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의 ‘큰 일’을 겪은 후에 로브 로우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아내 셰릴 버코프의 내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건 1983년, 로우가 완전히 신인 때였다. 블라인드 데이트로 만난 두 사람은 짧은 만남으로 만족했다. 이후 로우는 스타덤에 올랐고 버코프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할리우드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우는 스캔들에 휘말렸고, 급격한 하강의 길로 접어들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1989년 <배드 인플루언스> 현장이었다. 버코프는 이 영화의 메이크업 담당자였고, 6년 만에 만난 그녀의 모습에 로우는 친근감을 느꼈다. 로우보다 3년 연상이었던 버코프는 힘든 상황을 겪고 있던 로우를 진심으로 위로했고, 연인이 된 두 사람은 1991년에 결혼했다. 버코프는 서른 살, 로우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유모들을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한 로브 로우 부부는 법정 싸움 1년여 만에 갑자기 고소를 취하했다.
1993년에 첫 아들 에드워드가 태어나면서 버코프는 메이크업 일을 접고 육아에 전념했다. 1995년에 둘째 아들 존이 태어나자 버코프는 이때부터 가끔씩 일이 있을 때마다 유모를 고용했다. 시간은 흘러 에드워드가 15세, 존이 13세가 된 2008년이 되었다. 로브 로우는 갑자기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허핑턴포스트>에 글을 올렸다. 과거 자신이 고용했던 유모 두 명과 셰프 한 명을 고소했다는 내용이었다. 먼저 피터 클레멘츠라는 전직 셰프에 대한 로우의 고소 내용은 이렇다. 로우 부부가 외출했을 때, 클레멘츠가 몰래 애인을 불러들여 주인집 부부의 침대에서 섹스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서랍을 뒤져 약을 훔쳤고, 이 일이 들킬까 두려워 보안 카메라를 파손했다. 식재료 구입비를 속여 횡령한 것도 고소 내용이었다.
핵심은 유모에 대한 내용이었다. 피고소인은 제시카 깁슨과 로라 보이스였고, 주 대상은 깁슨이었다. 로브 로우는 두 사람이 결탁해 자신과 아내를 협박한 후 15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로우가 그들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거짓 루머를 퍼트리겠다는 게 협박 내용이었다. 그리고 깁슨은 허락 없이 자신의 남자친구를 로우의 집으로 데려와 몇 시간씩 함께 있었고, 로우의 두 아이에게 불법적인 약물을 주었다는 것이 로우의 주장이었다.
일주일 뒤인 4월 14일, 제시카 깁슨은 맞고소를 했다. 로브 로우가 자신 앞에서 불필요한 노출을 했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포르노그래피를 보여주었으며, 강제로 스킨십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셰릴 버코프는 비열하고 뒤틀려 있으며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수시로 깁슨에게 성적 모욕을 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깁슨에 따르면 셰릴은 로브 로우와의 성생활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으며, 완전히 벌거벗은 채 깁슨 앞에서 걸어 다니곤 했다. 엇갈린 진술을 놓고, ‘로우 부부 vs 제시카 깁슨’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당시 24세였던 제시카 깁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7세 때부터 7년 동안 로우의 집에서 유모로 일했다. 상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로우 부부가 필요로 할 때마다 두 아이를 돌보았다. 그녀는 “로우 부부는 내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며 진실을 주장했다.
하지만 로브 로우의 변호사 래리 스타인은, 로우의 전현직 고용인들의 수많은 증언을 들었지만 그 어디에도 깁슨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이야기는 없었다고 못 박았다. 깁슨의 변호사는 글로리아 앨프레드였다. 논쟁적인 사건을 맡으며 유명해진 앨프레드는 정치적 페미니스트로 유명하며 미디어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유명인이었다. 성폭행 사건 전문으로, 매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녀는 “깁슨에겐 감출 것이 없다”며 법정 싸움을 앞두고 전의를 가다듬었다.
로브 로우를 성추행 등으로 맞고소했던 유모 제시카 깁슨.
깁슨의 부모도 가세했다. 어머니인 에일린은 “내 아이가 협박을 하고 돈을 갈취하려 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두둔했다. 아버지인 짐은 딸이 유모일에 너무 지쳐 있어서 자신이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의하면 깁슨은 로우 부부의 집에서 터무니없이 긴 시간을 일했고, 일을 마치면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다른 고용인들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깁슨이 로우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당했다는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 했다는 것이다. 이때 로우의 아내 셰릴은 이메일 하나를 공개했다. 깁슨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며 보낸 이메일로, 사과의 말과 함께 “당신은 제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에요”라는 호의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 앨프레드는 깁슨이 뭔가 겁에 질려 이런 메일을 보냈을 거라고 주장했다.
깁슨뿐만 아니라 로라 보이스의 변호도 글로리아 앨프레드가 맡았고 그들은 총 12개의 항목에 걸쳐 로브 로우를 고소했다. 2008년 6월 19일,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 법원에서 재판이 열렸고 법정 싸움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2009년 5월, 로우는 세 사람에게 걸었던 고소를 취하했고, 두 유모 깁슨과 보이스도 취하했다.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고소를 취하했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과연 어떤 거래가 있었으며 진실은 무엇일까? 미스터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