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법에 의거해 ‘흉악범’으로 분류된 조 씨의 신상공개는 일사천리였다. 지난 5월 1일 피해자인 최 아무개 씨(40)의 시신이 발견된 지 나흘 만에 검거된 조 씨는 경찰 조사 바로 그 다음 날인 지난 7일 마스크와 모자를 벗은 채 언론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당시 경찰은 “구속영장 발부 전이기 때문에 경찰이 직접 공식적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다”라면서도 맨얼굴의 조 씨를 기자들 앞에 세웠다. 같은 날 오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조 씨의 실명과 나이 등 나머지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조성호 신상 공개에 대해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YTN 뉴스 캡처.
미리 공개된 조 씨의 사진만으로 그를 찾아낸 네티즌들은 실명과 나이가 확인되자 조 씨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조 씨의 지인과 친인척, 심지어 헤어진 옛 애인에 대한 개인정보까지 말 그대로 ‘털었다’. 조 씨에 대한 네티즌들의 분노가 이들에게 돌려지면서 경찰은 부랴부랴 “조 씨 주변 인물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 상에 올릴 경우 명예훼손 및 모욕 등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이들의 개인정보는 온라인을 통해 퍼진 뒤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조 씨의 신상공개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었다. 신상공개를 반대하는 측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배제한 경찰과 언론의 분노팔이 장사에 국민들은 놀아나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고통받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법적으로 확실히 유죄판결을 받아내기 전, 심지어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에 경찰의 신상정보공개위원회의 판단만으로 이뤄진 결정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여론과 언론에 휩쓸려서 섣부르게 결정 내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찬성하는 측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공익의 목적을 띤 것으로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을 뿐”이라며 반박했다.
경찰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네티즌들의 논쟁에 더욱 불을 지폈다. 실질적인 강력 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 가이드라인은 특강법에 명시돼 있다. ①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 ②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③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④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등의 요건을 모두 갖춰야지만 피의자의 얼굴, 이름,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은 임의규정인 만큼 신상공개에 대한 판단은 검찰이나 사법경찰 등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다.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신상공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피의자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2013년 ‘인천 과외 제자 살인사건’이나 2014년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 ‘대구 여자친구 부모 살인 사건’ 등의 피의자들이 사건의 잔인성과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했다. 이 때문에 “범죄자 신상공개의 기준이 고무줄이냐”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9일 언론 브리핑에서 “흉악 강력 범죄자들의 신상공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강법 상에 명시된 범죄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을 때를 기준으로 신상공개를 할 수 있다는 것. 얼굴 공개의 경우 “언론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워 일정시간 취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현행 특강법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강법이 규정하고 있는 신상공개 범죄는 살인, 존속살해, 촉탁살인, 인신매매, 성폭력, 강도, 폭력조직 구성 활동 등이다. “‘원영이 사건’ 등 아동학대 사건 피의자인 부모들의 신상도 공개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쳤으나 공개 결정을 판단할 수사기관이 이를 외면한 이유가 여기서 기인한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경우는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다수가 ‘폭행치사’로 혐의가 좁혀지고 특강법 상 신상공개 범죄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정보 공개를 통한 공익 신장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아동학대 등 특강법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피의자들의 신상공개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법조계는 신상공개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한 변호사는 “현재 불구속된 피의자의 경우는 언론이나 수사기관에 의해 얼굴이 공개되는 데 반해 구속된 피의자의 경우는 오히려 전혀 공개되지 않는 불균형이 있다”라며 “범죄의 중대성과 피의자의 자백여부, 범행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가 갖춰져 있다면 국민의 알 권리와 유사 범죄 예방을 위한 신상공개에는 어떠한 법률적 문제도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피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나 일반 시민의 입장이라면 강력 범죄를 일으킨 범인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클 것”이라며 “아동학대 사망 등 사회적인 파장이 크고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해서도 피의자들의 신상공개를 위한 특별법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려의 시각도 있다. 피의자의 신상 공개 가이드라인에 앞서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의자 주변인물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강력범죄와는 다르지만 실제로 지난 2013년 11월에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신상이 공개됐던 아버지를 둔 아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과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상공개로 인해 범죄에 실질적인 책임이 없는 피의자의 주변인물에게 ‘주홍글씨’인 2차적 징벌이 주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광현 광주여대 경찰법학과 교수는 “피의자 신상공개 가이드라인 제작은 범죄예방효과 측면에서 실효성에 의구심이 들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는 필요하다고 본다”며 “다만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는 피의자의 신상 공개는 피의자의 인권이라는 기본권과 피의자의 가족, 지인들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얼굴, 이름, 나이 등 필요최소한의 범위로 제한해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역대 신상공개 흉악범은? 연쇄살인·토막살해 “용서는 없다” 흉악 강력 범죄자의 신상 공개에 불을 지핀 것은 2009년 강호순의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이었다. 강호순은 2005년 10월 경기도 안산에서 장모(당시 60세)의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자신의 네 번째 부인(당시 29세)을 숨지게 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총 10명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만 해도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린 상태로 호송됐으나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국민들의 알 권리 보장, 범죄 예방 등 공익 기여의 판단에 따라 언론은 강호순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후 부산에서는 2010년 2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 아무개 양(당시 13세)을 납치해 성폭행 및 살해한 뒤 시신을 물탱크에 유기한 김길태의 신상이 공개됐다. 경찰이 피의자의 신상을 직접 공개한 것은 피의자들의 인권이 강조됐던 2004년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경찰은 수사 당시 김길태의 신상을 밝히고 공개수배를 했던 점, 사건의 심각성과 사회적 관심도 등을 종합해 신상 공개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에는 수원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 오원춘의 신상이 공개됐다. 오원춘은 집 근처를 지나가던 피해자 A 씨(당시 28세)에게 성매매를 제의했다가 A 씨가 완강히 거부하자 흉기로 머리를 쳐서 기절시킨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A 씨의 시신을 280조각으로 해체하는 등 범행 이후의 충격적인 행적에 대해 “인육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어 대구에서 술에 취한 여대생을 납치한 뒤 성폭행을 시도하다 반항하자 살해하고 시신을 경주시 소재 저수지에 유기했던 조명훈(2013), 동거녀를 살해해 시신을 토막 낸 뒤 수원 팔달산에 유기한 박춘풍(2014)과 아내의 전 남편과 자식들을 살해 및 납치해 인질극을 벌였던 김상훈(2015) 등의 신상이 공개됐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