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삼성과 LG의 경기에서 삼성 3루주자 이지영이 홈으로 파고들어 세이프 되고 있다. 주심의 첫 판정은 아웃이었으나 류중일 삼성 감독의 어필로 LG 포수 정상호가 홈플레이트를 막았다는 판정에 따라 세이프로 정정됐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정상적인 주루와 상식적인 슬라이딩
홈은 야구의 모든 점수가 탄생하는 장소다. 포수는 어떻게든 홈 플레이트를 지키려 하고, 주자는 어떻게든 공보다 먼저 홈 플레이트를 통과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치열한 몸싸움이 펼쳐진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포수는 블로킹, 주자는 슬라이딩을 수없이 훈련하고 또 해왔다.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가 몸 대 몸으로 부딪히니 양쪽 모두 부상의 위험에 자주 노출됐다.
올해는 굳이 그렇게 몸을 날릴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는 안 된다. 야구 규약 7.13항에는 홈 플레이트에서 포수와 주자의 충돌을 막기 위해 마련된 금지 조항들이 상세하게 명시돼 있다.
일단 득점을 시도하는 주자는 포수(혹은 포수 대신 홈을 수비하러 들어온 상대팀 선수)에게 부딪힐 목적으로 자신의 베이스러닝 주로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 피할 수 있는 충돌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예를 들어 주자가 홈을 터치하는 대신 어깨를 낮춰 상대 선수에게 몸을 들이밀거나, 손·팔꿈치·팔을 이용해 상대를 밀치면서 들어온다면 이 조항을 위반하는 상황이 된다. 예전에는 홈 승부가 아슬아슬할 때, 체격이 큰 주자들이 일부러 포수들의 몸을 향해 거세게 부딪히면서 공을 떨어뜨리도록 유도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변칙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다. 정상적인 주루와 상식적인 슬라이딩만 허용된다.
만약 홈으로 달려오던 주자가 수비 선수에게 일부러 몸을 던졌다고 심판이 판단한다면, 그 주자는 상대가 아직 공을 잡지 못했더라도 무조건 아웃이 된다. 동시에 다른 주자들은 홈에서의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밟았던 베이스로 전원 돌아가야 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도 있다. 다리가 먼저 들어가는 슬라이딩(피트 퍼스트 슬라이딩)은 포수와 부딪히기 전에 주자의 엉덩이와 다리가 먼저 그라운드에 닿아야 한다. 머리가 먼저 들어가는 슬라이딩(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역시 포수와 접촉하기 전에 주자의 상체가 이미 그라운드에 닿아 있어야 한다. 대신 포수가 주자의 길목을 막고 있어서 주로 이탈이 불가피했을 때는 심판의 재량에 따라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 포수의 블로킹에도 변화 필요
사실 ‘홈 충돌 방지법’에 더 적응이 필요한 쪽은 주자가 아닌 포수다. 어릴 때부터 홈은 당연히 ‘막아야(블로킹)’ 하는 장소라고 배웠고, 어떻게든 더 잘 막기 위해 훈련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갑자기 홈을 ‘비워줘야’ 한다고 하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주자를 보면서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게 오히려 고역이다. 그러나 이 규약은 결국 포수의 부상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일단 포수는 스스로 공을 갖고 있을 때를 제외하면, 득점을 시도하는 주자의 주로를 막을 수 없다. 공을 아직 못 받은 포수가 주자의 길목을 막고 서 있다면, 심판의 판단에 따라 주자에게 무조건 세이프를 줄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홈 쪽으로 오는 송구의 방향이나 궤도, 바운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자의 주로를 막게 되는 상황이라면, 포수가 정당하게 포구 시도를 했다고 인정한다. 이때는 주자도 포수와의 충돌을 피하면서 홈에 슬라이딩할 수 있다. 또 포수가 설사 홈 플레이트를 발로 막고 있었다 해도, 주자의 주루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거나 어차피 주자가 아웃이 될 타이밍이었다고 심판이 판단한다면 굳이 규칙 위반을 적용하지 않는다.
물론 이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규약에는 ‘포수가 슬라이딩을 시도하는 주자를 태그 할 때는 불필요한 강제 접촉을 피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권고 사항이 적혀 있다. 무릎이나 정강이 보호대, 팔꿈치 등을 이용해 주자와 상습적으로 불필요한 접촉을 하는 포수는 KBO 차원에서 징계도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판단은 심판이 한다. 결국 심판들에게도 또 하나의 숙제가 떨어진 셈이다.
# 메이저리그가 먼저 시행
메이저리그는 한국보다 두 시즌 앞선 2014년부터 ‘홈 충돌 방지법’을 시행했다. 이 룰은 이른바 ‘버스터 포지법’으로도 불린다. 샌프란시스코 포수 버스터 포지가 2011년 홈에서의 충돌로 인해 큰 부상을 당하면서 이 룰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포지는 그해 5월 25일 플로리다(현 마이애미)와의 홈경기에서 상대 주자 스캇 커즌스의 홈 쇄도를 블로킹하다 거세게 충돌했다. 격투기를 방불케하는 몸싸움이었다. 이 일로 포지는 정강이뼈가 부러졌고, 양쪽 발목 인대가 파열됐다. 그대로 그의 시즌은 끝났다. 이듬해 정규시즌 MVP로 우뚝 서면서 부상 후유증을 털어냈지만, 그 사건 이후 홈 플레이트에서의 충돌에 대한 경각심이 메이저리그 전체에 퍼졌다. 포지의 소속팀인 샌프란시스코 브루스 보치 감독이 앞장서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는 찬성파와 “야구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반대파로 나뉘어 논란도 벌어졌다.
결국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또 다시 위험천만한 장면이 나온 후에야 규칙 개정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디트로이트 포수 알렉스 아빌라와 보스턴 주자 데이빗 로스가 다시 한 번 홈에서 세게 부딪힌 것이다. 포수를 향해 돌진했던 로스는 쓰러진 아빌라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했지만,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디트로이트는 아빌라를 보호하기 위해 다음 이닝에 바로 교체했다.
동시에 여론은 다시 뜨거워졌다. 윈터미팅에서 이 사안이 주요 안건으로 떠올랐고, 2014년 2월에 결국 홈 충돌에 대한 새 조항이 생겼다. ‘주자는 포수나 홈 플레이트에 있는 다른 선수와 충돌하기 위해 주로를 벗어나선 안 된다’, ‘포수는 공을 갖고 있지 않을 때 주자의 주로를 막아선 안 된다’, ‘충돌 규정 위반을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 판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하는 ‘홈 충돌 방지법’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 올 시즌 벌써 세 번 나왔다
홈에서의 판정 결과는 곧 점수로 연결된다. 그래서 더 민감하다. 시행 첫 해인 올해 ‘홈 충돌 방지법’으로 인한 심판 합의판정이 세 차례 나왔는데, 세 번 모두 승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아예 승패를 갈랐다.
첫 사례는 4월 12일 잠실 LG-롯데전에서 발생했다. 9회초 1사 만루서 롯데 3루주자 손아섭이 황재균의 유격수 땅볼 때 홈을 파고들다가 아웃 판정을 받았다. 조원우 롯데 감독은 LG 포수 정상호가 충돌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심판진은 ‘포수가 송구를 받으려는 정당한 시도 과정에서 주자의 주로를 막게 되면 규칙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적용해 판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정상호가 유격수 오지환의 송구 방향을 따라가느라 어쩔 수 없이 주로를 막았다고 해석한 것이다. LG가 12-11로 승리했으니, 이 점수가 인정됐다면 승부는 오리무중에 빠질 뻔했다.
‘홈 충돌 방지법’으로 판정이 번복돼 득점을 인정받은 첫 수혜자는 삼성이었다. 4월 2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LG와의 홈경기였다. 4-6으로 뒤진 6회말 무사 1·3루에서 삼성이 더블 스틸을 시도했다. 1루 주자 이영욱이 2루로 뛰었고, 공이 2루로 향하는 사이 3루주자 이지영이 홈으로 파고들었다. 공이 홈으로 날아오자 이지영은 LG 포수 정상호를 피해 슬라이딩을 시도하면서 손을 뻗었다. 손은 홈 플레이트에 닿지 못했다. 구심이 아웃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이때 류중일 삼성 감독이 심판 합의판정을 요청했다. “포수가 공을 받기 전에 주자의 길을 막은 것 같다. 포수의 위치를 다시 봐달라”는 요지였다. 심판진은 중계 리플레이 화면을 확인한 끝에 판정을 세이프로 번복했다. 정상호가 공을 잡기 전에 주자 이지영의 길목을 막았다고 판단했다. 양상문 LG 감독이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득점으로 경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삼성은 이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경기를 뒤집어 결국 9-7로 이겼다.
처음으로 판정 번복 사례가 나오자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KBO는 메이저리그 심판감독관에게 이 장면의 동영상을 보내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현지 감독관은 이메일을 통해 “나였어도 한국 심판들과 똑같은 판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어린이날 KBO리그 최대의 흥행카드인 ‘잠실 더비’에서 등장했다. 아예 승부가 갈렸다. 만원 관중이 들어찬 5월 5일 LG-두산전. 정규이닝까지 7-7로 맞선 끝에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연장 10회말 1사 3루 끝내기 기회에서 LG 루이스 히메네스가 3루수 땅볼을 쳤다. 3루 주자 채은성이 홈에서 아웃될 수도 있었던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두산 3루수 허경민의 송구가 다소 높았다. 두산 포수 양의지는 허경민이 던진 공을 받으려고 뛰어 올랐다가 홈 플레이트로 쇄도하는 채은성 바로 앞으로 착지하면서 태그를 했다. 땅에 닿는 순간 양의지의 발이 슬라이딩하는 채은성을 막아서는 모양새가 됐다.
심판진은 양의지가 태그는 했어도 주자의 길목을 막은 상황이라고 판단해 세이프를 선언했다. 두산이 심판 합의판정을 신청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공식 기록원은 허경민의 송구가 높아 양의지가 홈 충돌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는 두산의 ‘끝내기 실책’으로 인한 LG의 승리로 기록됐다.
공교롭게도 LG는 세 번의 케이스에 모두 연관된 팀이다. 한 번은 피해를 봤지만, 두 번은 웃었다. 그리고 그 세 경기의 결과도 2승 1패로 일치했다. ‘홈 충돌 방지법’이 예상보다 더 승부에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MLB, 강정호 다치게 한 살인 태클 ‘아웃’ 올해 메이저리그에는 이른바 ‘강정호 룰’이 생겼다. 홈 플레이트만큼이나 다른 베이스 역시 위험한 장소라는 점에 메이저리그 전체가 뜻을 모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 노조가 합의한 새 야구 규칙에는 ‘주자는 어느 베이스에서든 선의의 슬라이딩(bona fide slide)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내용은 이렇다. 주자는 ▲베이스에 도착하기 전에 손이나 발이 베이스에 닿는 범위에서 슬라이딩을 시작해야 한다. 또 ▲슬라이딩이 끝나면 베이스(홈 플레이트 제외)에 머물러야 하고 ▲야수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주로를 바꿔 슬라이딩해서는 안 된다. 이 규칙을 한국에서 ‘강정호 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강정호는 지난해 9월 18일(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와의 홈경기에 4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가 1회초 수비 때 왼쪽 무릎을 다쳤다. 컵스의 1루주자 크리스 코글란은 더블 플레이를 시도하던 강정호가 공을 제대로 1루에 송구할 수 없도록 베이스가 아닌 강정호의 왼쪽 무릎을 겨냥해 슬라이딩했다. 코글란의 오른쪽 다리가 강정호의 왼쪽 무릎을 그대로 강타했다. 검진 결과는 왼쪽 무릎 안쪽 측부 인대와 반열판 파열, 그리고 정강이뼈 골절로 나왔다. 강정호는 결국 수술대에 올랐고, 올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지나서야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서는 1루 주자가 더블 플레이를 막기 위해 2루수나 유격수에게 거칠게 슬라이딩하는 장면을 ‘팀 플레이’라고 여겼다. 일부러 다리를 들어 올리고 수비수 쪽으로 돌진하는 주자들도 많았다. 실제로 적지 않은 메이저리거들이 이 사건 이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베이스 앞에서 강하게 슬라이딩하라고 배웠다. 코글란의 플레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감쌌다. 큰 부상을 당한 강정호조차 “내가 잘 피했어야 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여론은 달랐다. 강정호뿐만 아니라 뉴욕 메츠의 루벤 테헤다도 지난해 10월 LA 다저스와의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송구 도중 상대 주자 체이스 어틀리의 슬라이딩에 찍혀 오른쪽 종아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당시 심판진은 “어틀리의 플레이는 합법적”이라고 했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선수를 보호하지 않는 폭력적 슬라이딩은 문제가 있다”며 2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어틀리는 지난해 남은 포스트시즌에 출장하지 못했고, 이 징계는 개막 직전에야 철회됐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사무국과 선수 노조는 결국 새로운 슬라이딩 룰 개정에 합의했다. “선수들의 안전과 정정당당한 경기를 위해 만든 규칙”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이 룰이 적용된 사례도 나왔다. 지난달 6일 탬파베이와 토론토의 경기였다. 탬파베이가 3-2로 앞선 9회초 1사 만루서 토론토 1루 주자 호세 바티스타가 탬파베이 2루수 로건 포사이드의 1루 송구를 방해했다는 점이 인정돼 병살타로 경기가 끝났다. 동점 기회를 놓친 존 기븐스 토론토 감독은 격노했지만, 심판진은 새 룰의 손을 들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