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을 콘셉트로 한 그룹 ‘AKB48’이 큰 성공을 거둔 후, 거리감을 잃은 팬들의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본다.
아이돌 출신 여가수 도미타 마유를 흉기로 공격해 중태에 빠뜨린 용의자 이와자키 도모히로. 180cm의 건장한 체격으로 중학교 시절 유도선수로 활약해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도 있다. NNN뉴스 캡처.
사건은 5월 21일 오후 5시 무렵, 도쿄 고가네이시 상가 앞에서 일어났다. 이날은 건물 내 라이브하우스에서 아이돌 등이 출연하는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었다. 출연자 중 한 명이었던 도미타 마유는 행사장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습격당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도미타는 나가노현 출신으로 과거 기간한정 아이돌 유닛으로 활동했다. 유명한 스타는 아니지만, 특수촬영 TV드라마 <가면라이더 포제>를 비롯해 CF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 이후 라이브 콘서트, 뮤지컬 공연 등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려는 꿈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 이와자키 도모히로(27)는 살인미수와 무기단속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용의자는 경찰조사에서 “도미타에게 선물을 보냈지만 되돌아왔다. 이유를 물었더니 애매한 답변만 해서 격분해 몇 번이고 찔렀다”며 “죽일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를 계획적인 범행으로 보고 구체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용의자는 그간 집요하게 SNS 등을 통해 도미타를 괴롭혀온 것”으로 드러났다. <산케이신문>은 “용의자가 올해 1월경부터 무려 400건 이상이나 되는 메시지를 도미타에게 보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순수한 팬으로서의 글이었으나, 점점 그는 급격하게 증오감을 표출했다.
목과 가슴 등 20곳 이상 찔린 도미타 마유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어 4월에는 “우체국에서 택배가 왔다. 시계와 책 3권이 돌아왔다. 정말 싫은 여자”라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그 여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어”와 같은 섬뜩한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더욱이 사건 당일 아침에는 “사람을 어떤 행동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욕이 아닌 수치”라는 제목의 글을 갱신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하는 짧은 문장을 덧붙여 범행을 시사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도미타가 사건 직전 경찰에 스토킹 피해를 여러 차례 호소했다는 점이다. “블로그나 트위터로 집요하게 메시지를 남기는 남자가 있으니 이를 막아 달라”고 상담했으나 당시 경찰은 “직접 위해를 가할 정도로 위급한 사안이 아니다”고 판단해 끔찍한 사건을 키우고 말았다. 이에 일본 경시청은 “이 같은 대응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스토커 피해사건에 정통한 모로사와 히데미치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통한 스토킹’도 처벌받는 것이 당연한 추세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일면식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입은 피해와 대책에 관해 거의 상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경찰의 대응과 법해석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적했다.
한편, 이번 사건의 여파로 일본 아이돌의 팬미팅과 악수회가 연달아 취소되고 있다. 또 연예기획사에서는 모방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경비체제를 구축중이라고 한다. 익히 잘 알려진 대로 일본 연예인이 ‘광팬’에게 습격당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4년 이와테현에서 열린 아이돌그룹 ‘AKB48’ 악수회 때는 한 남성이 톱을 휘둘러 멤버 2명과 스태프 1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해 12월 그라비아 아이돌 야나기 유리나의 악수회에서는 20대 남성이 유리나에게 몰래 다가가 팔을 잡아당긴 사건도 있었다. 특히 이 남성은 사건 전 트위터에 “유리나를 납치하고 성폭행하겠다”는 글을 여러 차례 올린 사실이 밝혀져 모두를 경악케 만들었다.
과거의 아이돌들은 TV나 잡지, CD를 통해서만 ‘캐릭터’를 팔았다. 이에 반해, 현재 아이돌들은 악수회나 하이터치회 등의 이벤트에서 팬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는 걸 포함해서 상품을 판다. 동시에 SNS로 소통하며 팬들과의 거리감도 점점 좁히고 있다. 일본에서 이러한 현상은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이돌’을 지향하는 그룹 ‘AKB48’이 성공을 거둔 뒤 더욱 심화됐다. 너도나도 팬 확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영업수단으로 활용하다보니, 결국 거리감을 잃고 폭주하는 팬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2년 전 AKB48 악수회 사건 이후 경비가 한층 강화되긴 했지만, 문제는 대형사무소에 소속되지 않거나 혹은 소속사 없이 홀로 활동하는 무명 아이돌의 경우다. 이와 관련해, 한 연예관계자는 “이들은 경비도 허술할 뿐 아니라 일반 아이돌보다 팬들과의 거리도 가깝다.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아이돌계 잡지 편집자는 다음과 같은 위험성도 지적한다. “톱 아이돌은 대형기획사가 영업을 하지만, 소규모 사무소의 아이돌은 모두 스스로 하고 있다. 블로그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티켓이나 굿즈를 파는 아이돌도 적지 않다. 대부분은 팬들과 쪽지를 통해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수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라이브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오프라인 모임 등을 갖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런 비밀스러운 옵션을 경험한 팬들은 아이돌에 대한 친밀감이 커지고, 최종적으로는 스토커로 발전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로 “무명 아이돌의 성희롱과 스토커 피해 사례가 증가 중”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사건처럼 극단적으로 ‘팬심’이 변질되는 건 드물 테지만, 앞으로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