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업의 이미지가 강한 하림은 서울로 진출해 ‘논현동 시대’ 개막을 준비 중이다. 사진은 논현동 하림 사옥. 임준선 기자.
소규모 축산농가로 시작한 하림은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자산 총액 기준 재계 서열은 38위, 지난 4월 3일 하림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정한 대기업 집단에 신규 지정됐다. 공정위는 하림의 국내 계열사가 58곳(해외 법인은 39곳)이며, 자산 총액은 9조 9000억 원이라고 밝혔다. 농·축산업을 뿌리로 한 기업인 가운데 대기업 총수가 된 인물은 김 회장이 유일하다.
하림은 닭고기 전문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양계업을 영위하는 ㈜하림의 2015년 매출은 7940억 원이다. 가공·유통까지 포함한 닭고기 부문 총매출은 1조 10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는 하림의 주력 사업부문인 사료업 매출에 비해 3000억 원가량 적은 것이다.
하림의 핵심 계열사이자 국내 사료기업 ‘빅3’에 속하는 팜스코의 지난해 매출은 875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사료부문 매출은 4920억 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계열사 제일사료의 매출 6300억 원, 양돈업체 선진의 사료부문 매출 2830억 원을 더하면 하림은 사료부문에서만 1조 4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농·축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사료 시장은 하림 대 비하림으로 양분돼 있다. 수십 년째 축산농가를 경영하고 있는 A 씨는 “하림이 만든 사료를 먹여 닭이나 돼지를 키운 뒤 다시 하림을 통해 도매나 소매로 납품하고 있다”며 “특히 육계(식용으로 쓰일 닭을 기르는 사업) 쪽은 하림이 생산부터 유통까지 장악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하림은 국내 최대 벌크선사인 팬오션을 약 1조 원에 인수했다. 동물사료의 원료인 곡물을 안정적으로 수입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당시 재계 안팎에선 하림의 팬오션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해운업 이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림의 인수 첫 해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팬오션의 연매출액은 1조 7600억 원, 영업이익은 2300억 원에 육박했다.
농,축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사료 시장은 하림 대 비하림으로 양분돼 있다. 수십 년째 축산농가를 경영하고 있는 관계자는 “하림이 만든 사료를 먹여 닭이나 돼지를 키운 뒤 다시 하림을 통해 도매나 소매로 납품하고 있다”며 “특히 육계(식용으로 쓰일 닭을 기르는 사업) 쪽은 하림이 생산부터 유통까지 장악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사진은 일요신문 db.
지난 4월 28일 하림은 팬오션에 이어 또 한 번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계열사 엔바이콘을 통해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부지를 매입하기로 한 것. 취득 예정 금액은 4525억 원, 매각주간사인 무궁화신탁 측은 지난 11일 “하림이 계약금으로 10%를 선납입했고, 남은 자금 조달은 곧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엔바이콘은 자산총액 47억 원, 연매출 1억 원 안팎의 유통회사다. 엔바이콘이 독자 힘으로 파이시티 부지를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하림은 엔바이콘의 지분 100%를 소유한 계열사 NS쇼핑을 통해 자금 확보에 나섰다.
NS쇼핑의 현금성 자산은 2015년 말 기준 1895억 원이다. 전체 자산(4498억 원) 가운데 현금 비중은 높은 편이다. 이번 인수전에서 NS쇼핑은 자사 현금 2000억 원을 투입하는 한편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남은 ‘실탄’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경우 NS쇼핑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지만 하림 측은 현금 자산보다 부채(1160억 원)가 적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앞서 팬오션 인수를 위해 계열사 자금을 끌어 쓴 데 이어 파이시티 개발 사업까지 손대면서 일각에선 하림 측의 재무 리스크가 커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낸다. 하림의 지주사인 제일홀딩스의 부채 규모는 2014년 2조 2480억 원에서 2015년 4조 9822억 원으로 2배가 뛰었다. 같은 기간 자산(3조 4802억 원→6조 8862억 원)도 늘었지만 부실 위험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세부적으로 그룹 내 핵심 계열사 3곳의 부채는 2년 사이 모두 10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팜스코는 2013년 3141억 원에서 2015년 4562억 원으로, 선진은 1374억 원에서 2465억 원으로, ㈜하림은 2736억 원에서 3823억 원으로 각각 늘었다. 또 제일사료의 경우는 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405%에 달해 재무 건전성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차입 부담에도 김홍국 회장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낮은 대출 금리가 있다. 한 예로 제일사료는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단기 원화대출(250억 원)과 외화대출(1537억 원)을 받으면서 그 금리로 각각 3.42%~3.53%, 1.05%~1.27%를 적용받았다. 특히 외화대출은 정부 정책에 힘입어 낮은 대출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림의 해외 법인 수는 39곳에 이른다.
그간 김홍국 회장은 이른바 ‘삼장(농장·공장·시장) 통합 경영시스템’을 주창하며 하림을 ‘글로벌 곡물 유통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가축을 먹이고, 기르고, 가공하고, 판매하는 모든 사업을 수직계열화하겠다는 것이다. ‘컨트롤타워’는 서울 논현동에 준공 중인 16층짜리(연면적 5947m²) 신사옥이다. 시공사 남광건설이 짓고 있는 신사옥은 외장을 제외한 전체 공사비 규모가 85억여 원으로 알려졌다.
남광건설은 NS쇼핑복합건축물 신축공사 등 하림그룹으로부터 굵직한 공사를 여러 차례 수주한 바 있다. 남광건설 최대주주는 광주은행이지만 하림도 금융 계열사인 에코캐피탈을 통해 남광건설 지분 12.19%를 보유하고 있다. 향후 하림이 남광건설을 인수한다면, 현재 계열사로 있는 동림건설과 함께 건설 부문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 이밖에 하림은 동물약품 제조, 애견 산업, 태양광산업에도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여느 재벌 못지않은 문어발 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림은 이제 ‘닭고기 회사’라고 부르기 힘든, 명실공히 ‘대기업’이다.
하림은 서울로 진출해 ‘논현동 시대’ 개막을 준비 중이다. 논현동 신사옥은 향후 준공될 파이시티 물류센터와 더불어 하림의 ‘미래 먹을거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림의 ‘문어발 확장’이 반드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 확장 과정에서 이미 부채가 늘었고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또 대기업으로 신규 지정된 만큼 각종 규제 등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김 회장이 대기업으로 올라선 하림의 논현동 시대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