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A 양에게 ‘자발적 성매매 아동’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재판부는 A 양을 성매매 행위의 피해 아동·청소년이 아니라 행위 당사자인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해 성매수자에 대한 A 양 측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성폭행에 대한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은 것이 A 양을 ‘피해 아동’이 아닌 성매매 ‘대상 아동’으로 판단하게 된 계기다. 그러나 또 다른 재판부는 A 양의 지적장애 상태를 인정해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같은 사건을 상반된 시각으로 바라본 두 건의 재판 기록을 <일요신문>이 따라가 봤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기 좋아했던 A 양은 2014년 6월 그날도 엄마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려 액정에 금이 가게 했다. 엄마에게 혼이 날까 덜컥 겁이 난 A 양은 무작정 집을 나와 길거리를 헤맸다. 손에는 ‘채팅 어플리케이션(앱)’이 깔린 자신의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낮아 말이 어눌한 딸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것을 걱정한 엄마가 채팅을 통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라고 깔아준 것이었다. 갈 곳이 없던 A 양은 채팅 앱에 ‘재워줄 사람 구함’이라는 대화방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10여 명의 남성들이 A 양에게 접근했다.
채팅을 통해 만난 남자들은 A 양의 처지를 눈치 채고 달콤한 말로 유혹하기 시작했다. “잘 곳을 마련해주겠다” “밥도 사줄 수 있다” 등등. 이 가운데 처음으로 A 양에게 접근한 양 아무개 씨(25)는 성경험이 전무했던 A 양을 서울 소재의 한 모텔로 데려가 변태적인 유사성행위를 한 뒤 달아났다. 극심한 혼란에 빠진 A 양은 차마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채팅 앱을 통해 잘 곳을 찾았다. A 양의 채팅 방을 보고 접근한 또 다른 2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는 A 양을 보호해주겠다고 속이고 자신의 차에 태워 전주로 이동한 뒤, 모텔비를 내줬다는 명목으로 A 양을 성폭행했다. 엄마의 가출 신고를 통해 일주일 만에 인천의 한 공원에서 발견된 A 양은 이미 엄마가 알고 있던 딸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고 환청이 들린다며 자해까지 하고 있었다. 힘겹게 딸을 설득해 간신히 들을 수 있었던 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이었다. A 양을 잔혹하게 유린한 남성들은 특정된 이들만 6명이었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어 사리분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A 양의 사건은 A 양이 채팅방을 직접 개설하고 ‘화대’를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아동 성폭력이 아닌 ‘성매매’ 사건으로 분류됐다. 그때부터 상황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성 매수자로 분류된 남성이 지불한 하룻밤 모텔비 3만 5000원, 또 다른 성매수자가 사준 떡볶이 등이 A 양이 성을 제공하고 받은 화대로 취급됐다. 단지 엄마의 화를 피해 잘 곳만을 원했던 어린 소녀는 순식간에 숙식을 제공받고 성을 매매한 당사자가 된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찍은 ‘성매매 사건’이라는 낙인은 결국 민사 소송에서도 A 양의 발목을 잡았다.
이 사건과 관련한 성매수자들 중 소재불명으로 기소 중지된 1명을 제외하고는 형사소송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아동 성폭력이 아닌 불법 성매매를 한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었다. 이후 A 양과 A 양의 어머니는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별도로 제기했는데 이 가운데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한 최 아무개 씨와 앞선 김 씨에 대해서는 1심에서 모두 A 양 측이 승소하거나 일부 승소했다. 그러나 단 한 건, 양 씨에 대해선 원고의 ‘완전 패소’로 1심이 종결됐다.
김 씨의 재판을 맡아 원고(A 양)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서울서부지법 민사7단독 하상제 판사는 이 사건 김 씨의 행위가 ‘A 양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A 양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성매매한 것이므로 A 양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거나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하 판사는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 청소년의 특수한 지위를 고려해 ‘선량한 성풍속’과 함께 ‘아동 청소년의 보호’도 보호법역의 하나로 삼고 있다”고 판결했다. 또 A 양의 상태에 대해서도 “이 사건 범죄행위 당시 만 13세의 아동 청소년이었으며 그 지능지수 등에 비춰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 양의 지적장애를 인정하고, 김 씨가 이런 점과 A 양이 가출해 곤란한 상태였다는 점을 악용해 성적 만족을 얻은 것으로 본 것이다. 하 판사는 이런 점을 종합해 김 씨의 불법행위로 A 양이 정신적인 고통과 충격을 받았음을 인정, 이에 대한 정신적 피해를 배상할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첫 번째 성매수자였던 양 씨의 재판을 진행한 서울서부지법 민사21단독 신헌석 판사는 A 양을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아동‧청소년’을 뜻하는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규정했다. A 양이 지적장애아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런 사유만으로는 사건 당시 A 양이 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장애인인 아동‧청소년에 대한 간음 혐의가 적용되지 않고 단지 모텔 숙박비를 대가로 받아 양 씨와 ‘유사성교’를 했다는 성매매 사실만 인정됐다. 신 판사는 “성범죄의 피해자인 ‘피해 아동 청소년’이 아니라 자발적 성매매의 상대방이 된 ‘대상 아동 청소년’인 A 양이 성매수자를 상대로 성매수의 위법성만을 내세워 민사상 손해배상을 구하더라도 이는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이 곧바로 피해자로 평가된다거나 성매수자에 대해 어떠한 권리를 갖게 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A 양 사건 관련 CBS 노컷뉴스 방송 화면 캡처.
하나의 사건에 대한 상반된 판결로 인해 A 양은 자발적 매춘녀가 되기도 하고 성폭력의 피해아동이 되기도 했다. A 양 사건을 지속 지원해왔던 십대여성인권센터 권주리 사무국장은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이후 먹을 것을 사줬다거나, 쓰러진 피해자 옆에 돈을 놓고 갔다는 이유만으로 성폭행이 성매매로 둔갑하고 피해자는 매춘녀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지적하며 “이번 판결은 가뜩이나 성매수자들에 대해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고 있는데 지적 장애가 있는 피해 아동·청소년을 적극적인 범죄 행위자로 둔갑시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조차 앗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지난 16일 이 사건 재판과 관련해 재판부 판결의 부당함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