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그동안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 기척도 없이 나를 떠난다. 열정이, 기억력이, 경제력이, 건강이, 순발력이, 그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열심히 살며 공들여 쌓아왔던 업적들이 소리 소문 없이 나를 무시하고 나를 떠난다. 그 상실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다. 자신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너무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늘 할 일이 있어야 하고, 늘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자기가 집착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팽창된 자아상을 벗어버리기 어렵고, 당연히 자기와 화해하기 어렵다.
일단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사랑했던 것,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화나게 하는 그것, 성격 좋은 나를 건드리는 그것, 거기에 집착이 있다. 자주 나는 내 집착을 본다. 분명 그것이 지금의 삶을 만들었다. 내 삶이 싫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삶의 고통이 바로 내가 집착하고 있는 거기에서 왔다는 것을 이제 겨우 깨달았다는 것이다. 삶의 변화는 내가 매달리는 것, 없으면 안 된다고 집착하고 있었던 것, 집착인 줄로도 몰랐던 그것을 제물로 일어난다.
내 인생의 보물이었던 아들이 결혼해서는 나를 무시하고 며느리 말만 듣는 것 같을 때, 직장에서 떠나 스스로가 무용지물처럼 여겨질 때, 어느 날 병이 찾아와 뒤통수를 칠 때, 옆에 없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짝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 홀로 덩그러니 남아야 할 때, 그리고 어느 날 죽음의 그림자를 봤을 때, 감당하기 힘든 그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할까.
왜 놓아버리지 못하느냐고 손가락질만 하는 사람 앞에선 ‘나’를 떠나고 있는 것을 잘 놓아주지 못한다. 젊음, 건강, 권력, 돈, 명예, 아이들 등 내 울타리에서 빛났던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만치 가버렸는데, 왜 집착하느냐고 야단만 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집착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점점 고립될 수밖에 없다.
가까운 사람에게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에게, 한때 우리 인생을 지지하는 빛나는 기둥이었던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인정하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상실을 진정으로 슬퍼하며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그래야 매달리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고독할 수 있고, 그래야 사라질 수 있고, 그래야 사그라질 수 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