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금호터미널 매각을 놓고 동생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이 반기를 드는 등 금호가 형제 갈등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사진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금호터미널을 손에 쥔 금호기업은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박찬구 회장의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그 아들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전략기획실 사장 등 오너 일가가 지분 67.7%를 소유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기업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기업은 금호산업 지분 46.51%를 소유한 최대주주이며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지분율 30.08%)다. 다시 말해 박삼구 회장 부자→금호기업→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금호터미널은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기업에 인수됐다. 또 금호터미널은 피인수 닷새 만인 지난 5월 4일 지배회사(금호기업)를 흡수·합병하겠다고 공시했다. 금호아시아나가 밝힌 금호기업의 자산 규모는 6737억여 원, 이 중 부채는 3488억여 원으로 자본 총액(3249억여 원)보다 많았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합병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흡수합병의 이유로 꼽았다.
금호석화는 이에 대해 즉시 반기를 들었다. 금호석화는 “박삼구 회장 개인회사나 다름없는 금호기업과 합병을 중단하라”며 민·형사상 소송을 예고한 것이다. 금호석화는 이번 금호터미널 매각 및 인수합병이 금호타이어 인수전에 들어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매년 수백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유동자산이 3400억 원에 이르며, 터미널 부지 등 다수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알짜 회사’를 금호기업과 같은 수익성이 전무한 회사와 합병하는 것은 배임죄가 성립될 여지가 크다”며 “합병을 중단하지 않으면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터미널은 광주종합터미널 ‘U-square’와 전주, 목포 등 지방에 소재한 16개 버스터미널 임대 및 관리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터미널 사업은 정부가 면허를 준 사업자가 사실상 독점하는 구조라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금호터미널은 2865억 원의 매출과 362억여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 측은 금호기업의 금호터미널 흡수합병을 취소하지 않으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금호아시아나는 ‘헐값 매각’ 의혹을 일축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선제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복수의 회계법인에서 적법한 기업 가치 평가를 받고 매각을 진행했다”며 “이번 금호기업 합병 건에서도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 금호석화가 자꾸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11년부터 금호석화가 우리(금호아시아나)를 상대로 소송 및 이의제기를 한 게 모두 32건”이라며 “그동안 우리가 다 승소했고 (또는) 기각됐는데 이번에도 ‘딴지’를 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아시아나항공의 주주로서 금호석화는 금호터미널 매각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금호아시아나는 “2009년 (법원 판결에 따라) 계열 분리를 하면서 서로 독립된 경영체제를 갖췄는데 아직까지 금호석화가 아시아나항공 지분 매각을 안 한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앞서 지난 2014년 금호아시아나는 금호석화를 상대로 보유 중인 아시아나항공 주식을 넘기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두 회사는 현재 ‘금호그룹’ 상표권을 놓고도 수백억 원대 맞소송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금호석화가 이번 소송 의사를 철회하지 않는 한 두 형제는 추가 법적분쟁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금호터미널 매각 건으로 촉발된 논란이 형제 간 갈등 양상을 증폭시키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이 평소 동생에게 화해 제스처를 보냈지 않느냐”며 “이젠 소모전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호석화 관계자는 “언론 들으라고 말로만 그럴 뿐 동생에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찬구 회장도 ‘형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며 “다음 달 창업주(박인천) 제사도 따로 준비 중이다. 2014년 이후 한 번도 형에게 연락이 오거나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박삼구 회장은 이르면 다음 달 금호타이어 인수전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 지분(42.1%) 매각 계획을 밝혔으며,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다. 금호타이어 인수에 상당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삼구 회장은 인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미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인수 과정에서 5000억 원 상당의 부채를 떠안아 추가적인 외부 차입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이유로 박삼구 회장으로서는 금호터미널 매각·합병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수밖에 없다. 금호터미널 처분 외에는 ‘실탄’을 만들 만한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금호터미널 매각 대금이 금호타이어 인수에 쓰일 가능성을 99.9%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호아시아나 측은 금호터미널 매각대금과 관련해 “유동성 확보를 통한 재무건전성 강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