작물에 대한 시험 재배와 안전관리는 ‘유전자변형작물의 국가 간 이동에 관한 법률(LMO법)’과 동법의 통합고시 및 농진청 규정에 의거해 관리하고 있다”며 “그동안 한국농업생명공학안전성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시험재배 현황도 공개해 왔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그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GM 작물 연구 개발 현황을 공개해 왔다고 밝혔다.
여기에 이양호 농진청장은 지난 18일과 26일 두 차례 기자간담회를 열고 “GM 벼 상용화 계획은 논에서 벼를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식물세포 배양을 통해 화장품 원료(레스베라트롤)를 얻는 계획이다. 벼 종자까지 사용 후 모두 소각 처리해 환경에 방출되지도 않게 된다”며 “배양조직을 식품으로 이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식용으로 승인받으려면 식약처 등 까다로운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농진청은 GM 벼 외에 시험 재배한 것으로 드러난 콩과 유채 등 다른 GM 작물 용도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제초제 저항성, 바이러스 저항성으로 개발해 특허 출원한 작물은 식용이 맞나”는 질문에 류태훈 농촌진흥청 연구정책 연구관은 “아직 용도를 정확히 설정할 단계는 아니다. 정해진 바 없다”고 짧게 말했다. 또한 향후 또 다른 시험 재배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환경 위해성 평가 과정에서 야외 시험 재배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GM 작물 시험 재배 논란 예고
GM 작물 시험 재배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농진청이 “GM 작물 개발 과정에서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자료 공개 등 소통을 통해 안전 우려 또한 불식시키겠다”면서도 “국가 기술경쟁력 확보와 미래를 대비해 수행하는 농업생명공학 연구의 전면 중단은 국가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중단 사례도 없는 만큼 산업 소재 위주의 GM 작물 연구는 지속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대하는 전북 농민단체와 45개 환경단체는 지난 29일 농진청 후문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거리행진을 했다. 향후 전국으로 확대해 위원회를 꾸리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실험 쥐들 심각하게 손상시킨 그 옥수수 지금도 수입…GMO ‘누적 효과’ 불안감 유전자재조합식품(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은 유전자변형식품 또는 유전자조작식품으로도 불린다. 유전자 재조합은 생명체의 암호인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유전자를 넣고 빼거나 순서를 바꿔 넣고 새로운 특징을 가진 생물로 변형시킨다. 유전자 조작은 과거부터 존재했다. 식량 증산과 품질 개선을 목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육종’이다. 씨 없는 수박, 방울 토마토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육종은 같은 종이나 아주 가까운 종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GMO는 세균과 바이러스, 다른 동‧식물에서 추출한 유전자로 만든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 불가능하다. 즉, GMO는 전통적인 육종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새로운 생명체’다. 안전성 논란은 여기서 촉발된다. 새로운 생명체인 GMO가 인체에 미치는 ‘누적 효과’ 때문이다. 사람과 가축, 자연에 무해하다고 알려졌지만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면서 자연 생태계를 위협해 사용이 금지된 DDT 살충제, 프레온(CFC) 가스 등의 사례로 볼 때, 새로운 것을 자연환경에 도입하려면 장기적인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GMO의 장기적 누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2년 프랑스 칸 대학 연구진의 GMO 관련 연구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연구진은 인간의 유전자와 80~90% 동일한 실험쥐의 전 생애(2년)에 걸쳐 식용 GMO 작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는데, 그 결과 GM 옥수수를 장기간 섭취한 쥐 중 4분의 3에는 종양이 생겼고, 암쥐 70%가 조기 사망했다. 소량을 섭취한 쥐들도 심각한 간 및 신장 손상을 보였다. 실험에 사용된 GM 옥수수는 현재 국내에 수입되고 있다. 반면 일부 GMO 개발사들은 “20년이 지났지만 인체에서 이상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한 세대는 30년으로 구분하고 있고, 전 생애에 걸쳐 GM 작물만 먹은 쥐에 대한 실험 결과가 인체에 나타날 때까지 인간이 얼마나 섭취해야 할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즉, 쥐에게 나타난 증상이 사람에게도 나타날 가능성을 정확히 확인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
수입 작물로 간장·빵·과자…피할 방법 없는 ‘GMO’ 전문가들은 텃밭을 가꾸지 않는 한 우리나라 식탁에서 GMO를 피할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표적 수입 GM 작물인 대두와 옥수수의 자급률은 수입을 하지 않고서는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일반 대두나 옥수수는 가격이 비싼 데다 주 수입국인 미국이 전체 재배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농장에서 GM 작물을 키우고 있어 일반 작물을 골라 수입하기도 어렵다. 즉, 선택의 여지가 적다.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GMO 수입 현황과 시사점’을 보면 한국인이 지난 2014년 먹은 전자재조합식품(GMO)의 양은 1인당 45kg에 이른다. 미국인 평균인 68㎏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같은 기간 1인당 쌀 소비량 65kg과 비교해 보면 꽤 많은 양이다. 지난 2014년 우리나라는 식용 GMO 곡물 수입량이 무려 228만 톤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1위를 기록했다. 수입된 GMO의 대부분은 옥수수와 콩이다. 국내에서 승인된 식용 GMO는 콩, 옥수수, 면화, 카놀라, 감자, 알팔파, 사탕무 등 7개 작물, 총 122건이다. 이렇게 수입된 GM 작물 가운데 식용 콩은 99% 이상이 콩기름 제조에 쓰인다. 콩기름을 제조하고 남은 콩깻묵은 간장 등 장류 가공용으로 쓰인다. 또 콩깻묵에서 단백질과 탄수화물 성분만을 추출해 만든 분리대두단백도 다양한 식품에 이용되고 있다. 옥수수는 대부분 전분과 전분으로 만든 감미료인 ‘전분당’에 사용되며 빵·과자·아이스크림 등 전분당이 들어가는 식품은 무궁무진하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