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에서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는 신화적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 전기공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부인 문지원 씨와 공동 창업한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비키’로 이른바 ‘잭팟’을 터뜨렸다. 사진은 더벤처스 페이스북.
벤처업계에서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는 신화적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 전기공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부인 문지원 씨와 공동 창업한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비키’로 이른바 ‘잭팟’을 터뜨렸다.
2007년 설립된 비키는 사용자가 직접 동영상 자막을 생산·공유하는 서비스가 핵심이다. 세계 2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한 비키는 2013년 일본 전자상거래 기업인 라쿠텐에 매각됐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밝힌 매각가는 2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2200억 원). 미국 IT의 심장에서 성공 신화를 이룩한 그는 유저 관심 기반 SNS인 ‘빙글’을 선보이며 국내 대표 벤처기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금의환향한 호 대표는 또 다른 사업에 손을 뻗었다. 벤처캐피털 더벤처스를 설립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에 나선 것이다. 벤처캐피털은 유망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는 회사를 가리킨다.
더벤처스, 빙글, 비키는 상이한 사업 모델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들의 생존 전략은 같다. 되도록 많은 사용자(혹은 창업자)를 ‘플랫폼’에 유인하고, 대형 투자자를 유치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빙글이나 비키와 달리 더벤처스는 중대 고비에 섰다. ‘핵심 투자자’를 정부로 둔 까닭이다. 서울북부지검 국가재정·조세범죄 중점수사팀은 지난 4월 22일 스타트업을 통해 수십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편취한 혐의 등으로 호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호 대표는 2014년 5월~2015년 9월까지 ‘팁스’(TIPS)에 선정시켜주는 대가로 5개의 스타트업 업체로부터 29억 원 상당의 회사 지분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청(중기청)에 따르면 팁스는 정부 육성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민간이 추천하고, 정부는 창업에 필요한 자금 등을 지원하는 민관 협력 프로그램이다. 팁스에 선정된 스타트업은 정부에서 초기 R&D(연구개발) 비용 5억 원 등 최대 9억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사업 성공 시 R&D 비용 일부가 ‘성공 보수’로 상환되지만 투자받은 금액의 10%로 부담은 적은 편이다. 실패했을 때는 상환 의무가 전액 면제된다. 때문인지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팁스에 대해 ‘선진국형 프로그램’이라며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통과의례’가 있다. 중기청이 지정한 민간 투자사로부터 최소 1억 원 내외의 투자를 받는 조건이다. 중기청은 팁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인큐베이팅(창업 총괄지원)’이 가능한 민간 투자사(팁스 운용사) 21곳을 선정하고, 이들에게 스타트업 추천 권한을 부여했다.
팁스 운용사는 이른바 ‘엔젤 투자사’로도 불린다. 낮은 수익성과 높은 실패 확률에도 불구하고 중소 벤처업체를 후원하기 때문이다. 더벤처스는 중기청이 선정한 엔젤 투자사에 포함돼 있다. 더벤처스 측은 “정부 지원과 별개로 지금껏 우리가 스타트업에 투자한 돈만 수십억 원”이라고 말했다. 고사 직전에 놓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민간 주도로 육성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 벤처업계는 팁스 도입과 호 대표 등 성공한 벤처기업가의 벤처캐피털 설립을 ‘벤처 붐’을 일으킨 동력으로 보고 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벤처기업 수는 3만 개에 달한다.
중기청에 따르면 팁스는 정부 육성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민간이 추천하고, 정부는 창업에 필요한 자금 등을 지원하는 민관 협력 프로그램이다. 팁스에 선정된 스타트업은 정부로부터 초기 R&D 비용(5억 원) 등 최대 9억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사진은 중기청 팁스 홈페이지.
이와 관련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은 지난 3일 “우리나라 엔젤 투자자는 극소수인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벤처스는 제 역할을 해줬다”며 “제2, 제3의 호창성을 키우진 못할망정 검찰이 말도 안 되는 수사를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IT업체 대표 역시 “아무도 안 도와줄 때 그나마 도움을 준 사람”이라며 “자기(회사) 몫 가져간 걸 두고 구속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대표 등 업계 유명인사들도 SNS를 통해 검찰 수사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더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10개 스타트업 가운데 수사선상에 오른 업체는 5곳이나 된다. 검찰은 호 대표가 팁스 추천권을 이용해 이들 업체로부터 ‘과도한 지분’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중기청에 따르면 현행법상 팁스 운용사는 피투자처의 지분 40%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 이는 ‘악덕 투자사’로부터 스타트업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고안됐다. 이와 관련 더벤처스 측은 “우리가 지분 40% 이상을 소유한 스타트업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이면합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벤처스의 피투자사인 A 사 등은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재판 과정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더벤처스가 피투자사에 얼마를 투자하고, 얼만큼의 지분을 가져갔느냐다. 검찰은 더벤처스가 투자한 금액 대비 과도한 지분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피투자사의 시장 가치를 얼마로 산정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 있다.
더벤처스의 투자를 받은 10곳의 스타트업에 대한 객관적인 시장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장에 비교 대상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데다, 매출 등 재무구조가 상당히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단 더벤처스로부터 팁스 추천을 받은 스타트업 ‘파킹스퀘어’는 지난 2월 29일 지분 전량을 카카오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사 더벤처스가 얼만큼의 수익을 냈는지 주목할 부분이다.
호 대표는 지난 2014년 3월~2015년 3월 카카오(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사내이사를 지냈다. 김범수 전 카카오 의장은 케이큐브벤처스를 통해 빙글에 수억 원을 투자했다. 일각에선 이들의 인연이 ‘이번 수사의 발단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카카오의 전신인 다음카카오는 감청 문제로 검찰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아울러 호 대표는 미국 유학생활 당시 대학 동기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로부터 억대 투자를 받아 언론 지면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더벤처스 측은 “‘정치적 음모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호 대표 본인이 정치권과 큰 인연이 없을뿐더러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해 국내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것이다.
둘째 쟁점은 팁스를 입안한 중기청과 피투자사들의 입장이다. 이들이 ‘문제가 없다’고 했을 때 법원이 정부 측 피해를 인정해주느냐가 관건이다. 검찰은 더벤처스가 중기청에 제출한 팁스 추천 자료를 ‘허위’로 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부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기청은 “지난달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제출한 자료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고 밝혔다. 피투자사들 역시 “호 대표는 죄가 없다”며 자율적인 지분 배분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벤처스 측은 “중기청 가이드라인에 맞춰 지분을 배분했고, 팁스 선정 당시 중기청의 심사도 받았던 것”이라며 “지분은 취득하는 개념이 아니라 투자하는 개념이고, 벤처기업의 특성상 우리도 수익을 내려면 해당 스타트업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면 무죄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