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 부활 꿈꾸는 몽골…新실크로드로 경제 부흥부터 동북아의 중심으로
-중국-러시아에 이어 일본과 ‘전략적 동반자’ 협력... 한국-몽골 협력 격상해야
-북한 비핵화가 동북아 평화와 경제발전 가져올 것...韓 한반도 비핵화 노력 지지
-세계 10대 광물자원부국…실크로드 익스프레스·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중요거점
4월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롯데시티호텔 김포에서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몽골 초대대통령 인터뷰를 가졌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몽골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다.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은 1990년 9월 몽골의 초대 대통령(간선)으로 선출된 뒤 민주주의 노선을 채택했고 1992년 2월 신헌법을 만들어 70여년 간 지속해 온 초대 공산주의를 포기한 인물이다. 1993년에는 초대 직선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정치·경제개혁은 물론 몽골의 민주화의 아버지로 불리며, 지금도 몽골내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는 1990년 노태우 정부 때 한국-몽골의 역사적인 첫 수교를 위해 방문한 후 벌써 10여 차례 한국을 찾는 등 양국간 관계증진을 위해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한-몽 수교 26주년을 맞는 올 해에는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현 몽골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오는 7월에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을 개최하는 등 양국 간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전망이다. 그만큼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의 이번 한국 방문은 여느 때보다 관심을 모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개최한 ‘동북아 공동번영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참석차 방문한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을 <일요신문>이 직접 만나 한국과 몽골의 경제협력, 나아가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에서 양국간의 역할과 전망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오치르바트 전 대통령은 1990년 3월 26일 한국과 몽골의 수교를 승인하신 분으로 알고 있다. 당시 한국에 대한 기대와 현재 양국 간 협력 현황을 평가하신다면.
“한-몽 협력관계는 수교 당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개인적으로 수교 이후 현 수준까지 발전하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의 수교 결정은 매우 시의적절 했다. 특히 유사한 인종적, 문화적 바탕을 기초로 문화 및 인적교류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몽골에서 한류에 대한 인기가 높고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은 3만 명(몽골 전체인구 300만 명 정도)이 넘고, 몽골에 거주하는 한국인도 약 3000명에 달한다. 저도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웃음).”
―최근 국제사회에서 몽골에 대한 관심(지정학적 및 지경학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몽골이 유라시아, 동북아시아 및 한반도에게 갖는 의미는.
“중국의 신실크로드 정책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국 협력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몽골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골과 한국, 일본도 경제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비추어보아 지정학적으로 몽골이 동북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북아 통합에 몽골이 한몫을 하고 있다. 실제로 유라시아 교통망의 동서, 남북 교차점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한국정부가 추구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실현을 위한 협력 대상국이자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으로 향후 협력 수요가 높은 국가이다. 특히 몽골은 세계 10대 광물자원부국으로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등 자원에너지협력 잠재력이 높아 관심 두는 국가들이 많다. 또한 몽골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과정에 있으며, 상호보완적인 (개방적인)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성향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몽 협력 관계는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한-몽 관계는 26년간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 고루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일치해왔다. 지역내 분쟁 사항에 대해서도 양국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같이 했으며, 경제분야에 있어서 한국과 몽골은 양국의 장점을 최대화하여 협력을 하고 있다. 한국의 다수 기업들이 몽골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몽골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교육, 보건(의료), 인도적 지원 등 사회 분야에서 협력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많은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는 몽골의 교육, 지식 분야에 대한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전통적,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몽골은 지금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서는 이들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여 국제사회에 참여해야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몽골이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시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 선도적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많이 해줌으로써 몽골과 경제 협력을 해왔고, 1000명의 엔지니어를 교육시키는 프로그램 등 교육분야에서의 협력도 활발하다. 한국의 경우 양국 간 교역은 1990년 수교시 271만 달러에서 2012년 4억 8,000만 달러로 증가했다가 최근 2015년에는 2억 9,000만 달러로 감소했다. 2015년 말 기준 한국의 대몽골 투자총액은 4억 2000만 달러로 현재 한국은 몽골의 5대교역국, 7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최근 한국의 대몽골 투자가 다양화되고 있지만 광물자원 개발이나 대규모 인프라 건설 등에서 중국, 일본 등에 매우 뒤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대몽골 경제협력 전략을 수립해서 추진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 간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2016년도 한-몽 정상회담과 상호 방문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양국 간 중요한 과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협력 수준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는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에 대한 평가와 바람직한 한-몽골 협력 방안은.
“유라시아 대륙(지역)에는 약 30억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지역의 발전에 한국이 경제, 과학기술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한국과의 협력에 있어서 북핵 문제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서 철도망 연결이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동쪽으로부터 한국의 부산, 중국 서부, 러시아 동남지역 등이 연결될 것인데 이들 국가 간 상호이해와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한반도의 평화가 매우 중요하며, 한국과 몽골이 이에 대해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의 평화를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정책이며, 한국 정부의 훌륭한 정책적 결정이다.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 유라시아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선 먼저 경제협력을 심화시켜야 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평화가 이 지역에 확립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실현되기 위해서 이 지역 국가들 간 파트너십이 매우 중요한데, 몽골이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몽골은 낙후된 교통물류와 지나치게 광물자원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산업다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몽골의 철도, 도로 인프라 구축에 협력할 수 있고 몽골의 산업다각화 및 현대화에 참여하여 상호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몽골, 중국, 러시아 간에는 3개국을 연결하는 철도운송로 건설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프로젝트의 발전 전망은.
“철도운송과 관련해서 몇 가지 사업이 논의되고 있고, 일부는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타반톨고이 광산에서 중국 철도노선까지 연결시키는 사업이 진행중인데 중국정부가 주노선을 이용하지만 몽골이 7개 항구를 사용함으로써 해양출구를 갖게 되었다. 러시아의 경우 타반톨고이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철도부설 계획이 있는데 이 사업이 실현될 경우 러시아는 몽골에 자국의 2~3개 항구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된다. 이 사업은 논의 단계로 베이징-(울란바토르)-모스크바 간 몽골을 지나는 철도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이 노선의 복선화 작업을 하기 위한 계획이 3개국 간 논의되고 있다. 복선화 및 철도 신선이 건설되면 유라시아 지역에서 철도망 연결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사업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몽골 정부는 한반도철도망(TKR) 연결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자국에 적극 흡수하고자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유럽까지 수송, 배송되고 있는 화물 컨테이너의 몽골철도이용 판촉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국제노선인 몽골철도(TMGR)는 유라시아철도의 최단거리 노선으로 유럽향 화물이 몽골철도를 경유하게 될 경우에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비약적인 발전이 예상된다. 더불어 낙후되어 있는 국가경제와 매장되어 있는 자연자원을 적극 개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몽골철도는 북한의 나진항, 중국의 천진항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이들 항만은 울란바토르와 단거리 수·배송이 가능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남북러 간의 나진-핫산 사업에도 관심이 있다. 나진항개발 참여를 위하여 북한과도 접촉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남북관계 개선 시, 동몽골 철도를 나진항과 연계하는 양자 및 다자 간 협력 사업추진도 가능하다.”
―한국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유라시아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의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협력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 않나.
“맞는 말이다. 한국의 경우 부산-파리 간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건설 산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북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북한의 철도노선이 4개 존재하는데 이들이 한국의 철도와 연결된다면, 이 사업은 이미 성공궤도로 진입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는 경제협력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북한도 이러한 철도노선 연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들었다. 러시아 학자도 아시아-유럽 간 노선이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한 바가 있으므로 북한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몽골과 북한의 관계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몽골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사적으로 몽골이 한민족과 오랫동안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몽골에 한국 출신 왕비들이 있었고, 한국에도 몽골 출신 왕비가 존재했다. 몽골에게 한국은 남북이 모두 하나의 민족이라고 인식되며, 한민족은 사돈과 같은 존재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고려하여 몽골은 북한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계속하고자 하며, 동시에 한국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지지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되어 하나의 국가로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최근 몽골내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한 활동을 펼치는 포럼과 NGO를 조직하여, 한국에 관심 있는 저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관계자들이 남북통일에 일조할 것이다.”
―광물자원 전문가로 알고 있다. 에너지 광물자원 분야에서 한국과 몽골의 바람직한 협력 방안은 무엇인가. 앞으로 몽골의 경제정책 및 경제발전 전망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몽골에는 천연자원이 매우 풍부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매장지가 많다. 한국의 경우 천연자원을 가공하는 선진기술 및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두 국가의 장점을 살린 협력을 통해 지하자원을 생산, 가공하여 완제품을 제3국에 수출하는 방법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몽-러, 몽-중 합작 공장이 존재하므로 한국과의 합작 공장 설립도 가능할 것이다. 몽골에서 채굴하여 바로 운송하는 것이 아닌 몽골에서 채굴, 가공하여 세계시장에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몽골 경제 전망은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가축 5000만 마리, 농업 자원, 금, 구리, 아연, 철강, 우라늄, 석탄(갈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포함한 세계시장에서 수요가 높은 원료가 풍부하다. 따라서 선진국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경제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중국이 몽골의 석탄광산에 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을 제안한 바 있는데(중국 수출), 한국도 이와 유사한 사업(러시아 수출)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골정부에서 정책과 법률이 안정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외에 별다른 장애요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롯데시티호텔 김포에서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구미유라시아본부장,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몽골 초대대통령, Baasanjav LKHAGVAA 울란바토르 대학교 교수가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향후 한국과 몽골간의 유망 협력 분야는.
“광물자원개발 및 가공 부문, 교통인프라 및 건설분야, 관광산업, 의료보건부문, 농축산부문, 금융부문 등 다양하다. 특히 양국간 종소기업의 협력이 유망하다. 한-몽 중소기업이 협력하여 캐시미어 등을 생산하여 중국, 러시아 등에 수출하여 유라시아 가치사슬(GVC)에 적극 참여하면 몽골 내수시장이란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몽골의 동부지역에 친환경적인 농산물을 생산 가공하여 중국에 수출하는 방안이나 한-몽 양국이 공동 관광단지를 조성하여 운영하는 것도 유망할 것이다.”
―끝으로 한-몽 양국관계가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와 기업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먼저 한국투자자들이 몽골의 실질경제에 결단적인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외에 관광분야에서의 협력도 중요한데 특히 관광 관련 기간산업분야(예를 들어 흡수굴 호수 주변 관광시설, 카지노 등)에서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몽골 사막에서의 관광캠프 조성, 공항, 도로 등의 사업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몽골정부도 한국기업들의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법률, 제도, 정책 등을 통해 지원해야 할 것이다. 몽골이 한국정부에 원하는 바는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방문할 때 구체적으로 제안될 것으로 생각하며, 개인적으로는 제한적인 비자문제가 간소화되거나 비자발급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이 외에도 특히 한국과 몽골 간 비싼 항공료가 커다란 장애요인이라고 보며, 항공회선 추가 도입이 시급하다. 향후 한-몽 협력을 확대, 강화할 수 있도록 양국 정상회담의 정례화, 사증면제협정 도입, 자무무역협정 체결, 한-몽 의원친선협회의 활성화 등을 통한 네트워크 강화 등이 양국 간 전략적 협력강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몽골이 동북아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을 위해 긴밀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몽골 초대 대통령은 누구 푼살마긴 오치르바트 몽골 초대 대통령은 1942년에 태어나 소련 광산대를 졸업한 뒤 1965년 공산당인 몽골인민혁명당(MPRP)에 입당했다. 1972년 연료에너지 지질성 차관으로 임명된 후 인민혁명당의 이념 서기와 조직국 부국장을 거쳐 1982년 몽골 내의 진보적 사고를 대변하는 노조위원장으로 재직했다. 그러다 1985년 연료에너지 장관을 거쳐 1988년 대외경제관계 공급장관으로 있다가 2년 뒤인 1990년 3월, 인민대회 간부회의장(서기장)으로 선출됐다. 같은 해 9월, 몽골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여야 연립정권을 출범시키고 민주주의노선을 채택, 정치·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등 몽골 민주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급기야 1992년 2월, 신헌법을 만들어 70여 년간 계속된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국명을 몽골인민공화국으로 변경하는 등 급진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1993년에는 초대 직선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97년 6월까지 재임한 뒤 바가반디 인민혁명당 당수에게 자리를 내줬다. 한국과의 인연은 1990년 3월 26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 시절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한국과 경제과학기술협정, 어업협정, 항공협정 등을 체결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2000년에도 한국·몽골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등 대통령 퇴임 후에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양국 간 관계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한편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리아다. 몽골(Mongol)이란 용어는 원래 ‘용감함’이란 뜻을 지닌 부족명이었다가 칭기즈칸(Chingiz Khan)이 몽골부족을 통일한 후 민족명이 됐다. 몽골의 수도는 울란바토르(Ulan Bator)인데 ‘붉은 영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해발고도는 1,350m에 이른다. 주요 도시로는 다르한(Darhan), 에르데넷(Erdenet), 초이발산(Choibalsan) 등이 있으며 면적은 한반도보다 7배 정도 큰 1,567,000㎢이다. 인구수는 약 300만 명이며, 수도 울란바토르의 거주자가 100만 명을 훨씬 넘는다. 몽골인들은 주로 염소, 양, 소, 말, 낙타 등을 키우는데 대략 5000만 마리로 알려졌다.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 성격이 강한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로 1921년 7월 11일 소련 적군(赤軍)과 연합하여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24년 11월 26일 러시아식 헌법을 채택하여 국가를 선포했다. 한국과의 거리는 약 2,000㎞(1,226마일)로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 공항까지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항로를 운행하는 국내항공사가 하나밖에 없고, 항공료도 80여 만 원으로 비싼 편이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