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큐탄 판매하시는 분 맞으시죠?”
서울의 한 지하철역 개찰구 앞.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변에 들릴까 목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달랐다. 기자 앞에 선 20대 여성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조금 늦었다며 웃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성은 지체하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잘 아시겠지만, 보험 되는 약이 아니라 그냥 구하려면 비싸요. 진료도 받아야하고 처방도 받아야 하고”라고 말했다.
여성이 판매하는 ‘로아큐탄’은 중증 여드름 치료제다. 빠른 시간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약품으로 알려져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다만 이 약은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크고 작은 부작용이 많아서다. 특히 가임기 여성이나 임신 중 복용하면 기형아 출산 확률이 매우 높아 의사의 처방이 꼭 필요한 약품이다.
하지만 여성은 복용 방법이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단지 ‘싸게’ 판매한다는 점만 강조했다. 불법이라는 점도 모르고 있었다. 기자가 여성에게 “이 거래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느냐?”고 묻자, 여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말요? 먹다 남은 걸 싸게 파는 것뿐인데요?”
현행법상 개인 간 의약품 거래는 불법이다. 약사법 제44조를 보면 ‘약국개설자(약사 또는 한약사) 및 의약품판매업자(한국희귀약품센터, 허가를 받은 한약업사 및 의약품 도매상)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취득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제50조에는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약사라도 약국 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면 불법이며, 편의점에서 파는 일반 의약품도 개인 간 거래는 금지돼 있다. 앞서의 거래는 엄연한 법규 위반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의약품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구하고 싶은 약품명을 검색하거나 ‘OOO 후기’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판매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중고 거래 장터나 해당 약품이 필요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로 연결됐다. 판매 글에는 대부분 “약을 복용하고 어느 정도 나아져서 남았다”며 “해당 질환으로 스트레스 받고 고민되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적혀있었다. 글 아래 달린 댓글은 물론, 커뮤니티 운영자도 의약품 판매 글에 문제를 제기한 흔적은 없었다. 인터넷을 통하면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을 벗어나 누구나 의약품을 사고 팔 수 있었다.
의약품 온라인 거래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중고 거래 장터에서는 ‘먹다 남은 약을 판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터넷으로 의약품을 거래하는 유형은 크게 4가지다. 첫 번째가 전문 의약품으로 처방전이 필요한 의약품이다. 구하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C형간염 치료제 판매자는 “지난해 말 비급여 의약품으로 분류된 제품이다. 12주 복용 기준으로 3800만 원이다”라며 “24주 처방 받아 반이 남았다. 절반 가격에 팔겠다. 구매자 의사를 밝힌 환우가 더 있으니 빨리 결정해 달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판매 금지되거나 유통되지 않는 의약품도 온라인 거래 대상이다. 특히 국내에선 전문 의약품이지만 해외에선 그렇지 않은 약품들이 주로 거래된다. M 시차적응제가 대표적이다. 수면제 기능이 있는 이 약은 미국에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안전성 확보가 안됐다는 이유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매매 글이 종종 올라온다. 또한 유산을 유도하는 M 경구용 피임약도 주요 인터넷 거래 의약품이다. 임신 후 2개월까지 복용이 가능해 일명 ‘낙태약’으로 불린다. 이 약은 정부가 국내 수입 금지 품목으로 지정해 강력히 단속하고 있지만 인터넷에선 거래가 활성화돼 있다. 특히 약국으로 위장해 해당 약품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업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국내와 해외 사이에서 가격 차이가 나는 약품, 비공개로 구매하고 싶은 약품 등도 온라인 거래 대상이다. 해외에선 2만 원가량인데, 국내에선 4만 원가량에 팔리는 독일산 C 연고와 같이 가격차이가 나는 약품은 유학생들이나 관광객이 들여와 판매된다. 정력제나 피임약과 같이 비공개로 구매하고 싶은 약품은 절차를 생략해 쉽고 빠른 데다 거래 흔적이 남지 않아 온라인에서 주로 거래된다.
여기에 법상 충돌이 일어나 허점이 생긴 부분을 파고들어 온라인 의약품 거래를 하는 업체도 있다. 앞서의 약사법은 온라인 거래나,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관세법은 개인이 본인 사용을 전제로 처방전이 없으면 6병 이하까지, 처방전이 있으면 최대 3개월분까지 약을 반입할 수 있다. 그 범위를 넘어서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허점을 노린 일부 업체들은 앞서의 M 피임약부터 수면유도제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본인 사용 전제로 처방전 없이 의약품 구입 가능”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구매 횟수에는 제한은 없다. 다만 동시에 여러 번 구매하면 세관에서 걸러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 목록에 없는 제품도 구해줄 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문제는 해당 사이트가 고가로 판매 중인 수면 유도제를 ‘뉴스에도 나온 제품’이라며 광고하고 있는데, 이 약품은 그동안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에 종종 사용됐던 제품이다. 한 지방청 마약수사대 팀장은 이 약품에 대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업체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으로도 판매할 수 없는 의약품이다”라며 “수사를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불법약국 사이트들이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의약품 거래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고 경고한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로아큐탄의 경우, 처방 전 환자들에게 부작용 가능성을 설명하는 시간이 진료 시간보다 길다. 전문 의약품은 그만큼 신중히 처방해야 하는 약”이라고 지적했다. 이주영 녹색소비자연대 의약품안전사용운동본부장(약사)는 “정상적인 진료와 처방 절차를 거쳐 약물 부작용이 생겨도 원인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대처가 가능하지만 온라인은 이 모든 과정이 생략돼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가짜 약을 구매한 경우에도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법이 없다. 의약품 부작용 신고 및 피해 상담을 담당하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관계자는 “전문의약품 복용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의사의 처방전을 증거자료로 제출해야 한다. 의약품을 불법구매한 경우 부작용 피해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앞서의 이주영 본부장은 “약은 쉽고 편하게 구하면 안 된다. 의사를 만나고 약국을 가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안전하게 쓰고 덜 쓰는 게 목적이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받아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