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스페셜 지금 혼밥하십니까’의 한 장면.
[일요신문] 공기업 신입사원 김 아무개 씨(여·25)는 제주도 출신이지만 서울생활이 외롭지 않다. 퇴근 후엔 일류 셰프의 레시피를 찾아 직접 요리를 해서 근사한 상을 차린다. 첫 숟갈을 뜨기 전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는 것은 필수다. ‘#혼밥#혼자만의 시간’. 식사는 팔로어들과 함께하기에 외롭지 않다.
그렇다고 그를 집에 콕 처박힌 방콕족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 취미와 자기계발을 위한 다양한 동호회 활동은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주말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생활스터디부터 시사토론모임까지 주말은 평일보다 더 분주하다. 하지만 이것이 모두 온라인에서 이뤄진다는 것이 비밀 아닌 비밀.
“이번 주도 이 정도면 수고했다.” 성균관대학교 재학생 이 아무개 씨(28)는 이렇게 자위하며 자신만을 위한 주말을 보내기로 다짐한다. 그는 주말을 알차게 보낼 여가거리 찾기에 조금 상기된 모습이다. 영화를 볼까, 친구를 만날까. 잠시 고민하다 결국 둘 다 포기한다. 영화비도 아깝고, 친구를 만나 계면쩍게 자신의 근황을 털어놓는 것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취업준비생인 그는 여러 선택지 중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혼자’가 되었다. 매일 취업 이력서를 내고, 탈락 결과를 받는 일상이 반복되는 그에게 혼자는 금전적, 정신적 비용이 가장 적게 들기 때문이다.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간관계는 줄어들었다. 그가 한 주 동안 타인과 대화를 나눈 것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할 때뿐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20대 73% 자발적 혼자 선택, 80% 혼자 있는 시간 긍정적
비단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전국의 20대 634명을 조사한 ‘2016 한국 20대의 관계맺기 新풍속도’ 리포트를 지난 4월 26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관태기’를 겪는다는 20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발견됐다. ‘혼자’다. 20대의 73%가 자발적으로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있으며, 약 80%가 혼자 보내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응답했다. 20대의 카카오톡에 등록된 평균 지인의 수는 254명, 하지만 그중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수는 20명에 불과했다. 20대의 25%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혼밥족을 겨냥한 다양한 편의점 상품.
20대연구소의 이재흔 연구원은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현상에 대해 “아무래도 취업이 20대의 가장 큰 고민인 만큼 그 영향이 큰 것 같다”며 “인맥도 취업을 위한 스펙이 된 상황에서 인간관계는 20대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됐다”고 덧붙였다. 삶에 여유가 없는 20대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혼자 있는 상태를 즐기게 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혼자 놀기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혼자 놀기 레벨 측정표’가 나오는가 하면, SNS를 통해 자신만의 혼자 놀기 비법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덩달아 유통업계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각종 1인용 상품을 내놓고 있다.
# “혼자 놀기, 그거 심해지면 병 돼요”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중앙대 사회학과 주은우 교수는 “공동체를 이어주는 사회적 연대망은 꼭 필요하다”며 “관계맺기를 통해 사회적 규칙을 습득함으로써 사회성을 갖게 되는데, 온라인상의 인간관계가 현실의 관계망을 대체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요즘 20대의 개인화는 이미 기업에서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며 “그래도 기업 입장에서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외향적인 신입사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고 말했다.
20대 절반을 ‘혼자’ 보내왔다는 전은혜 씨(여·27)는 “혼자 놀기, 그거 심해지면 병 돼요. 누군가를 만나 눈을 보고 대화하는 건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 씨는 대학 진학 후 딱히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대학을 휴학한 1년 동안 단 한 명의 친구와도 만나지 않았지만, SNS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했다. 취업할 때가 되어서야 전 씨는 자신이 타인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 씨는 요즘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금재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