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우리은행의 기술 도용’ 주장을 제기한 표 아무개 중소기업 대표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표 대표는 검찰이 편파 수사를 했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우리은행 본점 건물. 일요신문DB
이에 표 씨는 억울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는 입장이다. 표 씨는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은행이 오히려 국민의 재산을 몰래 훔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우리은행의 갑질과 도둑질을 끝까지 고발하겠다”고 반박했다. 이어 “검찰이 전문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수준으로 양측의 자료를 비교해 마치 ‘대기업이 그러겠냐’식으로 약자인 중소기업을 몰아세운 점이 더 화가 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표 씨 회사가 개발한 ‘유니키’는 금융거래 당사자가 자신의 스마트 기기로 전자금융거래의 시작을 승인하는 솔루션이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스마트폰에 탑재된 유니키로 ‘ON’을 해야만 금융거래가 시작된다. 피싱(Phishing)·파밍(Pharming) 등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돼도 유니키만 있으면 금융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표 씨는 2014년 2월 6일 ‘유니키’ 특허출원 신청을 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은행이 지난해 4월 6일 금융권 최초로 론칭한 ‘원터치리모콘’ 서비스를 출시한 이후 표 씨 회사와 우리은행의 갈등이 시작됐다.
우리은행은 당시 언론 등을 통해 ‘원터치리모콘’에 대해 자사개발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당시 언론에 공개된 서비스 설명에는 “스마트폰을 리모콘처럼 이용해 거래 전에 별도로 허용(ON) 상태로 설정해야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서비스로 사기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표 씨에 따르면 ‘유니키’와 ‘원터치리모콘’의 기본시스템이 거의 동일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표 씨의 주장대로 우리은행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도용했느냐는 점이다. 표 씨는 당연하다고 잘라 말했다. 자사 부사장이 2014년 2월 특허출원 신청 후 2014년 3월 3일 우리은행 측과 선인증 보안제품 제안 미팅을 처음 가지고, 4월 11일 설치앱 위변조 방지 등을 협의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10월 10일까지 수차례 이메일로 당시 담당자인 우리은행 P 씨에게 각종 설명 자료와 제안 등을 건네줬다. 그러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 지난해 3월 27일 우리은행 P 씨가 다시 연락을 해 ‘유니키’ 관련 자료를 송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은행이 대대적으로 금융권 최초 ‘원터치리모콘’ 출시를 알린 4월 6일 당일에도 P 씨는 ‘유니키’ 선인증 관련 특허 청구항 및 자료 발송을 요청했다.
표 씨 측은 특허청구항은 문제소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개략적인 특허 관련 자료를 우리은행에 7~8일에 걸쳐 이메일로 보냈다. 이 후 돌연 P 씨는 표 씨 측과 연락을 끊어버렸다. 표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은행 측과 한동안 사업 얘기가 오가다 돌연 1년이 지나 연락이 다시 오자 우리와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 줄로 알고 있었을 뿐 다른 의심은 없었다. 대기업들과 계약 성사가 쉬운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뒤늦게 언론에서 우리은행이 자사솔루션과 거의 흡사한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해서 놀라게 됐다”고 전했다.
표 씨 측은 항의차 우리은행과 접촉하려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고, 금융감독원과 을지로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고서야 우리은행 측과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유니키’는 보편타당한 기술에 불과하며, 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표 씨의 주장과 판이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유니키’는 인증이 필요한 반면 ‘원터치리모콘’은 인증이 필요 없으며, 스마트폰 기기 역시 ‘유니키’는 모든 스마트폰에서 적용되는 반면 원터치는 지정된 스마트폰에서만 동작한다며 기술적인 측면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한다.
표 대표가 제공한 ‘선인증 보안솔루션’ 관련 우리은행 측이 발송한 이메일 일부. ‘고견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 역시 “‘원터치리모콘’과 ‘유니키’는 사용자 인증부터 사용가능 단말기 종류, 서비스 처리절차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표 씨가 당초 우리은행에 제공한 사업제안서에는 ‘원터치리모콘’ 세부 구성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볼 만한 내용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서비스에는 ‘온(ON)한 후 일정시간 동안에만 거래를 할 수 있는 기능’과 ‘부정접속 시도 시 알림 메시지를 전송하는 기능’이 공통으로 있었지만 해당 기술은 이미 업계에서 상용화된 것이라며 표 씨 독자 기술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표 씨는 “우리은행이 금융권 최초라고 홍보한 ‘원터치리모콘’의 특허출원 시기에 대해 공개해야 한다”며 “선인증과 인증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원터치도 인증이 필요하다. 금융거래시 본인인증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나. 검찰이 인증을 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는 것은 ‘비밀번호기능’과 ‘본인인증’을 혼동한 것으로 원터치는 비밀번호 입력기능이 없는 것일 뿐이다. ‘유니키’도 비밀번호기능이 선택옵션으로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표 씨는 “검찰이 우리은행의 주장만 인용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며 “본인이 제출한 복수 변리사들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백한 편파수사”라고 비난했다. 이어 “검찰의 조사과정에서도 내 주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국회의원과 언론, 공공기관, 시민단체 등을 속이고 돈으로 변리사를 조종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없는 죄까지 뒤집어씌워 범죄자를 만드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표 씨 측은 복수의 변리사에게 “우리은행의 ‘원터치리모콘’에 따른 금융거래 처리서비스는 ‘유니키’의 권리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법률 검토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표 씨는 결국 법정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표 씨 역시 법원 판결에 따라 소송을 준비할 예정이지만 이번 사건으로 계약 파기가 이어지는 등 회사 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는 대기업과 법정싸움을 벌이는 중소기업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점이다.
과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견되는 우리은행과 중소업체 간의 기술도용 논란에 대해 사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