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담당한 광주 북부경찰서.
지난 5월 11일 광주 북부경찰서는 문 아무개 할아버지(77)를 살해한 혐의로 할아버지의 딸인 문 아무개 씨(여·47)와 아들인 문 아무개 씨(43)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여전히 문 씨 남매는 범행 여부와 동기 등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사건은 어버이날이었던 지난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인 문 할아버지는 지난 6일부터 8일 오전까지 여자친구인 채 아무개 씨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귀가했다. 남매는 이날 오전 2시 30분 즈음 아파트 계단을 통해 문 할아버지의 아파트로 올라갔다. 안방에서 과도와 드라이버를 이용해 문 할아버지의 경부 등을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이어 고무대야를 안방으로 가져와 시체를 넣은 뒤 이불 10채로 덮어뒀다. 그리곤 오전 9시경 옷을 갈아 입은 뒤 가방을 메고 아파트를 나와 도주했다. 이러한 사실은 채 씨의 신고로 드러났다. 채 씨는 오전 8시 10분경 피해자와 만나기로 했으나 연락이 되질 않아 경찰 지구대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원 확인이 힘들 정도로 훼손된 시신과 남매의 떳떳한 태도가 전형적인 원한에 의한 범죄 형태와 흡사하다고 밝혔다. 발견 당시 문 할아버지는 심장 이외에 여러 곳이 흉기에 찔려 있고 얼굴은 둔기로 수차례 맞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살해 방법이 굉장히 잔인하다”고 혀를 내두르며 “상당한 원한과 증오가 범행 현장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 씨 남매는 문 할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딸 문 씨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했고 가정에 소홀했다”면서 “이로 인해 어머니가 힘들게 살아야 했고 어머니를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진술했다. 아들 문 씨 또한 “아버지는 사람도 아니고 사이코패스다”라며 문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문 할아버지의 아파트.
남매의 주장처럼 이들 가족에겐 분명 뭔가 사연이 있었다. 우선 딸 문 씨는 지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네 차례 문 할아버지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하고 법원에서 접근 금지 명령을 두 차례 받아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2011년엔 딸 문 씨는 문 할아버지와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간병 문제로 말다툼하다 얼굴 부위 폭행을 당했다. 해당 사건으로 문 할아버지는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문 할아버지에 대해 “점잖았다”고 입을 모았다. 10년 이상 문 할아버지를 접했던 주민들은 “아내와 자녀를 챙기는 평범한 아버지”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생전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한 부인 손을 잡고 가게를 자주 찾아왔다”면서 “부부가 참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다른 주민은 “개인사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조용하고 신사적이었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또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문 할아버지의 여자친구 채 씨는 “동네 사람들이 열부상이 있으면 받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와이프에게 그렇게 잘했다고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이웃들이 “말수가 적었을 뿐 자상했던 분”이라고 증언하고 있어 남매의 살해 동기는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다만 적지 않은 가정폭력자들이 그렇듯이 문 할아버지 또한 의도적으로 이웃에겐 다정하고 신사적인 모습을 보였을 수는 있다.
한편 문 씨 남매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딸 문 씨는 “어머니가 1990년 교통사고를 당한 뒤 후유증으로 지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2011년 돌아가시기 전엔 치매에 시달렸는데 아버지가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다”면서 “화가 나 동생과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 어머니를 모셔와 돌봐드리며 생활했다”고 말했다. 남매의 어머니를 모셔온 지 한 달 만에 어머니가 숨지자 아버지인 문 할아버지 없이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딸 문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가 미워 연락도 안 했다. 아버지는 결혼 뒤 어머니를 매번 폭행하고 학대했다. 아버지가 너무 증오스럽고 미웠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남매는 공구와 흉기를 이용해 친부를 살해했다.
애초 경찰은 특별한 직업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남매가 아버지의 재산 증여 문제로 다툼이 생기면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 조사결과 아들은 한 달 전 아버지를 찾아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내 놓으라”며 소란을 피우다 경찰 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최근 남매가 문 할아버지를 찾아와 아파트 상속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격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들 문 씨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딸 문 씨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10여 년간 전도사로 일을 했지만 최근엔 마땅한 직업이 없었다. 때문에 경찰 관계자는 “아버지의 재산 증여 문제로 다툼이 생기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재산 문제를 차치하고도 평소 문 할아버지와 남매의 관계는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관계자는 “종종 재산 문제 때문에 남매가 문 할아버지를 찾아오곤 했다”면서 “문 할아버지의 친척에게서 ‘아들 문 씨가 어릴 적부터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문 할아버지가 채 씨와 연애를 하는 것을 두고도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매가 문 할어버지와 채 씨의 연애에 강하게 반발했던 것. 아파트 관계자는 “연애 중인 채 씨와의 관계가 아들 문 씨에게 발각된 뒤론 아파트와 10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데이트를 끝낸 뒤 헤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파트 관계자 또한 “5년 전부터 문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채 씨를 봤었다”면서 “1년 전 무렵부터 채 씨를 아파트 부근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
현재 경찰은 이번 사건에 대한 범행 동기를 재산 다툼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원한과 증오’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재산 분할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 문 할아버지가 기거하던 아파트는 본인 명의로 시가 1억여 원 상당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학대를 보고 자라왔던 분노가 범행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여기에 어머니가 함께 살던 집이 아버지의 여자친구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불안과 분노가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