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K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박 아무개 부사장(신변보호를 위해 K 씨 모습은 삭제).
지난 26일 오전 11시, 강남역 인근 커피숍에서 K 씨를 만났다. 그는 테이블에 정운호 대표와 한 화장품업체 담당자가 체결한 계약서와 화장품업체 담당자와 K 씨가 체결한 계약서 두 장을 내밀었다. 계약서에는 계약기간이 10년(2004년~2013년)으로 기재돼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3월 촬영한 사진도 함께 보여줬다. 사진 속에서 K 씨는 정운호 대표, 네이처리퍼블릭 박 아무개 부사장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K 씨는 지난 2003년 화장품업체 담당자로부터 정운호 대표를 소개받아 8년간 알고 지낸 사이이며, 정운호 대표가 계약 사항을 준수하지 않아 5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정운호 대표를 만나 녹취한 파일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녹취 내용에 따르면 K 씨는 정운호 대표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했으나, 문제의 인물은 K 씨에게 입에 담긴 힘든 욕설과 함께 신변을 위협하는 협박까지 했다.
“한 사람 내가 봐 버릴 거야. 농담이 아니라 봐버려! 나한테 해코지한 놈은 한 사람 세게 봐. 정확하게 알고 있으라고. 나 거짓말 안 해, 나는! 딱 돌면 내 체면 따지지 않고 봐버린다고…. 애들은 쑤셔가지고 돌려버려. 김XX(유명 조폭 두목)이고 무서운 게 없어. 돌린다니까, 아예 그냥 마구잡이로. 진짜로, 뻥이 아니라, 환장하겠네. 내 아는 동생이 거기 대가리 급으로 있는데….”
K 씨는 “정운호 대표가 ‘검찰총장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다’면서 수차례 협박을 해왔지만 이 내용은 녹취하지 못했다”며 “유명 조폭 두목도 잘 알고 있다면서 무서울 게 없다는 식이었다”며 “든든한 배후를 지닌 정운호 대표와 싸우게 될 경우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해 그동안 이 사실을 숨겨왔다. 정운호 대표 수사가 특검으로 이어져야만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K 씨는 정운호 대표를 ‘과시욕이 강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운호 대표가 정‧관계, 연예계 인맥을 시도 때도 없이 자랑했다는 것이다. K 씨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과시욕이 심하다는 것”이라며 “말해선 안 될 사실까지 주변인들에게 알리면서 자신이 마치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홍보하고 다녔다”고 설명했다.
K 씨가 정운호 대표로부터 직접 들은 연예인 인맥은 톱스타급 남자 배우 A 씨가 대표적이다. K 씨에 따르면 정운호 대표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A 씨와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A 씨가 유명 여배우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찍힌 뒤 협박당하자, 정운호 대표가 직접 나서 동영상 유포를 막아냈다고 한다. 또 A 씨가 한 개인과 체결한 계약 미준수로 2억 원을 변상해야 했을 때도 정운호 대표가 대신 갚아주기도 했다고 K 씨는 기억하고 있었다.
K 씨는 정운호 대표의 친형인 정 아무개 씨(네이처리퍼블릭 고문)로부터 사정기관 고위 인사들에게 수억 원대의 뇌물까지 건넨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당시 정운호 대표의 친형은 그에게 “30억 원의 이익을 챙겼다”는 얘기를 해줬다고 한다. <비즈한국>은 26일 정운호 대표의 친형과 직접 전화통화를 했으나, 정 씨는 “어떠한 말도 해줄 수가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위부터 정운호 대표가 단골로 이용한 B 레스토랑, M 유흥주점, P 호텔(사우나).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정운호 대표가 연기파 남자 배우인 J 씨를 자주 만났다고 한다. 정운호 대표와 J 씨가 주로 만난 장소로 지목되는 곳은 청담동 소재 B 레스토랑. 이 레스토랑은 정운호 대표 사건의 핵심 브로커인 이 아무개 씨 친여동생이 지난해 8월까지 운영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퓨전한정식집인 이 레스토랑의 내부는 홀과 9개의 룸으로 구성돼 있다.
B 레스토랑 관계자는 “정운호 대표의 단골집이 맞다. 한 달에 10차례 이상 방문한 정운호 대표는 한 달에 두세 번은 J 씨와 함께 자리했다”며 “다른 연예인과 함께 온 적은 없으나, 외모가 출중한 모델급 여성들과는 가끔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개 오후 6~9시에 방문해 1시간여 머물렀다. 식사를 마친 후 작별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거의 없어 아마도 2차 장소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보탰다. 정운호 대표는 B 레스토랑에서 나와 300m 거리에 위치한 M 유흥주점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또 다른 주점이 정 대표의 ‘아지트’라는 정보가 포착됐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압구정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연예인 출신 여성 사업가가 마담 역할을 했다더라”며 “그녀는 재벌들에게 연예인을 연결시켜주면서 30~40%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주점을 찾아가 연예인 출신 여성 사업가에 대해 문의하니 주점 직원은 “1년에 한두 번밖에 보지 못한다.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눠 갖고 운영하다보니 직접 관여할 일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M 유흥주점에서 570m 거리에 위치한 P 호텔도 정운호 대표가 자주 이용했던 곳으로 지목됐다. 정운호 대표의 지인은 “정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P 호텔을 찾아가면 될 만큼 애용했다. 연간 회원권을 끊어 호텔사우나를 이용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호텔 관계자는 “정운호 대표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누설하면 안 된다는 지시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정운호 대표를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유시혁 비즈한국 기자 evernuri@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