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게 아니겠나.” 최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한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최 변호사를 두고 ‘사람이 달라졌다’고 표현했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불과 2년여 만이었다. 변호사 생활이 어렵다고 말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수임료의 여왕’이 됐다.
동료들이 기억하는 2년 전까지의 최 변호사는 인정 많은 판사였다. 재판장에 나온 피해자들은 물론, 피의자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일처럼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엄격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밤새 고민하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했다. 다른 판사들도 다르지 않겠지만, 최 변호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고 입을 모았다.
법원을 이끌어 갈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최 변호사는 재직 당시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을 지내기도 했는데, 이 보직은 법원 내부에서도 중요 보직으로 통한다. 또 다른 사법연수원 동기 변호사는 “최 변호사는 판사 생활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시작했다. 초임이 서울지법에서 근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연수원 동기가 300여 명 되는데, 늘 성적이 좋아 상위 10%에 속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 변호사는 지난 2014년 2월,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돌연 판사 생활을 그만뒀다. 주변 동료에게 사유를 알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용히 미국으로 날아가 남편을 만나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앞서의 한 연수원 동기 변호사는 “혼자 남아 계시던 어머니 건강도 신경 써야 했고, 가정불화와 경제적인 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라 가까운 동기에게도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이후 한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8개월 만에 해당 로펌과 결별했다. 역시 이번에도 그만둔 이유는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동료들은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개업 이후에도 최 변호사의 변호사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건 수임이 거의 없어 동료들이 의뢰인을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다른 연수원 동기 변호사는 “최 변호사가 사건도 없고 수임료를 받아도 많아야 500만~700만 원, 적으면 200만~300만 원가량 받는다는 말을 했다. 생활이 어려워 보였다”면서도 “우스갯소리로 ‘따끈따끈한 전관변호사니까 조금 더 올려 받으라’고 말하면 최 변호사는 ‘그럴 수 없다’ ‘돈 더 달라는 말을 못하겠다’ 등의 대답을 했다. 판사 시절 인정 많은 모습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 관계자는 “한번은 법원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차가 없어 의뢰인 차를 얻어 타고 왔다며 멋쩍게 웃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2월께부터 최 변호사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고 한다. 최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의뢰인의 발걸음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고, 그만큼 밖에서 최 변호사의 이름을 듣는 날이 늘어났다. 지난 4월 마지막으로 최 변호사를 만났던 한 법조 관계자는 “옷차림이 화려해지고,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불과 1년여 만에 놀라운 변화였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5년 2월께는 최 변호사와 전 이숨투자자문 이사 이 아무개 씨(44)가 만난 것으로 알려진 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기 이후로 최 변호사가 수임한 항소심 재판에서 형량을 깎은 사례가 많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최 변호사가 개인 사무실을 내고 수임한 형사사건은 30여 건이다. 이 가운데 항소심은 17건인데, 12건에서 형량을 깎았다. 징역을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바꿨다. 또한 피고인 대부분은 기업인이나 재력가였다. 로펌에 근무하거나 개업 직후 수임한 사건은 대부분 이혼 등으로 기업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법조 관계자는 “항소심서 합의나 자백 등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전관이 작용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감형 성공률이 굉장히 높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이후 앞서의 브로커 이 씨가 이사로 있던 이숨투자자문을 대리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 변호사는 금감원의 불법적인 현장 조사를 이유로 금감원 직원들에 대한 1억여 원의 급여 채권 가압류를 이끌어냈다. 기업이 금감원을 상대로 법정 다툼에서 이긴 첫 사례다.
여기에 앞서의 법조 관계자는 브로커 집단이 의도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는 최 변호사가 법원에서 나온 지 1년 정도 지난 때였다. 친분 있는 판사들이 지방법원 항소부 등에 있었다”면서 “사무장이나 브로커들이 재판부와 친분을 내세워 사건을 가지고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실제로 이숨 대표인 송창수 씨(40)의 또 다른 사건인 인베스트 투자사기 사건을 최 변호사가 맡으며 1심 실형이 2심 집행유예로 줄었는데, 이때 부장판사는 최 변호사와 같은 전주 출신이다. 징역 13년이 선고된 이숨투자자문 사건의 부장판사는 최 변호사가 판사 재직 당시 함께 ‘우리법 연구소’에 소속돼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가 ‘무리한’ 로비 시도를 한 정황도 논란의 대상이다. 최 변호사는 앞서의 이숨투자자문 사건에서 선임계도 내지 않고 고액의 수임료를 받은 뒤 부장판사에게 ‘전화 변론’을 했다. 앞서의 사법연수원 동기 변호사는 이런 최 변호사의 행적에 의아해했다. 그는 “과감해도 너무 과감했다. 전관 변호사들이 보통 친분 등을 내세우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는 방법은 쓰지 않는다. 판사 출신인 최 변호사가 이걸 몰랐을 리 없다. 자의적 판단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현재 구속된 최 변호사가 정 대표에게 받은 50억 원은 인정하지만, 이숨투자자문 사건에서는 유독 ‘배달사고’를 언급하며 ‘50억 수임료’를 부인하고 있는 점도 이러한 정황에 힘을 싣는다.
실제로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지난 5월 9일 체포된 이후 검찰 조사에서 “이숨투자자문 사건은 착수금 1000만 원에 성공보수 5000만 원으로 계약했다”며 일관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이 최근 검찰이 이 씨의 지인으로부터 입수한 녹취 파일에서 “최 변호사에게 일부러 접근했다” “이숨투자자문을 망가뜨려서 돈을 빼내자”고 말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앞서의 사법연수원 동기 변호사는 “최 변호사를 상대로한 수사만으로는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가 다음 단계로 가려면 잠적 중인 이 씨 조사가 함께 시작돼야 ‘정운호 게이트’의 실체를 벗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