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의 실형을 받은 정 대표는 항소심에서 최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런데 이후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항소심에서도 실형이 선고되자 정 대표는 최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반환하라고 했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이미 착수금으로 받은 것이다. 돌려줄 수 없다”라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최 변호사는 정 대표가 손목을 꺾고 욕설을 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핵심은 돈의 액수다. 정 대표가 최 변호사에게 건넨 착수금이 무려 ‘20억 원’이라는 거액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은행에 ‘30억 원’을 예치해 두고 보석이 받아들여질 경우 ‘성공보수’ 명목으로 지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초 보석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 변호사는 인출권한을 반납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정 대표가 착수금 20억 원까지 반납하라고 하자 최 변호사가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법조계는 발칵 뒤집혔다. 우선 착수금 ‘20억 원’은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금액이라는 것이다. 다수의 변호사에 따르면 착수금은 일반사건의 경우 통상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선이라고 한다. 중형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사건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500만 원 선에서 위 아래로 착수금을 받는다. 맥시멈으로 해도 1000만 원이다. 20억에 성공보수 30억이면 50억인데, 기업 회장을 떠나 사안 자체가 일반적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안은 기업회장의 ‘폭행 갑질’과 법조계의 ‘고액 착수금’, ‘불법 성공보수’ 실태로 맞춰졌다. 하지만 26일부터 사안은 급 전환점을 맞았다. 정 대표의 ‘8인 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고 나서다. 지난 1월 정 대표는 최 변호사에게 해당 리스트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주며 “더 이상 로비를 하지 않게 하라”고 의견을 전달했다.
메모지에는 현직 부장판사인 K 씨, 검사장 출신 H 변호사와 로비스트로 추정되는 S 씨, 성형외과 의사 L 씨, 법조브로커 L 씨 등의 실명이 적혀 있었다. 리스트 실체가 나돌자 대검 한 관계자는 “대부분 정 대표와 상당한 친분이 있는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변호인 선임과 별도로 서로 아는 법조인들을 퍼즐처럼 종합해 움직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귀띔했다. 리스트가 공개된 후 ‘법조게이트’ 뇌관이 폭발할 조짐을 보였다.
리스트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른바 ‘빠져라’다. 정 대표는 리스트 메모지 한편에 ‘빠져라’라는 메모도 적어놓았다. 로비를 그만하라고 문구까지 남긴 셈인데, 법조계에서는 그 배경에 여러 설들이 나돌고 있다. 우선 로비가 발각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정 대표가 메모지를 작성하고 전달한 시점이 지난 1월, 즉 1심 재판이 끝난 후 정 대표가 ‘보석’에 사활을 걸고 있었던 시점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창 로비에 속도를 내야 할 시점에 찬물을 끼얹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로비 알력설’이다. 정 대표의 측근 ‘리스트 8인’과 최 변호사가 주도하는 변호인단 사이에 ‘교통정리’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당시에는 항소심에 대비해 변호인단을 새로 꾸리는 시기였다. 정 대표는 최 변호사를 선임하고 20억 원의 착수금을 건네며 대형 로펌이 포함된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하길 요구했다. 이후 최 변호사를 중심으로 24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이 구성됐다. 24명 대부분이 검사장, 대법관 출신 등의 전관으로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했다.
정 대표 측이 지난 26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선임 이후 정 대표에게 “다른 사람들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게 해달라”고 전했다고 한다. 정 대표 측은 이것이 ‘8인 리스트’와 ‘빠져라’라고 적힌 메모지가 나온 배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 변호사 측이 보석과 집행유예 등을 호언장담했기에 그것을 믿고 측근들을 배제시켰으며, 오히려 ‘50억 원’을 최 변호사가 먼저 요구했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 대표 측의 주장일 뿐,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최 변호사 측은 숨을 고르고 있다. 폭행 사건 이후 한동안 목소리를 내던 최 변호사 측은 잠잠한 상태다. 최 변호사 측 한 관계자는 “한동안 언론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전언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당시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최 변호사를 잘 아는 측근들은 최 변호사가 착하고 여리여리한 성격이기에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 변호사의 한 측근은 “대학에 다닐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동문 사이에서 너무 착해서 인기가 좋았다. 법조계에서도 인맥, 평판 모두 훌륭했다. 대형 변호인단을 꾸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신뢰가 있어서이고, 20억 원 고액 착수금을 받았다곤 하지만 실제로 가져간 돈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최 변호사는 폭력 사건 이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도박사건 1건만 맡은 게 아니다. (정 대표의) 민형사 사건을 포함해 최소 9건 이상에 대응해 변호인만 24명 이상이 동원됐다. 자금 지출 명세서를 보면 나는 사실상 수감 중인 정 대표의 ‘금전출납부’ 역할에 불과했다. 자문 변호사들에게는 시간당 비용은 깎지 않고 드렸다”라고 전하며 착수금 ‘20억 원’의 사용 출처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양측의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법조게이트’의 속살이다. 만약 정 대표의 ‘여 변호사 폭행 사건’이 없었다면 암암리에 숨어 있는 법조게이트가 이처럼 일파만파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폭행 사건과 쌍방 갈등이 없었다면 아마 정 대표의 로비 의혹도, 전관예우도, 법조 비리도 모두 수면 아래 묻혀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러한 사례들이 드러나지만 않을 뿐 얼마든지 법조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특히 이번 정운호발 ‘법조게이트’는 법조계에 만연한 각종 비리들이 총집합한 ‘백화점식 비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법조브로커, 로비, 고액 착수금, 불법 성공보수, 집사 변호사, 전관예우, 전화변론 의혹 등이 모두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번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서울변회 김한규 회장은 “피고인이 구치소 접견 도중 변호인을 폭행한 점, 항소심 자백사건에서 수임료가 무려 20억 원에 달하는 점 등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이라며 “법조계에 대한 커다란 불신이 야기될 수 있기에 철저한 진상파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