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에 1196명의 어린이들이 참가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일요신문] 어린이 바둑 최강자를 가리는 ‘제5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바둑대회는 같은 날 한 자리에 모여 조별 예선과 본선 토너먼트를 치른 만큼 대회장 열기가 뜨거웠다. 지난해 대회보다 규모도 커져 올해는 총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패배의 아쉬움과 승리의 짜릿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나이다운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바둑이 컴퓨터게임과 만화책보다 재밌다는 꿈나무들의 대회 현장을 따라가 봤다.
어린이날인 5일 오전 10시 서울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제5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가 열렸다. 일요신문이 주최하고 대한바둑협회, 한국초등바둑연맹이 주관하며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후원한 이번 행사는 ‘알파고야 놀자’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됐다.
‘놀이동산 대신 바둑축제 왔어요.’ 리본을 앙증맞게 맨 어린이가 바둑 삼매경에 빠져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대회를 주최한 신상철 일요신문 사장은 개회사에서 “어린이날에 놀이동산으로 놀러 가지 않고 바둑 두러 온 참가자 여러분들은 대단한 어린이들이다. 바둑이 어떤 놀이보다 재미가 있고 학습능력, 집중력을 높이는 좋은 놀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슬로건은 ‘헬로 바둑’이었는데 올해는 ‘알파고야 놀자’다. 바둑을 열심히 둬서 백전백승하는 어린이들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어린이들을 격려했다.
“지금부터 대국을 시작하겠습니다.”
오전 10시 30분, 경기장을 울리는 징 소리와 함께 신상철 사장의 개국 개시 선언으로 경기는 시작됐다. 이번 바둑대회는 최강부, 유단자부, 고급부, 중급부, 샛별부, 일반부 등 총 16부에 1169명의 바둑 유망주 어린이가 참가했다. 지난해보다 200여 명이 더 많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한국초등바둑연맹 강준열 회장은 “어린이 바둑대회 중에서는 이렇게 큰 규모를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대회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오전에 열린 예선전부터 남다른 각오를 보였다. 이날 바둑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김재형 군(6)은 “예선 첫 게임에서 한 번 졌다. 그래서 오늘은 꼭 2등 하겠다”라는 ‘남다른’ 포부를 밝혔다. 김 군은 실제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과 겨뤄 2승 1패의 성적을 거둬 3자 동률을 이뤘지만, 아쉽게 추첨으로 예선 탈락했다.
새싹반 5학년부에 참석한 박준석 군(12, 인천)은 첫 번째 대국을 앞두고 “연습을 많이 못하고 와서 긴장된다. 1등은 아니더라도 끝까지 분발하겠다”고 말했다. 박 군의 어머니는 “그동안 아이가 바둑을 배우면서 차분해지고 집중력도 향상됐다. 오늘 대회도 아이가 원해서 출전한 것”이라며 “아이가 좋아하면 앞으로도 바둑을 계속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진훈 군(왼쪽)과 조성빈 군의 최강부 결승대국. 백을 든 진훈 군이 흑 조성빈 군을 7집 반 차로 이겼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오후부터 입상자의 윤곽이 드러나며 대회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먼저, 이날 대회 첫 번째 우승자가 탄생한 새싹부와 샛별부에선 어린 바둑 유망주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가장 어린 참가자로 구성돼 있는 새싹 1학년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유준영 군(장평초, 1)은 “우승은 생각도 못했다. 정신이 없다“며 겸손한 수상 소감을 말했다.
샛별 5~6학년부는 지난해 대회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지난해 준우승을 차지한 이강민 군(봉화초, 6)이 우승을 차지한 것. 이 군은 “지난해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더 기쁘다”라고 말했다. 준우승자 조예준 군(석성초, 5)은 “끝내기에서 실수했다. 2연속 우승을 목표로 참가했는데 아쉽다.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더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단자부에선 드라마 같은 역전 승부가 펼쳐지기도 했다. 우승을 차지한 남태열 군(매원초, 5)과 준우승은 김성재 군(가고파초, 4)이 주인공이었다. 두 참가자는 예선 첫 경기에서 만나 김 군이 승리했으나 결승에서는 결과가 뒤바뀌었다.
결승 대국에서도 남 군이 초반에 불리했지만 끝내기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남 군은 “예선에서 한 번 진 상대를 만나 더 떨리고 긴장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새벽부터 마산에서 출발한 준우승자 김성재 군은 “초반부터 후반까지 유리했는데 정말 아쉽다”며 “바둑은 7살부터 시작했는데 올해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기 시작했다. 다음엔 우승을 꼭 하고싶다”고 말했다.
지난 대회에서 아깝게 탈락한 참가자들의 약진이 돋보이는 승부도 있었다. 고급부 우승을 거머쥔 김예흠 군(다솜초, 4)은 준우승을 한 박성환 군(한얼초, 5)을 상대로 10집 차이로 불계승을 거뒀다. 김 군은 지난해 제4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중급부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올해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를 모두 이기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김 군은 “이세돌 9단과 같은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 대회 출전을 꾸준히 해서 실력을 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쉽게 준우승을 한 박성환 군은 “지난해 대회에서 16강까지 올랐다가 탈락했다. 오늘은 준우승까지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영광의 수상자들이 대회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아랫줄 왼쪽부터 유단자부 준우승 김성재 군(가고파초, 4), 최강부 준우승 조성빈 군(행당초, 6), 최강부 우승 진훈 군(연은초, 6), 유단자부 우승 남태열 군(매원초, 5).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기력이 가장 높은 최강부(아마4단 이상) 결승은 단연 대회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날 최강부 결승은 진훈 군(연은초, 6)과 조성빈 군(행당초, 6)이 맞붙었는데, 특히 진 군은 지난해 5월 ‘제44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바둑경기’에서 남자초등부 금메달, 2014년 8월 홍콩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 준우승, 일요신문배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매년 입상을 하는 등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실제로 30여 분의 치열한 혈투 끝에 백을 든 진훈 군이 흑 조성빈 군을 7집 반 차로 이겼다. 우승자 진 군은 “전날 우승하는 꿈을 꿨다. 실제로 우승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준우승자 조 군은 “초반의 실수가 끝까지 이어졌다. 결승전이라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며 “최강부 준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엔 우승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최강부 우승자인 진훈 군에게는 100만 원의 장학금과 상장이, 준우승자 조성빈 군에게는 장학금 50만 원과 상장이 돌아갔다. 이와 더불어 최강부, 유단자부 우승·준우승자에게는 ‘제5회 아시아 학생바둑대회’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신상철 일요신문 사장(한국중고바둑연맹 회장)은 폐회사에서 “프로기사를 목표로 바둑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엘리트 바둑도 중요하지만, 튼튼한 생활 바둑이 기반이 돼야 엘리트 바둑도 있다. 입상자들뿐만 아니라 생활 바둑을 두는 어린이들에게서도 바둑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열정을 확인했다. 일요신문은 앞으로 엘리트 바둑을 지향하면서도 국내 생활 바둑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어린이날 축제 한마당 프로기사와 ‘다면기’, 부모·스승님과 ‘환상의 짝궁’ 이벤트 프로기사와 함께하는 ‘다면기’ 이벤트도 열렸다. 사진은 김신영 초단의 다면기 지도대국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다면기 이벤트에선 이날 심판위원 자격으로 대회에 참여한 유재성 5단, 김수진 3단, 김신영 초단은 각각 8명의 어린이 참가자를 상대했다. 이벤트에 참가한 권예빈 양(12)은 “대국을 두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점이나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물어봤다.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임주혁 군(11)은 “대국을 마치고 수읽기를 더 공부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오늘 대회는 예선 탈락했는데, 수읽기에서 실수가 많았다.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연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프로기사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다면기를 두며 어린이들에게 꼼꼼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김수진 3단은 “가끔 예상치 못한 수를 두는 참가자들이 있어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 “일반 학원을 다니는 어린이들은 프로기사와 바둑을 둘 기회가 거의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수를 알려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난 3회 대회부터 매년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에 심판위원으로 참석한 김신영 초단도 이벤트가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에 남아 지도했다. 김 초단은 “다면기를 통해 어린 참가자들의 열정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바둑을 재밌게 두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면기와 동시에 진행된 ‘환상의 짝꿍 이벤트’에 대한 참가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부모님과 어린이 참가자 각각 한 명씩 팀을 이뤄 ‘페어바둑’으로 진행된 이벤트는 총 16개 팀이 참가해 열띤 승부를 벌였다. 환상의 짝꿍 이벤트에 참가한 김연아 양(9)은 아버지와 함께 팀을 꾸렸다. 김 양의 아버지는 “딸이 예선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용기를 불어 넣어 주기 위해 이벤트에 참가했다”며 “딸과 함께 팀으로 바둑을 둘 기회가 많지 않은데, 좋은 추억거리가 됐다”고 전했다. 최효석 군(8)은 대국 시작 전,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전략을 짰다. 최 군의 아버지는 “바둑을 둘 줄 몰라 오히려 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아이를 따라 바둑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박] [문] |
흑 조성빈 백 진훈 최강부 결승전 해설 침착한 실리바둑 진훈 큰 바둑으로 성장하고 있다 1보 1도 2보 2도 어린이 최강부 결승에 오를 정도라면 두 소년 모두 한국기원 연구생 자격이 충분하다. 백을 든 진훈 군은 충암바둑도장에서 수학 중이며 흑의 조성빈 군은 이세돌연구소에서 기력을 단련하고 있다. 흑17은 18의 곳 양걸침이 보통. 흑33이 느슨한 수로 <1도> 흑1로 모자 씌워 크게 공격할 자리였다. 흑41로 우변을 지킨 수가 근사하다. 흑69는 70의 곳에 이어 최대한 백을 괴롭힐 자리. 백72로 살아서는 백이 편한 국면이다. # 제2보(73∼160) 흑80은 A로 차단할 곳. 늦추는 바람에 흑89까지 손해가 크다. 흑103이 패착으로 <2도> 흑1의 끝내기가 컸다. 백2는 흑3으로 이어 크지 않으며 다음 백A로 잇는다면 흑은 다시 선수를 뽑아 큰 곳으로 향한다. 백128까지 이미 덤에 걸려 뒤집기 어려운 바둑이 됐다. 충암바둑도장에서 진훈 군을 지도하고 있는 서중휘 5단은 침착하고 실리를 좋아하는 바둑으로 제자를 평했다. 당장 연구생 6조로 들어갈 만한 실력이지만 연구생 입성은 잠시 미뤄두고 있다고. 이대로 착실히 성장하면 큰 바둑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160수 다음 줄임, 백7집반승. 유경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