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해 10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A 씨(여·당시 51)는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소재 등산로를 따라 무학산에 등산을 갔었다. 그러나 오전에 떠난 A 씨는 오후 9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1시께 남편에게 카카오톡으로 무학산 정상에 올라가 있는 사진을 보내고 “사과를 먹고 있다”고 연락한 게 마지막이었다. 남편은 경찰에 A 씨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며 미귀가 신고했다. 경찰은 즉시 수색에 들어갔고 다음날인 29일 무학산 6부 능선 부근에서 A 씨의 변사체를 발견했다.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 및 뇌저부 지주막하출혈이었다.
경찰은 살인사건으로 판단해 목격자 진술을 확보하고 CCTV 분석에 나섰다. 통신수사도 동시에 진행했다. A 씨의 휴대전화가 최종 신호로 잡힌 곳은 경상남도 함안군이었다. 그러나 신호 반경이 최대 5㎞에 달해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목격자 역시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2명만 있었을 뿐이었다. 또한 사건 현장에는 CCTV가 없어서 현장과 가장 가까운 무학산 정상의 CCTV에 의존했다. A 씨가 발견된 마지막도 무학산 정상의 CCTV였다. 이것으로는 용의자를 쉽게 특정 지을 수 없었다.
마산동부경찰서는 형사 40여 명을 투입했음에도 구체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사건 5일이 지난 11월 2일, 경찰은 해당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또한 시민 제보를 요청하는 전단지 3만 매를 배포했고 결정적 제보자에게 현상금 1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7일 경찰은 81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까지 설치했다. 수사본부는 혈흔이 묻은 돌 등 현장 증거물 100여 점을 분석하고 등산객을 상대로 최면 수사를 진행한 결과 인근 CCTV에 찍힌 ‘40~50대 검은 계통의 옷을 입은 보통체격의 남성’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실마리는 나오지 않았고 발견된 혈흔도 피해자 A 씨의 것이었다. 경찰은 A 씨의 하의가 살짝 벗겨져 있는 것을 보고 성폭행에 의한 살인을 의심했다. 이에 성범죄 전과자, 정신질환자, 심지어는 독거 남성까지 총 4000명 이상을 조사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무학산 일대가 매우 흉흉했다”며 “등산객도 눈에 띄게 줄었었다”고 전했다.
사건이 해를 넘기자 경찰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휴대전화 기지국을 기반으로 하는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수사 기법이 공개되면 범죄자들이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어 보안상의 문제로 언급할 수 없다”며 해당 수사 기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거부했다. 그렇게 일부 용의자를 특정하고 압수수색도 들어갔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고 용의자들 역시 혐의를 부인해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석 달이 넘어가자 사건은 잊혀갔고 언론도 지난 1월 이후에는 보도가 뜸했다. 사건 발생 100일을 전후로 수사본부 해체설까지 흘러나왔다.
사건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마무리됐다. 검찰은 경찰에 앞선 용의자의 의복 등을 재감정할 것을 지시했다. 경찰은 지난 4월 18일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에 재감정을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A 씨의 옷도 같이 보냈다. 재감정결과 피해자 A 씨 장갑에서 피의자의 DNA가 검출됐다. 그리고 해당 DNA는 현재 대구구치소에 수감 중인 정 아무개 씨(47)로 밝혀졌다. 현행법상 경찰은 모든 수감자의 DNA를 확보해야 하고 해당 DNA는 데이터베이스화한다. 따라서 어렵지 않게 비교가 가능했다.
경찰은 확보한 CCTV 자료를 재분석하는 등 3차례에 걸쳐 조사했고 결국 정 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정 씨는 과거에도 성폭행, 강도 상해 등을 저지른 전과 6범이었다. 정 씨는 지난 1월 절도 혐의로 검거돼 1년 4월 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무학산 정상 CCTV에서 발견된 피의자 정 씨의 모습. 사진제공=경남지방경찰청.
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사건 당일 무학산 정상에서 A 씨를 발견했다. A 씨를 성폭행하겠다고 마음먹은 정 씨는 A 씨를 쫓아갔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A 씨를 밀어 넘어뜨렸다. 이후 정 씨가 소리를 지르자 입을 막기 위해 주먹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성폭행에 실패한 정 씨는 끝내 A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또한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현장에 있는 흙과 낙엽으로 사체를 덮어 은닉했다. 정 씨는 경찰 조사에서 “힐링 차원에서 등산했다가 우연히 A 씨를 보고 충동적으로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189일 만에 범인을 잡았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이번 수사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과수는 이전 2번의 감정에서 피의자의 DNA를 발견하지 못했다. 즉 처음에 감정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범인을 쉽게 잡을 수 있었던 것. 또한 정 씨는 무학산 정상에 있는 CCTV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신원 조회한 4000명 이상의 명단에도 정 씨의 이름은 없었다.
이번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올랐던 사람은 총 4명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김종석 마산동부서 수사과장은 “이번 사건의 경우 현장이 중요한데 현장에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서 범행 시간대에 현장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확인했다”며 “정 씨의 경우 무학산 정상에 있긴 했지만 A 씨와 정반대의 등산로로 올라가서 특정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A 씨는 원계마을 부근 진입로를 통해 무학산에 올랐고 정 씨는 마산여중 부근에 있는 등산로로 올라갔다. A 씨는 정상에 오른 후 다시 원계마을 방향을 향해 내려왔다. 이를 본 정 씨는 A 씨의 뒤를 밟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정 씨는 범행 이후 그대로 내려가지 않고 다시 무학산 정상으로 돌아가 본인이 올라온 길인 마산여중 방면으로 내려갔다. A 씨가 등산한 코스에는 진입로와 정상을 제외하면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따라서 진입로에 찍히지 않은 정 씨는 수사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이다.
4000명 이상을 신원 조회했음에도 왜 정 씨의 이름이 없었냐는 비판에 김종석 과장은 “범행 수법을 볼 때 현장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며 “인근 거주민인 창원, 함안, 창녕 거주자를 특정하다보니 정 씨를 놓쳤다”고 말했다. 정 씨의 주소지는 거제시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비난을 받을 각오도 다 돼있다.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고 본다”며 “국과수 1차 감정에서 나왔으면 서로가 편할 수 있었지만 대규모 인원으로 수사를 벌였기에 국과수 탓만 할 수 없다. 하지만 강력 사건의 경우 체계적인 관리는 필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국과수는 왜 범인 DNA를 놓쳤나 증거물 보존 원칙…비파괴검사 진행 탓 경찰은 지난해 10월 30일, 11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국립과학수사원 부산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경찰이 의뢰한 증거물은 장갑, 가방 등 A 씨의 소지품과 현장 부근에서 발견된 담배꽁초 등 163개의 증거물이었다. 그러나 2번 모두 피의자 정 씨의 DNA를 발견하지 못했다. 정 씨의 DNA는 이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에서 발견됐다. 국과수는 검찰과 감정 방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국과수는 증거물 보존을 위해 비파괴 검사의 형태로 감정을 진행해 정 씨의 DNA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검찰은 장갑을 잘라서 내부까지 검사했기 때문에 DNA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국과수는 왜 비파괴 검사를 진행했을까. 국과수 관계자는 “국과수 매뉴얼은 비파괴 검사가 맞다. 증거 원형을 훼손하면 재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국과수 업무처리절차가 국제 공인을 받은 절차고 해서 내부적으로 그렇게 규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필요시 파괴 검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앞서의 국과수 관계자는 “앞으로 의뢰자가 요청하면 파괴 검사도 검토하겠다”며 “중요한 건 어느 수사기법이 옳은가가 아니라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