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수금 5000만 원에 상한은 끝이 없어요.”
요즈음 언론에 보도되는 부장판사 출신 여성 변호사의 거액의 수임료가 현실이구나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돈에는 낚싯바늘이 숨어있다. 물 건너편에서 죄인이 낚싯대로 변호사의 아가미를 꿰기도 한다. 그 순간 변호사는 고용된 양심이자 영혼이 없는 좀비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대형로펌의 중견변호사가 이렇게 자조적으로 로펌의 일면을 털어놓았다.
“대형 로펌이라는 게 인테리어를 번쩍번쩍하게 해놓고 스펙 좋은 전관변호사들을 견본 상품으로 선보여 큰 돈 빼먹는 거예요. 거품이 많지 뭐.”
돈 없는 친구의 수사과정에 입회해 보았다. 담당검사의 매끄러운 입술에서 나오는 현란한 말과 은근한 협박에 친구는 거미줄에 매달린 벌레 신세였다. 수사 대상이 되면 바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대접받는 고위직들의 경우는 한번 멘탈(?)이 붕괴되면 하지 않은 일들도 다 자백해 버리곤 했다. 나는 진실만 조서에 기록될 걸 요구했다. 담당 수사검사가 정색을 하면서 내뱉었다.
“저하고 한번 전면전을 해 보자는 거죠? 나가세요.”
수사방해로 나는 쫓겨났다. 변호사는 세 종류다. 권력과 대치하는 변호사가 있다. 전관이나 인연을 팔아 권력에 빌붙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은 궁박한 처지에 있는 의뢰인에게 사기를 치는 경우다. 다음날 수사검사실에서였다. 담당검사가 냉랭한 표정으로 이렇게 선언했다.
“변호사로서 해임되셨습니다. 지금 다른 변호사가 검사실에 와서 접견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변호사가 와서 검사실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며칠 후 구속된 친구의 아내가 사무실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검사실에서 남편을 면회시켜 준다고 해서 갔더니 다른 변호사가 와 있었어요. 그 변호사는 검사와 절친한 사이기 때문에 공소장변경을 해 줄 수 있다고 하면서 거액을 요구하더라구요.”
학력이나 경력이 그들의 선배고 경험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튕겨져 나오는 것일까. 세월 탓 만은 아니었다. 담당검사와의 인연을 상품으로 팔아먹는 사기행위 때문이었다.
전관이나 인연이 그렇게 고액의 프리미엄이 붙을 만한 가치는 없다. 이기적인 검사나 판사들이 추구하는 것은 성공이다. 무한경쟁의 승리자인 그들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오점이 남는 걸 꺼린다. 부모가 법에 걸려도 외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친하다고 기준을 깨뜨리고 봐 줄 판검사는 없다. 될 게 되고 안 될 게 안 된다. 기껏해야 절차진행에서 좀 친절한 정도일 거다.
변호사는 힘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위해 권력과 맞서야 한다. 범인을 체포할 때 경찰이 처음 말하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게 바로 그런 소명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변호사의 사기가 팽배할 때 사회정의는 발붙일 곳이 없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