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환경성과지수(EPI)’에 따르면 한국은 공기 질 부문에서 173위, 20여개 평가지표 점수를 합산한 종합점수에서는 80위(사진)를 기록했다. 사진제공=예일대
지난 5월 16일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가 공동조사한 ‘2016 환경성과지수(EPI)’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공기 질’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45.51점을 받아 세계 180개국 가운데 173위를 기록했다. 특히 ‘초미세먼지 노출정도’ 부문은 33.46점으로 중국과 같은 순위인 174위를 기록했다. 반면 ‘이산화질소 노출 정도’ 부분에선 0점으로 가장 낮은 등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20여개 평가지표 부문 점수를 합산한 EPI 종합점수에서 우리나라는 70.61점을 받아 보츠와나(79위), 남아프리카공화국(81위)과 비슷한 수준인 80위를 차지했다. 이 조사는 2년에 한 번씩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43위를 기록했던 2년 전보다 순위가 대폭 하락해 환경성과가 후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EPI 조사가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EPI 조사는 대기오염을 직접 측정하지 않고 인공위성을 활용해 대기오염을 추정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실내의 공기 질은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EPI 조사 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장 교수는 SNS에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미세먼지 오염도는 6등급으로 나눴을 때 3등급에 속하는데 EPI를 인용해 우리나라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가 세계 최하위라고 보도해 혼란을 주고 있다”며 “대기오염의 중요성에 비춰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전 세계 도시의 미세먼지 오염도에 따르면 한국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중위권에 속했다.
국내 대기오염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 부터 서울의 대기오염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에 있었던 간담회에서 화력발전소를 미세먼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 데 이어 5월 국무회의에서 자동차 배기가스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역시 국내 경유차 판매량 증가를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미세먼지로 뿌옇게 변한 서울시내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당시 국내에서 109만 톤의 질소산화물이 배출됐다. 이 가운데 무려 26%가 경유차에서 배출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여 년 전인 2005년 당시 국내 경유차는 565만 대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4년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경유차량은 793만 8627대로 전체 등록차량(2011만 7955대)의 40%에 해당한다. 차량 가운데 경유차량의 전년대비 증가폭이 가장 컸다. 소비자들이 경유차를 구입하는 이유는 경유차의 연료비가 저렴하고 연비가 좋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은 “경유차 구매가 소비자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기보다는 정부가 경유차 구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휘발유에 비해 경유에 부과하는 세금이 저렴하다. 과거엔 생계형으로 경유차를 구매했다면 요즘은 레저 목적의 경유 SUV 차량 구매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에 포함된 저탄소차협력금제도 도입을 2015년에서 2020년으로 연기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이를 “중대형차에는 부담금을 부과하고 친환경차, 중소형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이었지만 산업계 반발을 핑계 삼아 한발 물러섰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유차 소유자는 휘발유나 LPG 차량보다 더 많은 오염물질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환경개선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경유차 소유자는 199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환경개선비용부담법에 따라 1년에 두 번씩 환경개선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환경개선비용부담금은 차종과 지역마다 다른데 구매한 지 5년 된 경유차의 경우 평균적으로 1년에 15만 원 상당의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2005년부터 신형 경유차를 구매하면 5년간 환경개선부담금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생겼다. 환경부에 따르면 예전보다 경유차의 오염물질 배출량이 개선됐기 때문에 부담금면제제도가 생겨났다.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인 유로5, 유로6 신차를 구입할 경우에는 부담금이 영구적으로 면제되기도 한다.
2014년부터는 유로5보다 배출가스를 30~50% 줄여야하는 유로6 규제가 시행되고 있고 이 기준을 초과하면 자동차 신규등록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가장 강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유로6 기준 경유차는 휘발유차의 4배 이상에 해당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하고 있다. 자동차 대리점에서는 여전히 환경개선부담금 면제를 말하며 경유차 소비를 권유하고 있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박근혜정부의 미세먼지 정책을 ‘F학점’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제공=서울환경운동연합
경유차 소비량과 대기 중 이산화질소 농도는 비례하고 있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2013 시민 대기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교통이 혼잡한 도로변에서 이산화질소 농도를 측정했을 때 69곳 중 39곳에서 이산화질소 농도가 환경기준치(40ppb)를 초과했다. 해당 지역은 강남대로(119.3ppb), 혜화동 로터리(113.5ppb), 서울역 인근 도로(113.8ppb) 등으로 평소 통행차량이 많은 곳이었다.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집 밖에서부터 도착지까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차량으로 오염된 대기에 노출된 채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며 “자동차에 크게 의존하는 교통량을 대중교통과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전환해야 한다. 운영되고 있는 대기오염측정소의 확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라 미세먼지를 측정하는 기기 관리가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권에서 운영되는 미세먼지 자동측정기 108대 가운데 16%인 17대가 허용 오차율인 10%를 초과하는 등 대기질 측정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미세먼지,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환경부 기준으로 초미세먼지는 50㎍/㎥가 넘어야 ‘나쁨’으로 예보된다. ‘좋음’, ‘보통’ 수준에도 발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시민들에게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의학학술지 란셋에 따르면 초미세먼지의 경우 농도 10~30㎍/㎥에서도 폐암 발병 가능성은 증가한다.
환경부는 지난 2006년 36ppb였던 이산화질소 농도를 2014년까지 22ppb로 줄일 계획으로 10년 동안 3조 원의 세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34ppb까지 이산화질소 농도를 낮추는 데 그쳤다.
화력발전소에서도 경유차 못지않게 대기오염물질이 발생하고 있다. 화력발전소의 배출가스가 공기와 반응하면서 초미세먼지가 발생하는 것.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발표한 보고서인 ‘침묵의 살인자, 초미세먼지’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초미세먼지는 2752t으로 전체 배출량의 3.4%를 차지한다.
해외에서는 화력발전소를 줄이고 있는 추세다. 미국 내 석탄화력발전소는 모두 1308기로 이 가운데 145기가 최근 폐쇄됐고 2020년까지 100여 기를 추가 폐쇄할 계획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지만 동시에 다른 화력발전소는 폐쇄할 계획을 갖고 있고 재생에너지원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중국 역시 2013년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력발전소의 추가 승인을 금지한 바 있다.
국내 화력발전소 현황. 사진제공=그린피스
그러나 한국은 2021년까지 화력발전소 24기를 증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국내에 53기의 화력발전소가 운영 중이지만 충청남도, 강원도, 경상남도 등에서 11기의 화력발전소의 건설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린피스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초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를 두 배 가까이 증설하려는 것은 모순적인 행보”라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또 이 같은 석탄화력발전소 확대 계획이 이뤄진다면 2021년 초미세먼지로 인한 조기사망자가 19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인천 영흥화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갑상선암, 폐암 등으로 사망했거나 투병 중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은 발전소 인근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감사원이 지난 10일 공개한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사업 추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환경부가 ‘제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충남 지역의 화력발전소 등에 대한 관리 대책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도 발견됐다.
환경부는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최근 정식 조사를 시작했다. 이달 초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국내 대기질 조사를 시작해 다음 달 말까지 한반도 상공에서 미세먼지 발생 원인과 경로를 추적할 예정이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
공기청정기·마스크 불티…미세먼지 나빠도 내수는 꿈틀 지난 3월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날이 16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렇게 최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세먼지를 차단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움직임으로 내수시장은 살아나고 있다. 가격비교 사이트 에누리닷컴이 지난 4월 중순부터 한 달간 미세먼지 농도와 공기청정기 판매량을 비교 분석한 결과, 미세먼지 수치에 따라 공기청정기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2016 환경성과지수’ 발표 결과에서 이산화질소와 초미세먼지 노출정도에서 위험한 평가를 받았지만 유일하게 실내 공기질 분야에서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마스크 판매량 역시 급증했다. 에누리닷컴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의 마스크 판매량과 통합대기지수를 비교 분석한 결과 통합대기지수가 급격하게 나빠진 날의 마스크 판매량이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5월 말까지 미세먼지가 잦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세먼지 관련 제품 판매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예측했다. 미세먼지 관련주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코웨이는 지난 17일 기준 연초보다 30.7% 상승한 10만 1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자동차 산업용 필터제조업체인 크린앤사이언스 역시 지난해보다 주가가 18.7% 상승했다. [최] |
차량홀짝제·NO디젤차…이웃나라들 공기질 개선 노력 대기 오염물질이 바람을 타고 중국과 일본, 한국을 이동하고 있어 대기질 개선을 위해 여러 국가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과 일본은 대기공해를 위한 대책 마련 및 시행을 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한국 돈으로 9500만 원에 불과했던 벌금을 대폭 올리는 등 보다 강력한 대기오염예방조치법을 시행하고 있다. 오염사고를 냈을 경우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는 정도의 강력한 조치다. 베이징에서는 이미 차량 홀짝제를 시행하고 있고, 신규 차량 등록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추첨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중국 환경당국은 이달 말부터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 4개 도시 등 6개 도시에 대해 통일된 적색경보 발령 기준을 적용키로 하는 등 제도 정비에도 나섰다. 일본의 경우 1968년부터 화력발전소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도쿄시는 화력발전소에 유황 함유량이 적은 중유 등의 연료를 사용하게 했고, 연소과정에서 공기 중의 질소가 고온에서 산화돼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을 규제하는 조치를 벌였다. 뿐만 아니라 2003년부터는 매연저감장치(DPF)를 부착하지 않은 경유차의 도심 운행을 제한하는 ‘노(NO) 디젤차’ 정책도 펼쳤다. 한국 정부에서도 국내 대기환경을 분석하고 미세먼지와 오존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연구에 나섰다. 국립환경과학원과 NASA는 지난 2일부터 오는 6월 12일까지 미세먼지와 오존이 생성되는 기전과 외부 유입 등의 영향을 분석한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