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그리고 그 직전에는 2월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윤여철 전 외교부 의전장이 발탁됐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유엔에서 반 총장을 보좌한 ‘반기문맨’이다. 반 총장을 가장 가까이서 모신 경력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가장 근거리에서 의전하는 비서관이 되자 반 총장의 ‘대망론’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해 10월에는 친박계 핵심 홍문종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꺼내며 ‘외치 대통령과 친박계 내치 국무총리’에 대해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이야기”라는 입장을 밝히며 소란스러워졌던 적이 있다.
경기도 화성을 지역구로 두곤 있지만 친박계의 맏형 서청원 전 최고위원은 충남 천안 출신이다. 인천을 지역구로 둔 무소속 당선자지만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윤상현 의원은 고향이 충남 청양이다. 그는 올해 초 충청포럼 회장이 됐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충청은 전체 27개 지역구 가운데 과반인 14곳을 새누리당에 안겼다. 이를 두고 친박계 중진 의원은 이런 말을 들려준다.
“TK(대구·경북)는 앞으로도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다. 호남은 국민의당이 장악을 해버렸고 수도권은 더민주가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PK(부산·경남)이 아무리 우리 텃밭이라고 해도 야권에서 대선 후보가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셋이나 된다. ‘TK+충청’에서 몰표로 가고 더민주랑 국민의당이 연대를 끝까지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정권재창출이) 가능한 시나리오 아니냐.” 박원순 서울시장은 경남 창녕 출신이고,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부산이 고향이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김무성 전 대표를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산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김 전 대표를 비토로 일관하지 말고 때론 품고 때론 경쟁하면서 대권 레이스의 불쏘시개로 완주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김 전 대표를 내칠 경우 PK는 그야말로 ‘야성지대’로 변모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김 전 대표 측근은 최근 청와대 인사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자꾸 친박계가 김 대표를 궁지로 몰아넣고 죽이니 살리니 하는데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김무성 죽으면 너거들도 다 죽는다’ 그러면서 왜 그런지 설명하니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더라. 아마 앞으론 예전만큼 김 대표를 세게 공격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그와의 이런 대화가 있던 다음날 아침 김 전 대표는 정진석 원내대표 요청으로 친박계 최경환 의원과 ‘3자회동’을 가진다. 총선 참패로 지역구와 서울 자택에서 칩거하며 스스로 유배 생활을 이어가던 것을 끝내고 불쑥 여의도 한복판으로 돌아온 것이다. 김 전 대표는 그간 부산에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만나왔고, 일부 원외 당협위원장들과도 조우하면서 외부 조직을 정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3자회동 뒤 김 전 대표는 부쩍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반 총장과 김 전 대표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 종로에서 장렬하게 낙선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도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무산되긴 했지만 당을 정상화할 기구로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 ‘투트랙’으로 가려 했을 당시 정 원내대표는 오 전 시장에게 혁신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한 바 있다.
정 원내대표는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만나서 통음을 몇 번씩이나 했다. 혁신위를 맡아서 제2의 오세훈법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 정치개혁 이미지로 당신 같은 사람이 없다면서 말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은 로우키(low-key)를 유지하면서 “낙선한 사람이고 자숙기간인데 어떻게 할 수 있겠냐”며 거절했다. 이를 두고 당 핵심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이 현명하게 처신했다. 지금은 누가 어떤 기구를 맡아도 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며 “오 전 시장은 친박계의 아바타가 되기 싫었을 것도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하나. 친박계가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뒤 이를 의결할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를 무산시키는 ‘실력행사’를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정 원내대표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 원내대표는 친유승민계 성향인 이혜훈 김세연 의원과 친박계를 연일 공격하는 김영우 의원 등을 비대위원으로 임명했다. 친박계로선 혁신위보다 더 혁신적인 비대위를 용인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정 원내대표가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이런 인선을 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상임전국위와 전국위가 열리면 갑론을박은 있었겠지만 중차대한 시기라 의결됐을 가능성을 높게 봤고 그래서 무산시켰다는 것이 정설로 돌고 있다.
무소속 신분으로 당선돼 새누리당에 복당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유승민 의원은 최근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국회에서 만나 티타임을 가졌다. 정 전 의장은 ‘새한국의 비전’이란 싱크탱크를 만들어 오는 10월 새 정치결사체를 발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일각에선 유 의원이 중도 성향을 커버할 창당 작업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유 의원은 사석에서 여전히 본인은 새누리당 일꾼이며 TK의 적자라고 말하며 복당을 신청한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과의 티타임도 여러 번 요청이 있었는데 정중히 거절하다 지난 19일 마지막 본회의가 있어 겸사겸사 만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 총장의 대권행 시사는 사실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올해 말 완료되면 그 이후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떠난 날, 반 총장은 귀국했고 그날 밤 잠룡으로서 용트림을 한 셈이 됐다. 현재권력이 떡 하니 있는 자리에서 미래권력이 설치는 꼴을 용납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 스타일을 아는 이상, 반 총장과 친박계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