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컨테이너선.
한진해운은 지난 2일 4000억여 원 규모의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안을 보완해 채권단에 제출했다. 앞서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제출한 자구안이 부실하다는 채권단의 지적을 받았기 때문.
이번 자구안에는 사장 등 임원들의 20~50% 급여 반납 및 인건비 10% 절감, 각종 직원 복리후생비 30~100% 삭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추가로 본사 사무 공간과 해외 32개 사무실 면적을 축소해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비용절감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또한 직원 복지 차원에서 회사 지원으로 운영되던 여의도 본사 구내식당 운영도 중단한다고 밝혔다.
세간에 관심을 모았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은 추가 자구안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채권단에서도 조 회장의 사재 출연은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이 이미 2년 전 부실해진 한진해운을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에게서 넘겨받은 ‘구원투수’인 데다, 대한항공 등 그룹 계열사를 통해 이미 1조 원을 쏟아 부은 노력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그룹 오너가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존재한다. 재계 관계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경우 현대상선 조건부 자율협약 당시 사재 300억 원을 출연했다. 사실 수조 원대의 차입금이 있는데 300억 원을 낸다고 얼마나 효과를 보겠느냐. 오너의 사재출연은 경영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채권단에 보이는 것”이라며 “아무리 요청하지 않았다 해도 조 회장이 전혀 사재출연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회사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확보하겠다는 유동성으로 버틸지도 의문이다. 한진해운이 이번 자구안으로 확보하겠다고 한 유동성이 4100억 원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한진해운이 버티기 위해 필요한 유동성은 6000억여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렇듯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율협약이 유효한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조 회장이 사재는 출연하지 않으면서, 직원들 밥 먹는 구내식당은 운영을 중단한다고 하니 대조돼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진 것”고 밝혔다.
자율협약 이행을 위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용선료 재협상과 운영자금 마련, 채무재조정 등을 위한 기한을 연장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당국과 채권단은 3개월 이내에 마무리하라고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해운업계 역시 해운동맹(얼라이언스) 문제로 자율협약 시행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업체들이 얼라이언스를 재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진해운도 새로운 얼라이언스를 찾으려면 다른 업체들에게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며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구조가 오는 6월까지는 결론이 나야 한다. 그래야 이를 토대로 9월까지 동맹 멤버 구성을 끝내고 내년 영업을 한다. 한진해운이 그런 성과를 6월까지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한진해운 관계자는 “19일 사채권자집회를 열어 만기 연장 등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외부 전문기관 실사를 통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용선료 인하, 채권금융기관들과 이자율 인하, 회사채 채무재조정 등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한진그룹과 정부 관계부처에서 한진해운 문제를 그동안 방치해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에 대한 우려와 자구안 목소리가 나온 것은 지난 2014년부터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반응했다”며 “그러더니 이제 와서 갑작스레 자율협약을 신청하고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자구 노력을 위한 시간을 놓친 듯싶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조양호 회장은 지난 3일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장애인 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자율협약이 결정되고 이달 사채권자 집회, 용선료 협상 등 굵직한 현안이 줄을 잇자 위기 경영을 총괄할 사령탑이 필요해진 까닭에서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자율협약 개시 이후 대주주 사재출연 압박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조 회장이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책임 경영에 나서는 쪽으로 방향 선회에 나섰다”며 “조양호 회장이 2014년 무너져가는 한진해운을 인수해 1조 원가량 지원에 나서 흑자전환 상태까지 돌려놨다”고 강조했다.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도 지난해 부채비율이 868%에 달하는 등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대한항공 신용등급 A등급이 무너지자 한진해운 등 계열사 신인도도 투기등급으로 하락하며 추가 재원 조달이 어려워졌다. 한진해운발 위기가 확산되면 그룹 주력인 대한항공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양호 회장은 2년 가까이 평창동계올림픽 위원장을 맡아오면서 경기장 건설 지연, 올림픽 개·폐막식장과 경기장 이전 논란, 분산개최 논란 등 많은 현안들을 해결하여 올림픽 준비를 본궤도에 올려놓기도 했다. 조 회장 전격 사퇴로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장익창·민웅기 비즈한국 기자 minwg08@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