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문재인 2016국회운영권, 2017대선전략 지도를 상실하다
○김종인 문재인 정치정체성과 노선: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상수: 박지원, 김대중-노무현 킹메이커의 귀환(hidden actor)
○이청준: “이 섬과 사람들은 당신들과 운명을 함께할 수 없습니다”
1. 새누리당 자멸이 선물한 더민주 승리, 야권 ‘자생력과 자주성의 소멸’
김종인과 더민주당은 4·13총선에서 대승을 거뒀다. 승리의 요인과 동력은 새누리당 자멸에 있다. 김종인은 더민주의 급진성을 중도의 깃발로 위장하고 박근혜정권의 경제실정을 물고 늘어졌다.
야권분열에 희희낙락하여 정신줄을 놓은 집권 새누리당은 자가 총격전으로 자멸했다. 일단 김종인 뚝심과 관찰력의 승리이자, 그를 영입한 문재인의 동반승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정국은 두 사람이 주도하게 된다. 과연 그런가?
승리이후, 김종인과 문재인은 곧장 긴장과 대결관계를 노출했다. 동시에 두 사람이 제각각 가슴에 지니고 있던 2017 대선책략이 공개되고 말았다. 동서고금에 책략이 드러나면 이미 전략이 아닌 추진계획표(roadmap)에 불과하다.
김종인과 문재인은 한 몸이 될 수 없다. 바로 두 사람의 공통된 정치 정체성, 상반된 전략 노선 때문이다. 정체성은 걸어온 발자욱이 누적된 구조의 모습이고, 노선은 걸어가야 할 발 걸음의 방향성이다. 두사람은 걸어온 길은 비슷하고 걸어갈 방향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미래 시간을 향한 두사람 간에 남은 것은 피할 수 없는 권력투쟁 뿐이다. 화학적으로 뒤 섞일 수 없는 적과 백의 운명적인 대결투 만이 남아 있다.
김종인, 문재인
2. 김종인 문재인 정치 정체성: 운명적인 적대적 관계
전두환 국보위 출신의 김종인과 노무현 비서실장 출신 문재인간의 만남은 일제 강점기 ‘심순애와 김중배’의 일화를 연상케 한다. 이 상반된 두 사람의 접점은 어디서 이뤄졌을까? 사실은 두 사람이 걸어온 정치 정체성의 본질이 같다. 오월동주처럼, 두 사람이 올라탄 배는 바로 ‘권력지상주의’와 ‘생존’이라는 접점이다.
권력은 선거를 통해 획득된다. 권력지상주의자들에게는 선거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행동을 해도 정당화되고 합리화된다. 김종인이 더민주에 영입된 뒤에야 광주 망월동을 찾아 희생자의 묘비를 붙잡고 쇼를 벌이는 사건이나, 선거말미 문재인이 광주에 내려가 무릎을 꿇은 쇼는, 두 행위자가 벌인 본질적으로 동일한, 하나의 사건이다.
김종인은 ‘김종인이라는 경세가’로서 존재의 확인을 위해, 문재인은 친노대표 대선후보로서 지위를 지키기 위해, 즉 정치적 생존을 위한 권력이 절실했다. 4·13 총선이후 두 사람의 목적은 적당히 달성되었다. 이제, 각자의 갈 길만 남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대승으로 미래시간의 길과 지형이 바뀌었다. 공존의 길이 없어지고, 한사람 만이 걸어갈 수 있는 지형이 형성된 것.
3. 너(김종인)와 나(문재인)는 우리로 뒤섞일 수 없는 운명이다.
정체성이란 걸어온 발걸음의 총화, 곧 운명이다. 노선은 그 정체성이 걸어갈 발걸음의 방향성(vector), 생명노선이다. 정치 정체성은 생명 노선을 타고 운명화된다. 김종인과 문재인 정치운명 노선은 두 사람 중 하나가 소멸해야 한다.
김종인의 입장에서는 문재인이 죽어야, 문재인 입장에서는 김종인이 죽어야 산다. ‘나를 죽여 너를 살리는’ 상생의 원리가 아니라, ‘너를 죽여야만 나를 살리는’ 살육의 관계이다. 두 사람에게는 총선대승이 비극의 시작이다. 도표를 살펴보면 김종인 노선과 문재인 노선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생사를 건 대혈투를 벌여야 하는지 읽을 수 있다.
김종인과 문재인의 공통된 목표는 권력쟁취다. 그러나 그 노선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고, 모든 것을 걸고(all or nothing) 대립 격돌할 수밖에 없다. 김종인은 자신이 직접 대선후보로 나설 수도 있고, 범야권 통합후보는 내손으로 만들어내어 정권교체를 할 수도 있다. 자신은 킹 메이커(king maker)가 된다. 문재인은 나 만이 유일한 야권 단일 대선후보(king)로 서야 한다.
김종인과 문재인은 운명적으로 전부 아니면 전무의 제로섬 게임의 링 위에 섰다. 문재인에게 후보양보와 타협이라는 경우의 수는 아예 ‘없다’. 김종인 또한 타협을 선택한다면 비참한 정치적 최후를 맞게 된다. 정치적 아버지 김대중도 짓 뭉게 버린 게 문재인·노무현 권력집단의 정치노선이다.
김종인과 문재인간 제로섬게임은 어떤 양상으로 촉발되고 전개될 것인가. 친노는 일단 김종인인의 당권생명을 연장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김종인의 중도 보수노선과 친문세력의 선명 진보노선은 격돌한다. 2016년 7월 국회부터가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김종인에게 당대표의 시간이 연장된다면, 2017년 더민주당 대선국면은 김종인이 주도한다. 김종인은 범야권 통합 단일후보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김종인 노선에 문재인은 오히려 걸림돌이다.
가장 큰 변수는 박근혜 정권 권력형비리의 돌발이다. 문재인 쪽에서 박근혜 정권 친박인사, 혹은 국민기업 포스코 정준양 등의 비리를 게이트화 하여 박근혜 정권을 집중 공격한다. 대여선명성의 주도권을 더민주당 친문세력이 쥐어간다.
이처럼, 김종인과 문재인이 그리는 미래세계와 꿈꾸는 미래시간이 다르다. 김종인이 꿈꾸는 더민주당 노선으로 가면 노무현의 운명선이 끊기고, 문재인이 꿈꾸는 천국은 국민을 향한 중도성과 실사구시가 배제된다.
선거공학으로 통합을 말한다면, 지기기반의 집중력이 없는 더민주당은 2017 대선국면에서 국민의 당에게 끌려가고 자중지란이 일어 날 수 있다. 알고 보면 지지도만 추락해도, 한 순간에 훅 가버릴 정당은 더불어 민주당이라는 얘기다. 결론을 맺자면 김종인과 문재인은 향후 2017년 대선의 상수가 아니다.
4. 돌발 상수: 김대중-노무현 킹메이커, 박지원 귀환(hidden actor)
4·13총선이 끝난뒤 2주가 채 안된 시점에 김종인과 문재인 앞에 청천 날벼락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확정(2016.4.27.). 김종인, 문재인 모두 자신들이 2016국회와 2017 대선정국의 상수로 여겼으나, 종속변수로 전락했다.
박지원의 돌발 때문이다. 박지원은 김대중 정권, 노무현정권을 창출한 책략가이다. 조선시대 태종의 책사 한명회에 비견될 수 있는 책사의 귀환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2017 대선정국 박지원 노선의 핵심은 새누리당과 대연정이다. 대연정의 틀은 산업화와 민주화, 영남과 호남, 박정희와 김대중, 박근혜와 박지원에 의한 결자해원이다.
문재인 범야권 단일후보론은 김종인의 비문재인 범야권 단일후보론에 매몰된다. 김종인의 2017년 대선 프레임은 박지원의 대선프레임에 압도된다. 김종인은 이미 프레임전쟁에서부터 박지원에게 종속되고 만다. 이제 두 사람은 박지원 프레임부터 상대하여 무너뜨려야만 한다. 먼저 박지원이 주적이고, 새누리당 후보는 그 다음차원이 된다.
박지원은 친노라면 오금이 저릴 만큼 당했다. 무덤 속에 두 번 들어갔다가 나왔다. 막후에서 노무현을 만들었으나 배신당하여 옥살이를 했고, 정치적 부활 뒤에도 정치자금법 위반의혹 등으로 철저히 압제·소외되었다. 박지원 노선은 문희상 국회의장론을 일소에 붙여버린 일성에서 드러난다. “문희상은 친노가 아니냐. 안된다.”
알고보면 박지원은 노무현정권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고 소외되고 짓밟힌 ‘DJ의 아바타’이다. DJ의 아바타는 상상을 비월할 정도의 탁월한 정치역량을 비축하고 있다. 김종인은 박지원의 수평적인 상대로 평가될 수 없다.
한마디로 박지원이 주도하는 2016년 국회와 2017 대선정국에서 문재인의 자리는 아예 없다. 박지원의 내심 꿈꾸고 소망하는 카운트 파터는 박근혜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을 통해 여야 할 것 없이 백지상태에서 정치권의 미래지형을 뒤바꾸려 하고 있다.
박지원은 전통적 흐름과 전회적 발상을 전회시키는 역량을 가진 괴물정치인이다. 남북정상회담과정에서 김대중과 김정일의 틈새를 파고들어, 자신을 중매자로 세운 지점에서 입증되었다.
2017 대선 후보 또한 뒤 여야 할 것없이 섞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요한기자는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을 안철수 뿐만 아니라 이정현, 조경태, 장성민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박지원이 주도하는 한 여야 정계개편의 국면이 도래한다. 이 정계개편 과정에서 2017 대선후보가 떠오른다.
5. 김종인·문재인 솔직해야 한다. ‘4·13총선 자력승리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솔직해야 한다. 김종인과 더민주당은 4·13 총선에서 자력으로 승리하지 못했다. 박근혜정권의 경제 실정과 권력쟁투로 국민들이 모두 등을 돌렸을 뿐이다. 집권여당의 자멸에 불과했다. 더민주당이 자력으로 승리했다면 향후 정국을 주도하고 남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도권은 박지원에게 넘어갔다.
문재인의 김종인 영입의 핵심적인 본질은 전통적 진보야권 정치역사를 왜곡시키고 말았다는데 있다. 살아있는 전두환은 웃고 죽은 노무현은 통곡할 수 있다. 야권은 자생력과 자주성을 갖출 기회를 잃고 말았다. 알고보면 두 사람 미래정치 실패의 핵심적 본질은 여기에 있다. 국민들은 4·13 총선에서 김종인과 문재인 모두에게 레드카드를 던진 현실을, 시간은 입증해 줄 것이다.
이청준 선생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天國)>은 김종인과 문재인, 더민주당에게는 마치 예언서와도 같다. 원장님은 김종인과 문재인,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원장님은 이 섬과 섬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운명을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절대의 믿음이 생기지 못합니다.
원장님은 이 섬을 ‘문둥이들의 천국’이라는 철조망 울타리를 쳤습니다.
원장님은 이 섬에 일사분란한 원장님의 천국을 꿈꾸지 마세요.
나 아니면 안된다는 원장님의 오만스런 독선이
이 섬사람들을 천국이 아닌 추악한 문둥이들의 수용소로 만들어 갈 뿐입니다.
원장님과 이 섬사람들은 운명을 서로 섞을 수가 없습니다.
복수가 일어날 것입니다.
배반이 감행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청준 <우리들의 천국>에서)
박요한 선임기자/정치학박사 yohanletter@ilyo.co.kr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