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로는 4년 만에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아가씨’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아가씨>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귀족 아가씨(김민희 분)와 그가 맞이한 하녀(김태리 분)를 둘러싼 이야기다. 아가씨와의 결혼을 꿈꾸는 백작(하정우 분), 아가씨의 후견인이자 이모부(조진웅 분)가 한데 얽힌 사랑과 뒤틀린 욕망을 그린다.
김민희와 김태리는 영화를 통해 파격을 넘어 금기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물론 이제 동성의 사랑은 터부의 대상이 아니지만 영화에서 이들이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1930년대다. 당시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던 두 여성의 사랑은 억압되고 뒤틀린 성적 욕망에 휩싸인 또 다른 남자들에 의해 촉발된다. 김민희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타이틀롤이기도 한 일본인 아가씨 역을, 신예 김태리는 그 곁을 지키는 하녀 역을 맡았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베일을 벗은 <아가씨>는 한국 영화가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다. 운명, 사랑, 욕망, 복수 등 다양한 감정이 각각의 등장인물에 뒤섞여 있지만 이를 관통하는 단 하나는 두 여자의 사랑이다.
사실 김민희가 없었다면 <아가씨>는 지금과 같은 규모와 분위기로 탄생하기 어려웠을 영화다. 동성의 사랑을 다룬, 제작비 150억 원의 대작을 책임질 만한 여배우는 많지 않다. 게다가 그가 맡은 극중 아가씨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이를 통해 김민희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배우로서 범접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린다. 압도적인 활약이다.
칸에서 만난 김민희는 <아가씨>의 출연을 제안받던 순간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와 인연을 맺으려면 제안받는 그 순간 내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아가씨>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아주 용감했다. 욕심나는 캐릭터였고 배우 인생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걱정하기보다 용기로 영화를 택했다.”
이 영화를 통해 김민희는 데뷔 후 가장 파격적이면서도 수위가 높은 노출 연기를 펼쳤다. 2012년 영화 <화차>로 시작해 <연애의 온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로 이어진 연기 실험을 이번 <아가씨> 한 편에 전부 쏟아 부었다.
김민희가 연기한 아가씨는 일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이모의 손에 이끌려 식민지 조선에서 자란다. 이모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자 후견인을 자처하는 이모부의 손에서 자라고, 이모부의 취미에 맞춰 서책 낭독에 동원된다.
사실 영화에서 김민희가 그린 아가씨는 종잡을 수 없고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인물에 김민희는 왜 끌렸을까. “한 편의 영화에서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캐릭터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그는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억압받아 변형된 인간성을 가졌다. 어리석게도 계략을 만들고 또 순수한 사랑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그런 김민희가 바라보는 아가씨는 ‘불쌍한 여자’다. “아가씨의 순수성은 외부의 억압으로 변형된다. 연기하면서 아가씨의 순수성을 살리고 싶었고 억압이 불러온 이중성도 생각했다. 아가씨의 시점에서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아가씨’ 주연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하정우, 김민희, 박찬욱 감독, 김태리, 조진웅.
# 신예 김태리, 쟁쟁한 배우들 틈에서도 “자유로웠다”
김민희에 맞서는 하녀 역의 김태리의 태도 역시 당돌하다. 박찬욱 감독이 하녀 역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기성 연기자가 아니라 신인을 고집한 이유를 그는 연기로 답한다.
데뷔작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김태리는 국내외 취재진 사이에서 ‘행운을 누려야 마땅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는 물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그는 신인 특유의 당돌한 면모로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냈다. 김민희는 물론 <아가씨>에 함께 출연한 하정우 등 쟁쟁한 배우들 틈에서 적지 않은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칸에서 만난 김태리는 연기를 시작하는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고 말한다. “감독님이 원하는 내용과 장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으로 자유롭게 연기를 했다.”
영화에서 두 여배우는 아가씨와 그 하녀가 서로에게 품은 감정을 확인하려다 이내 깊은 사랑을 느끼는 장면을 서로 다른 시점으로 연기한다.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없었던, 두 여성이 사랑을 나누는 파격적인 베드신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돌아온다.
김민희는 여배우와의 베드신을 두고 고민은 컸지만 거부감은 없었다고 한다. “베드신을 여배우와 한다는 게 오히려 편안할 수 있다는 위안을 가졌다. <아가씨>는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을 겪으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비로소 행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흥미로웠다.”
칸(프랑스)=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