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불황 속에서도 벌크선사들은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팬오션㈜ 홈페이지
해상운송에 이용되는 선박에는 대표적으로 컨테이너선(Container Ship)과 벌크선(Bulk Carrier)이 있다. 컨테이너선이란 컨테이너를 적재해 운송하는 화물선을 뜻한다. 화물을 규격화된 컨테이너에 넣어 컨테이너를 선박의 내부와 갑판 위에 쌓아 수송하기 때문에 비용 절감, 하역 능률 향상 등의 장점이 있다. 현재 대부분 정기 화물운송은 컨테이너선으로 하고 있다.
벌크선은 화물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선창에 싣고 수송하는 화물선을 말한다. 철광석, 석탄, 곡물 등이 주요 화물이다. 그밖에 원유 등 액체화물을 운송하는 탱커선(Tanker)과 액화천연가스(LNG)를 나르는 LNG선 등도 있다.
대부분 해운사는 컨테이너 사업 부문과 벌크 사업 부문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전체 매출에서 각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컨테이너선사와 벌크선사로 분류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역시 컨테이너 부문과 벌크 부문을 모두 운영한다. 그러나 전체 매출에서 벌크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실제 지난해 한진해운은 전체 매출액의 92.4%를 컨테이너 부문에서 올렸다. 같은 기간 현대상선도 컨테이너 부문 매출액이 전체의 77.37%를 차지했다. 이 둘 해운사를 컨테이너선사로 보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팬오션㈜, 에이치라인해운, 대한해운을 벌크선사로 칭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해 팬오션㈜과 대한해운은 각각 전체 매출의 80%, 64.58%를 벌크 부문에서 벌어들였다. 에이치라인해운은 현재 운영 중인 선박 50척 중 86%인 43척이 벌크선이다.
팬오션㈜의 전신은 STX팬오션이다.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STX그룹에서 계열분리됐고, 같은 해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됐다. 하림그룹은 지난해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팬오션을 인수했다. 대한해운은 2011년 법정관리를 받았지만 약 2년 만에 경영정상화에 성공하며 법정관리에서 졸업했다.
에이치라인해운은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한진해운의 벌크선 부문 중 일부를 사들여 2014년 공식 출범한 신생 해운사다. 여기에다 올해 현대상선의 벌크선 사업 부문을 모두 인수하며 단숨에 업계 2위 벌크선사로 도약했다. 에이치라인해운의 최대주주는 한앤컴퍼니가 설립한 한앤코해운홀딩스로 9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 5%는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으나, 경영난 타개를 위해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위기가 국내 해운업 전체의 위기인 양 부풀려진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500억 원 이상 국내 해운사 40곳 중 현대상선을 포함해 단 4곳만 적자를 냈을 뿐 36곳은 흑자를 기록했다.
에이치라인해운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으로부터 벌크선 사업부문을 사들여 탄생한 벌크선사다. 사진=에이치라인해운 홈페이지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벌크선 사업 부문 매각이 ‘패착’이 아니었냐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컨테이너를 주력으로 하는 곳”이라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 매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회사의 주력 사업을 팔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벌크선 부문 중 철광석과 석탄 등을 운송하는 정기선(전용선)은 국가기간산업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10~20년씩 장기계약을 맺어 장기간 매출이 보장되는 사업”이라며 “시장에서 구매자들이 원하는 매력적인 자산을 매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컨테이너선사에 비해 벌크선사의 사정이 나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의 해운업계 관계자는 “컨테이너든 벌크든 현재 해운업 자체가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며 “다만 컨테이너선과 다르게 벌크선의 경우 ‘장기운송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계약된 물량을 매출에 일부 깔고 가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벌크선사들은 포스코, 한국전력 등 주요 고객사들과 철광석, 석탄 등의 장기운송계약을 맺고 있다. 팬오션㈜은 곡물운송에서 모기업과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팬오션㈜ 관계자는 “지난해 7월 합병 이후 9월부터 하림과 협업을 시작했고, 기존 곡물사업에 더해 상당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팬오션㈜ 등 일부 벌크선사의 ‘순항’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전체 해운업이 불황인데 단순히 벌크선사가 컨테이너선사보다 사정이 낫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팬오션, 대한해운은 지난 법정관리를 통해 부채를 모두 털어냈는데 당연히 이익이 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지난해 흑자를 냈지만 벌크선사인 창명해운은 얼마 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며 “주력 사업 부문보다 개별 회사가 어떻게, 또 얼마나 영업을 잘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