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을 배회하던 ‘두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관예우와 법조 브로커다. 그동안 검찰과 법원은 전관예우는 없다고 말해왔다. 브로커도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확인은 쉽지 않았다. 두 유령과 수사, 재판 결과의 관계는 입증하기가 어려웠다.
최근 검찰이 ‘정운호 게이트’ 관련 수사에 강도를 높이면서, 두 유령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법조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업계의 일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이들은 법조 브로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10년간 법원에 근무했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조 브로커는 모두가 다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그동안 모른 체하거나 관행처럼 여기던 ‘업계의 불편한 단면’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법조 브로커’란 형사나 민사 사건 등에서 의뢰인과 변호사와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이들을 말한다. 법원과 변호사 업계 등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 서초동에만 법조 브로커 1000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변호사(5000여 명)의 1/5이다.
브로커 유형은 크게 나눠 세 가지다. 최근 논란 중인 수임료가 거액인 전관 브로커, 파산‧회생사건만을 전문으로 하는 브로커, 취업 또는 사무실 운영이 어려운 변호사들을 직접 고용하는 브로커 등이다.
실제 수사나 재판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브로커의 수는 많지 않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최유정 변호사, 법원 등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두 명의 브로커 이 씨들처럼 거액을 챙기는 브로커는 더 적다. 이들은 보통 경‧검찰, 법원 등 기관 출신이거나 변호사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현장 출신이다.
기관 출신 브로커는 주로 자신이 몸담았던 수사기관의 사건을 담당한다. 이들은 보통 ‘외근 사무장’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는데, 과거 동료들에게 사건에 대한 연락을 받거나 또는 관계자를 찾아내 전관 변호사를 연결해준다. 명함에는 자신의 기수나 임관년도 등을 넣는다. 현직 동료들에게 ‘한 울티리 안에 있던 가족’임을 부각시켜 사건 유치에 활용한다. 현장 출신들은 업계 활동 과정에서 쌓은 인맥으로 접근한다. 전관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주고 명의를 빌려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브로커들은 현직 검사나 판사와 변호사, 의뢰인들과 직접 연결하는 ‘거물 브로커’로 성장한다. 앞서의 정 대표 항소심 재판을 담당한 판사와 식사 약속을 잡은 것과 같이, 언제든 사적인 자리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법조계 인맥이 탄탄하다. 한 대형 로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과거 동료나 지인들을 활용해 회식 스폰 등을 하면서 친분을 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적인 모임인 줄 알고 나간 현직 판‧검사들이 여기서 브로커들과 처음 엮이게 된다. 이후 따로 만남을 요청하는데, 연락 받는 사람 입장에선 로비 목적인지 개인적인 만남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에 스카우트되는 브로커도 있다. 한 법무법인의 사무장은 “일부 기업들이 사건마다 변호사를 찾아다니기 어려워 브로커를 부장급으로 채용해 사안에 맞는 변호사 연결을 전담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사건 중개에 성공하면 약 30%가량의 수수료를 챙긴다. 손해배상 사건처럼 소송 결과에 따라 의뢰인이 받는 돈의 액수가 달라지면 수수료는 더 올라간다. 사건 중개와 함께 앞서의 브로커처럼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로비를 시도하는 ‘거물’들은 스스로 수임료 전체를 책정하기도 한다.
변호사와 ‘동업’을 하는 브로커도 있다. 이들은 서민들을 대상으로 높은 법률지식이 필요없고 변호사가 직접 법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파산‧회생이나 등기 사건을 전문으로 수임한다. 블로그나 보도자료, 길거리 현수막 등을 통한 ‘개인파산’ 광고의 상당수가 전문 브로커들이 낸 것들이다. 앞서의 사무장은 “변호사들은 규정상 현수막 광고가 금지돼 있다. 현수막 광고를 통해 변호사에게 연결됐다면 모두 브로커를 거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개인회생이나 파산 사건의 경우 자금 여유가 없는 의뢰인들이 대부분이라 변호사들이 수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때 브로커들이 변호사의 명의를 빌려 매월 일정 수준 수수료를 주는 대신 건당 수임료의 30~40%를 챙긴다. 이 과정에서 낮은 수임료로 사건을 직접 대리하기도 한다. 실제로 인천지검은 지난해 앞서의 수법을 쓴 77명의 개인회생브로커를 적발했고, 이들에게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와 법무사 69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 사이에 오간 돈은 480억 원대였다.
브로커가 변호사를 직접 ‘고용’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이러한 유형의 브로커가 급증하는 추세다. 변호사 시장 포화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건 수임이 힘들어진 변호사들이 브로커들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다. 갓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부터 7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브로커들은 변호사 사무장으로 위장 등록을 한 뒤, 실제로는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변호사 명의(자격증)를 빌려 ‘사무장 펌(firm)’을 열고 영업한다.
실제로 최근 서초동에 개인 사무실을 개업한 한 변호사는 “사무실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브로커가 제안을 해왔다. 자신을 사무장 등록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며 “사건도 없고 직원들 인건비 지급하기도 빠듯해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통장에 돈만 입금될 뿐 의뢰인은 물론 돈 관리도 모두 브로커가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브로커가 개입된 앞서의 모든 과정이 불법인 데다, 변호사 탈세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한 소형 로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중개 수수료는 불법이라 변호사는 먼저 수임료에서 40% 가까이 되는 부가세와 소득세를 내고, 인건비 등 각종 운영 경비를 뺀다. 이후 수임료 30%를 현금으로 브로커에게 떼어준다. 결국 남는 돈은 수임료의 10~20%다. 이 때문에 브로커와 연결된 변호사가 수임료를 축소 신고하거나, 선임계도 내지 않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법조 관계자는 “변호사가 브로커를 쓰면 수임 규모 축소 신고 등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약점’을 잡힌다. 당장 급하다고 이런 식의 영업을 하면 결국 브로커가 요구하는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이에 따른 사법 신뢰 하락과 법률 서비스 저하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앞서의 판사 출신 변호사는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와 법무사만이 법률사무에 대한 알선과 중개를 할 수 있다. 그 외에는 돈을 받고 알선과 중개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데도 공공연히 브로커가 활동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의 자정 작용과 함께 보다 뚜렷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