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못한 황씨는 해당 예매사이트의 고객센터와 게시판을 통해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계속 시도해 보라는 것뿐이었다. 황 씨는 “화가 나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에 신고하니 해당 업체에서 바로 연락이 와 쉽게 예매할 수 있었다”며 “이후 개인 블로그를 통해 해당 업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해당 업체가 포털사이트 측에 게시 중지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황 씨가 피해를 본 곳은 영화예매대행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다. 영화예매대행업체는 주로 음식점이나 미용실 등 서비스업 자영업자들에게 영화예매권을 대량으로 판매한다.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업소를 찾는 고객들에게 판촉·경품 용도로 이 영화예매권을 사은품으로 지급한다. 사은품을 받은 고객들은 인터넷을 통해 영화관람권을 예매하면 된다.
영화예매대행업체는 영화예매권 대량 판매와 예매 대행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개인에게도 판매하기는 하지만 ‘VIP권’으로 불리는 1년 치 장기예매권만 판매한다. 현재 이 같은 영화예매대행업체가 국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만 수십여 개다.
영화예매대행업체를 키운 일등공신은 저렴한 가격이다. 이들이 판매하는 예매권의 가격은 보통 1인 기준 3000여 원으로 시중 영화관람권의 3분의 1 수준이다. 몇몇 업체는 대량 구매 시 추가감액도 해준다. 구조적으로 보면 고객은 싼값에 영화를 볼 수 있고 업체는 박리다매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윈-윈’이다.
문제는 앞서 황 씨의 경우와 같은 피해사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비슷한 일로 피해를 보거나 불편·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고객은 지난 3월 11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미용실 이벤트로 받은 영화예매권으로 예매하려는데 어떤 시간대든 사용자가 많아 불안하단다. 미용실이나 이런 업체 분들은 저기 표를 절대 대량 구매해서 이벤트로 쓰지 마세요”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또 박 아무개 씨(24)는 “며칠에 걸쳐 집과 회사 컴퓨터, 휴대폰으로 예매를 시도해봐도 도무지 되지 않아 고객센터에 문의했지만 소용이 없어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해 해결했다”고 말했다.
A 업체에 자초지종을 묻자 “꼭 답변해야 하는 것이냐”며 대답을 회피했다. “서면으로 질문지를 보내달라”는 B 업체의 경우 요구대로 질문지를 보냈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끝내 하지 않았다. 대부분 업체들이 문의 자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악용해 고객들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법률 ‘제44조2(정보의 삭제요청 등)’에 따라, 업체들은 포털사이트에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고객들의 불만 글에 대한 삭제를 요청할 수 있으며 삭제 요청을 받은 포털사이트는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을 할 수 있다.
영화예매대행업체들이 운영하는 예매사이트는 접속이 되지 않기로 유명하다.
설사 불만 글을 올린 고객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해도 이해당사자 간 다툼이 예상되는 사항이므로 ‘30일 이내의 임시조치’, 즉 30일 간 게시 글이 차단된다. 고객이 같은 글을 다시 올리기 위해서는 30일이 지나야 가능한 것이다. 앞서의 황 씨는 “글이 차단되는 30일 동안 추가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먹통 예매권’을 대량 구입한 업주들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한 미용실 대표는 “사은 이벤트용으로 두 번에 거쳐 2000여 장의 예매표를 구매했는데 접속이 안 된다는 고객들의 항의가 많아 더 이상 해당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는다”며 “접속이 이 정도로 안 되면 업체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예매 조건이 까다로워 예매를 아예 포기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대부분 영화예매대행업체들은 ▲당일 예매 불가 ▲주말·공휴일 관람 불가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만 예매 가능 ▲인증번호 등록 후 30일 내 사용 ▲동일한 영화는 다른 컴퓨터에서 2인까지 예매 가능 등의 조건을 내걸고 있었다. 심지어 굳이 상담원과 통화할 필요가 없는 업무임에도 정오~오후 1시 30분은 점심시간이라는 이유로 예매업무를 중단하는 업체도 있을 정도다.
B 영화예매대행업체에서 ‘1년 치 이용권’을 구매했다는 정 아무개 씨(23)는 “한 컴퓨터에서 2명이 같은 영화를 예매하는 것이 불가해 PC방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며 “예매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그나마도 잘 안 되니 사용 기간이 남았지만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체 측에서 예매를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고객과 업주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데도 업체들은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답변을 회피하거나 불만 게시글을 차단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문제가 있다 판단되면 1372소비자상담센터를 통해 일단 상담한 후 피해구제 신청서를 작성해 소비자보호원에 제출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확한 피해 구제 신청 방법은 소비자보호원 홈페이지(www.k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박혜리 인턴기자 ssssch33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