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이대호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으로 팀에 역전승을 선물했고,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대호에 대해 극찬을 쏟아냈다. 특히 시애틀 지역 매체 <더 뉴스 트리뷴>은 경기 직후 기사에서 “이대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에서 온 (만) 33세의 루키(신인선수)가 드라마를 쓸 줄 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콧 서비스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으로 주전이 아닌 아담 린드의 백업 멤버로 뛰고 있는 이대호. 아직 규정 타석을 소화하지 않아 정확한 기록을 산출하긴 어렵지만 시즌 개막 후 지금까지의 성적을 보면 시즌 4호 홈런이 나오기까지 무려 8.8타석당 1개의 홈런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타석당 홈런 아메리칸리그 1위 박병호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이다(아메리칸리그에서 규정 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 중 타석당 홈런 1위 박병호는 76타석에서 7개의 홈런으로, 10.9타석 당 1개의 홈런을 생산하고 있다).
‘드라마를 쓰는 남자’ 이대호는 플래툰 시스템은 받아들이지만 8번 타순에 대해서는 아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대호는 이런 상황에 대해 실망을 할까. 기자가 만나본 이대호는 충분히 팀 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오히려 “플래툰을 적용하겠다고 말한 감독이 그걸 지키지 못하면 선수들이 헷갈릴 수 있다”며 감독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이대호는 경기 출장 기회보다 타순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대부분 8번 타순이다 보니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기회가 7회까지 두 차례 정도밖에 안 된다. 7회 이후 선발이 내려가서 오른손 투수가 올라오면 교체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로선 두 타석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타순이 좀 앞에 있다면 투수를 상대할 기회가 더 많을 텐데….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타석에 나갈 수 있는 게 어딘가.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스콧 서비스 감독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플래툰 시스템에 대해 자신의 분명한 생각을 전한 바 있다. 플래툰 시스템은 제리 디포토 단장과 그 외 많은 이들의 결정을 통해 정해진 계획이란 점과 좌투수에 약한 아담 린드를 먼저 영입하면서 좌투수에 강한 오른손 타자를 찾았고, 그게 이대호였다는 내용이었다. 즉 그는 아담 린드가 주전이기 때문에 이대호는 아담 린드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걸 분명히 못 박았다.
때렸다 하면 2층으로 향하는 박병호의 홈런. 어느새 팬들은 그에게 ‘2층 남자’란 별명도 지어줬다. 미국의 <넘버 파이어>란 온라인 매체는 박병호를 가리켜 ‘야구공을 파괴하는 차세대 빅리그 파워히터’라고 찬사를 보냈다.
박병호는 7개의 홈런 중 4개를 430피트, 131미터 이상을 날려 보냈다. 올해 빅리그에서 이런 기록을 세운 선수는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트레버 스토리(콜로라도 로키스)와 박병호, 단 3명뿐이다.
‘2층 남자’ 박병호는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루틴으로 경기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올 시즌 박병호가 때린 7개 홈런의 타구 방향을 보면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는다. 그중 3개의 홈런은 왼쪽 담장을 넘겼고 중견수 키를 넘기는 홈런이 2개였다. 밀어 쳐서 날린 홈런도 2개. 상대 투수가 몸쪽으로 패스트볼을 꽂아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감 있게 스윙한다. 단순히 힘으로 만든 홈런이 아닌 기술적인 요소도 가미된 홈런이란 내용이다.
이렇게 홈런으로 메이저리그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박병호이지만, 그는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못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홈런의 임팩트가 강하긴 해도 안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좋은 타구를 계속 생산해내면 이후 타석에 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라며 홈런, 안타보다 자신감을 더 내세웠다.
박병호는 홈런의 엄청난 비거리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비거리에 신경 쓰다 보면 타격폼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 그는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루틴을 갖고 가면서 박병호답게 경기에 임하는 게 목표”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동안 득점권 타석에서 적시타를 터트리지 못한다고 지적받았던 박병호는 5월 들어 미네소타 타자들 중 가장 강력한 한 방을 보여주고 있다. 박병호한테 아쉬운 부분은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타순이다. 주로 5, 6번에 서고 있는 그는 보다 많은 경험을 위해선 1회부터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타순 조정이 필요하다. 박병호의 타순과 관련해 이대호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병호는 5, 6번에 서지만 난 8번 아니면 9번이다. 병호는 나보단 (타순면에서) 행복한 선수다(웃음).”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