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살균제 이미지컷. 해당 사진의 제품과 기사 내용은 관련 없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곧 여름이다. 각 가정과 사무실마다 여름철 준비가 한창이다. 긴 여름을 나기 전 에어컨 청소는 필수다. 이 과정에서 흔히 쓰는 것이 스프레이 형태의 에어컨 탈취제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영향으로 제품에 선뜻 손이 안 간다. 가습기살균제처럼 에어컨 탈취제 역시 사용하게 되면 그 성분을 그대로 우리 폐로 받아들이게 된다. 해당 물질이 호흡을 통해 우리 폐 안에 들어오게 될 경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염려가 될 수밖에 없다.
화학제품의 독성실험은 다양하게 이뤄진다. 독성은 그 종류에 따라 피부독성, 음용독성, 안구독성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동일한 성분일지라도 주변의 환경, 대상(성인과 아동, 임산부와 노인 등 취약층 등), 노출 시간과 빈도 등에 따라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
문제는 화학제품의 독성테스트에 있어 상당 부분은 흡입독성 실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습기살균제 역시 바로 이 부분을 간과해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문제의 핵심인 PHMG는 기존의 바닥청소 세제의 주요 성분으로 이용됐지만, 가습기 세정제의 성분으로 쓰이면서 기존에는 발견하지 못한 성질의 독성이 흡입과정에서 발현된 경우다.
이규홍 흡입독성연구센터 센터장은 “스프레이는 공산품으로 분류돼(가습기살균제는 의약 외품으로 분류) 산자부에서 관리하고 있어 별도의 안전성 관리방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라며 “공산품품질안전법이 있지만 딱히 (화학제품의 안전성 실험과 관련한) 규정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권익보호 및 책임기업 규탄에 앞장서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미 2014년 스프레이 제품의 위험성과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당시 센터는 살충제, 화장품, 욕실용품, 섬유·신발 탈취제, 주방용품, 방향제, 에어컨 탈취제 등 총 100개 제품에 대해 위험성 평가를 진행했다. 이중 31개 제품은 위험도가 매우 높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해당 평가는 제품의 감수성 분야, 노출수준, 독성분야, 건강 피해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술적 결과를 낸 것이다.
시중에 파는 각종 스프레이 제품들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실제 스프레이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피해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앞서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 에어컨 탈취제 사용 후 호흡기 계통의 건강 이상이 2건 보고됐다. 당시 피해자가 피해 신고를 한 제품은 다름 아닌 옥시 제품이었다.
스프레이 제품 중 방수코팅제의 경우, 피해보고 사례는 실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2012년 1월, 방수코팅제를 사용한 30대 남성은 사용 두 시간 만에 구토와 호흡곤란을 동반한 간질성 폐렴 증세를 보였다. 당시 이 남성의 맥박수는 50~60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했다. 해당 질환을 야기한 의심 성분은 ‘불소공중합체’였다. 하지만 제품에는 해당 성분의 위험성 경고는커녕 함량조차 표시되지 않았다. 방수코팅제의 피해 사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스프레이 같은 공산품들이 제도적인 사각지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스프레이의 안전성 문제는 현재의 화통법, 화관법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정부 책임도 크지만 기업이 자발적으로 해당 제품들에 대한 흡입독성 실험을 해나가야 한다. 제대로 실험을 거친다면 아마도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스프레이의 절반이 퇴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옥시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다면 스프레이의 위험성을 알리는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의 이규홍 센터장 역시 “국가적으로 흡입될 개연성이 있는 제품들에 대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라며 “독성 연구는 결국 신뢰성 문제다. 무조건 제품의 효과만 따져볼 것이 아니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화평법, 유럽의 REACH와 비교해보니… 규제심사안 단계서 ‘유예기간’ 조항 삭제 영국 레킷벤키저를 항의 방문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김덕종 씨와 환경보건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1일 오후 옥시가 입주한 여의도 IFC 앞에서 영국 본사 방문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가습기살균제 참사 이후 국내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법적 제도의 허점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두 개의 법으로 이를 관리하고 있다. 두 법 모두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벌어진 이후인 2015년부터 시행됐다. 특히 핵심인 화평법은 유럽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리치·REACH)를 참고한 것이다. 이규홍 센터장은 새로이 시행되고 있는 해당 제도에 대해 “유럽의 리치와 완전히 똑같다”라며 “일시에 모든 것이 다 바뀔 수는 없지만 법은 비교적 잘 만들어졌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법안을 직접 다뤘던 일부 야권 진영에선 현재의 제도 역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법안 제정에 참여했으며 이후에도 해당 제도의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왔던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실 관계자는 한마디로 “유럽의 리치와 한국의 화평법이 완전히 똑같다는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법이 논의되고 제정됐던 당시, 기업들을 사실상 대변해 온 산업자원부 등 부처에서는 화평법을 경영의 걸림돌로 여기며 각종 로비와 압력을 가해왔다. 당시 기업들은 화평법에 대해 ‘망국법’이란 오명을 씌웠으며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며 화평법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입법예고안에 담겨 있는 세부사항들 중 상당수는 폐기되거나 약화되기도 했다. 기자와 만난 심상정 의원실 박항주 비서관은 가장 첫 손에 ‘예비등록’의 유무를 꼽았다. 박 비서관은 “리치의 경우 화학물질을 등록할 때, 기본적인 정보와 용도를 포함하는 예비등록 단계와 후에 자세한 정보사항을 포함하는 본 등록 단계 등 2단계를 거친다”라며 “반면 한국의 화평법에선 아예 예비등록 단계가 없다. 예비등록과 유사한 ‘보고’라는 단계가 있지만 해당 화학물질의 용도는 사용자가 결정한다”라고 지적했다. 애초 입법예고안에선 연간 0.5톤 이상 평가대상 물질 제조·수입자는 등록 유예기간을 받기 위해 예비등록을 신청할 수 있게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규제심사안 단계에서 행정절차의 간소화를 이유로 예비등록 단계는 아예 삭제됐다. 해당 법안의 핵심인 정보제공 및 교환에 대한 규정도 리치와 비교한다면 대폭 축소됐다. 리치의 경우 허가대상물질 또는 제한 및 금지물질의 양도자는 허가 내용 또는 제한 내용에 대한 정보제공을 해야 하지만 화평법의 경우 이 규정이 없다.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법예고안에는 포함됐지만 심사 단계에서 삭제됐다. 그밖에 리치를 참조로 구비한 상당 부분의 세부규정이 심사 및 국회제출안 단계에서 산업계의 입김으로 삭제되거나 축소됐다(표 참조). 한편 제도적 문제 중에서 바이오사이드(살충제 종류 등에 포함되는 살상물질)의 전반적인 규제와 관련된 법안의 제정 문제가 그 시기를 두고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환경부는 기존물질들의 전수조사 이후 법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결국 기업들의 입김에 따른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앞서의 박 비서관은 “바이오사이드 관련 법안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라며 “환경부는 전수조사 후 법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지만 규제를 의식하는 기업에게만 유리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한] [수] 표 제공=심상정 의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