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조사를 위해 신현우 옥시레킷벤키저 전 사장이 26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 4월 28일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혐의로 세퓨 대표 오 아무개 씨를 소환조사했다. 세퓨는 2009년부터 14명의 사망자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불거진 2011년 폐업했지만 최근까지 별도 법인을 내세워 영업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작성한 문서(의결 제2012-202호)에 따르면 2005년 자본금 5000만 원을 들여 설립한 세퓨는 2010년 말 기준 연매출 3억 5000여만 원에 불과한 중소업체다. 상시 종업원은 7명에 불과했다.
2009년 세퓨는 자사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면서 제품 하단에 ‘인체에 무해하며, 흡입 시에도 안전’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살균제의 주원료로 사용된 PGH(살균제 용도의 화학물질)는 폐손상을 일으키는 독성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2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 1차 동물흡입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세퓨가 제조한 ‘세퓨 가습기 살균제’와 함께 옥시가 제조한 ‘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을 ‘이상 소견’이 담긴 제품으로 특정했다. 같은 해 한국환경보건학회지(38권)에 게재된 연구논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과 교훈>(최예용 등 4명 공저)에 따르면 역학조사에 응한 가습기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제품은 ‘옥시싹싹’(117회)으로 나타났다.
1991년 동양화학그룹(현 OCI)의 계열사로 설립된 옥시는 2001년 4월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레킷벤키저에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동양화학그룹은 계열사 옥시가 소유한 자동차용품 전문회사 불스원을 분리시켰다.
매각 당시 옥시의 대표였던 신현우 회장은 2005년 6월까지 대표직을 중임한 뒤 친정인 OCI로 복귀했다. 2010년에는 다시 불스원 지분 42.93%를 인수하며 이 회사 회장이 됐다. 신 회장은 신발 멀티숍 브랜드인 슈마커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옥시를 1625억 원에 인수한 레킷벤키저는 영국 레킷 가문과 벤키저 가문의 합작회사로 가정용품(세제·섬유유연제), 화장품, 의약품 등을 생산하는 제조·유통 업체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4월 28일 종가 기준 옥시의 시가총액은 470억 파운드(한화 약 78조 5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 국민연금은 2014년 말 기준 861억 원을 레킷벤키저에 투자하고 있다.
2001년 옥시 지분은 네덜란드 법인인 레킷벤키저앤브이가 최초 인수했다. 이 지분은 다시 레킷벤키저피엘씨로 넘어갔다. 영국계 회사지만 한국의 지분을 네델란드 회사가 소유하고, 네델란드 회사의 지분을 또 다른 국적의 회사가 소유하는 복잡한 출자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2010년 기준 연매출 2438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때를 마지막으로 옥시는 유한회사 전환과 함께 기업 회계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01년 인수 당시 연매출 1377억여 원이었던 옥시는 같은 해 64억여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그런데 레킷벤키저가 인수한 다음 해에는 매출(1361억여 원) 변동은 없었지만 영업이익(146억 여원)이 2배 이상 늘었다. 2005년 들어선 영업이익이 200억 원을 돌파했고, 옥시의 ‘200억 흑자 행진’은 이후 6년 연속 계속됐다.
한국에서 올린 영업이익은 매년 해외로 빠져나갔다. 옥시는 주주배당, 자문료, 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본사 계열사인 레킷벤키저앤브이, 레킷벤키저싱가포르, 래킷앤콜먼 유한회사 등에 송금했다. 2009~2010년 자문료로는 141억여 원, 로열티로는 162억여 원이 지출됐다. 같은 기간 옥시는 OCI로부터 표백제 옥시크린 등 주요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받기로 합의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표백제 시장은 확장을 멈췄지만 의약품, 손 세정제 등의 시장은 판로가 확대됐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신현우 전 사장이 검찰에 소환된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준필 기자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이 지난 4월 28일 언론에 공개한 옥시 제품 목록(125개)을 보면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섬유유연제 쉐리, 물먹는·냄새먹는 하마 외에도 손 세정제 데톨, 콘돔 듀렉스, 의약품 개비스콘, 스트레실 등 상품이 다양하다.
‘다국적 기업’ 옥시의 이사진은 그 국적도 다양하다.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인도, 그리스 국적의 이사(또는 감사)가 2001~2011년 취임과 퇴임을 반복했다. 가장 최근에는 방글라데시 국적의 이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 측과는 지난 4월 29일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1997년 출시된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까지 연간 60만 개가량 판매됐다. 공정위는 연간 시장규모를 10억~20억 원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처럼 동시에 많은 인원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전례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가습기 살균제 업계 점유율은 1위가 옥시, 2위가 애경그룹, 3위가 이마트, 4위가 홈플러스로 나타났다. 모두 대기업이다.
이들 판매사는 당국으로부터 최근 유해물질로 지정된 PHMG(살균제나 부패방지제 용도로 사용되는 화학물질)를 중간 유통(제조)책인 용마산업사, 한빛화학 등에서 매입했다. 용마산업사의 연매출은 70억 원 안팎, 종업원은 3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빛화학은 외부감사 대상으로 용마산업사보다 규모가 크며, 연매출은 120억 원 안팎이다. 주주 구성상 가족 기업인 한빛화학은 한때 옥시의 의뢰로 옥시싹싹의 납품을 대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옥시 등 판매사의 의뢰를 받아 한국의 SK케미칼, 덴마크의 케톡스 등에서 원료를 조달했다. 이 가운데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옥시 제품과 같은 성분(PHMG)을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해 검찰 조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대행사는 용마산업사다. 이는 노병용 전 롯데마트 사장(현 롯데마트 대표)과 이승한 전 홈플러스 회장이 출국 금지된 이유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홈플러스가 대형마트 시장에 진입하면서 소위 ‘빅3’ 업체는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PB상품이 2001년 무렵 도입됐고, 제작 품목 가운데는 가습기 살균제도 있었다.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연간 10억~20억 원 규모)에 대형 유통사가 잇달아 뛰어든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