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의 힐드로사이 컨트리클럽에서 펼쳐진 넵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넵스헤리티지 대회를 앞두고 있는 허인회를 홍천의 한 숙소에서 만났다.
5월 20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리조트 오션코스에서 열린 SK텔레콤오픈 2라운드에서 허인회는 캐디 없이 혼자 필드에 나타났다. 첫날 캐디를 동반하고 3오버파 75타(버디 2개, 보기 5개)를 치면서 공동 56위를 했던 데 반해 캐디 없이 라운드 한 둘째 날은 버디 5개, 더블보기 1개에 홀인원까지 하는 행운을 안으며 5언더파 67타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허인회가 캐디 없이 라운드에 나선 데에는 웃지 못 할 속사정이 숨어 있었다.
“대회를 앞두고 지인을 통해 그 캐디를 소개받았다. 1라운드를 마친 캐디가 서울에 볼 일이 있다면서 밤에 다녀오겠다고 하더라. 다음날 티오프 시간이 8시20분이라 좀 걱정이 됐지만 워낙 급하게 사정 얘기를 하는 바람에 티오프 시간에 늦지 않게만 와 달라고 하고선 보내줬다. 그런데 다음날 약속 시간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기다리다가 라운딩 준비를 하는데 그때 전화를 걸어선 ‘늦잠 잤는데 지금 갈 테니 몇 홀만 먼저 치고 있으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너무 화가 나서 그냥 오지 말라고 했다. 그 캐디의 책임감 없는 태도에 실망이 큰 나머지 캐디 없이 경기를 시작한 것이다.”
혼자 백을 메고 나서기로 하면서 허인회는 14개의 클럽에서 드라이버, 3번 우드, 유틸리티, 5번, 7번, 9번 아이언, 58도 웨지, 퍼터까지 8개만 가방에 담았다. 볼도 3개만 준비했고 물도 안 챙겼다. 목마르면 물이 비치된 홀에서 마시고 다음 물이 비치된 홀까지 참기로 했다.
9월에 제대하는 허인회는 실력을 좀 더 쌓은 뒤 미국 PGA투어에 도전할 계획이다.
“악으로 깡으로 그 라운드를 마무리했지만 정말 힘들었다. 새삼 캐디의 소중함을 느꼈다. 앞으로 다신 캐디 없이 라운드에 나서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정도다.”
2014년 11월 입대한 허인회는 국군체육부대 상무골프팀 소속이다. 2015년 10월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앞두고 창설된 상무골프팀은 한시적으로 KPGA 투어에 출전 중이다. 오는 9월 제대를 앞두고 있는 허인회는 총 대신 골프채를, 군사 훈련 대신 골프 연습을 하며 군 생활을 영위해왔다.
“상무골프팀이 투어에 나갈 수 있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입대하기 전 워낙 자유롭게 살았던 터라 군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지만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어느새 제대를 앞두고 있다. 골프란 종목은 개인운동이다. 야구, 축구를 하던 선수들과는 달리 단체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잘 버텼다. 개인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 명령과 복종만이 가능한 이곳에서 정신적인 성숙을 이룬 것 같다.”
허인회는 골프를 하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체육부대에선 아침에 일어나 단체로 구보나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꼴찌는 허인회의 몫이었다. 유도, 레슬링 선수들보다 허인회의 발이 더 늦었다.
“골프하면서 웨이트트레이닝의 필요성을 모르고 생활했다. 웨이트트레이닝 할 시간에 퍼팅 연습을 더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단체로 웨이트트레닝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래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적응했기 때문에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
축구를 좋아했던 허인회는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골프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고, 대회에 출전만 하면 우승하는 등 ‘골프 천재’란 수식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루는 대회에서 우승하고 그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버지한테 심하게 맞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굉장히 보수적인 사고를 갖고 계셨는데 골프를 시작한 이후 더 강하게 날 내몰았다.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골프를 멀리하기도 했다. 잘해도 맞고, 못해도 맞는데 이럴 거면 아예 못하고 맞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더 혼이 났지만 말이다.”
당시 허인회는 아마추어 무대에서 23승을 거뒀고, 고3 때는 상비군을 건너뛰고 바로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강성훈·김경태 등에게 밀려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뒤 실의에 빠진 그는 1년 반 정도를 골프를 잊고 살았다. 이때 카레이싱, 오토바이 등에 심취해 지냈다고 한다. 2007년 허인회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시 골프를 시작했고,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당시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내가 5등을 했는데 4등까지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 선발전을 위해 프로 데뷔를 미루고 기다렸는데 결국 선발전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그 후 골프채를 아예 잡지 않았다. 아버지도 내게 그런 정신 상태로 골프 쳐 봤자 돈만 아깝다면서 그만두라고 하시더라. 골프채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놀러 다녔다. 그러다 오토바이 타던 친구가 사고 당하는 걸 목격한 뒤로 오토바이 타는 게 두려워졌다. 다시 골프를 시작하려고 골프채를 찾았는데 아버지가 다 갖다버리셨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내 채 없이 연습장을 다녔고 그 후 2007년 프로에 데뷔하게 됐다.”
프로 데뷔 전에는 하루 5~6시간씩 훈련을 하며 실력을 쌓은 허인회였지만 프로 데뷔 후에는 오히려 연습을 하지 않고 대회에 임했다고 한다. 대회 시작하는 날 티오프 한두 시간 전에 골프장에 도착하는 유일한 선수로도 유명했다. 이런 허인회를 가리켜 골프계에선 ‘게으른 천재’ ‘풍운아’ ‘4차원’ 등으로 불렸다.
“골프를 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우승? 물론 우승했을 땐 기쁘다. 그 기쁨은 잠시뿐이고 또다시 난 갈등을 반복하며 골프에서 도망가려 발버둥 쳤다. 그때 일본투어에 진출했다. 물론 미국도 생각했지만 거리와 문화가 비슷한 일본이 적응하기에 편할 거란 생각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투어 생활을 했다.”
허인회는 어머니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더욱이 어머니가 외국에서 골프를 치다가 카트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이마를 스무 바늘 이상 꿰매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튀는 행동을 거듭했지만 내가 그럴수록 어머니가 받는 상처가 크다는 걸 알았다. 연로해진 어머니, 몸이 아픈 어머니를 보면서 정신 차리고 골프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허인회는 자신을 향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내가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하거나 자동차 레이싱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날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골프 선수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뒤에서 수군거렸다. 난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단, 다른 사람보다 솔직하다. 화나면 화를 내고, 감추지 않는다. 늑장 플레이를 싫어하고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간다. 그게 왜 비난받을 일인가.”
허인회는 오는 9월 전역을 앞두고 있다. 그는 ‘벌써?’라는 반응이 나올 때 제일 서운하다고 말한다.
“군 입대 전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으셨지만 속으론 걱정 많이 하셨던 모양이다. 사고 칠까 봐서. 군 생활 못 버티고 도망 나오면 남자도 아니라며 견디고 버티라고 하셨다. 군 내부 생활은 괜찮았다. 오히려 투어에 참가하면서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을 만나고 갤러리들을 대하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버디 하면 무조건 경례해야 하고, 지인들을 만나도 ‘충성’하며 인사해야 하고, 갤러리들이 사진 찍자고 해도 절대 웃으면 안 되는 규칙들이 있었다. 그걸 지키면서 골프하는 게 어색했다. 물론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허인회는 2015년 4월 시즌 개막전인 KPGA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에서 군인 신분으로 첫 우승을 차지한다. 허인회의 개인 통산 4번째 우승(한국 3승, 일본 1승)이자 KPGA 투어 첫 군인 우승자라는 이색 기록도 남겼다. 군인 신분인 허인회는 규정(아마추어 선수와 동일한 규정 적용)에 따라 상금을 받을 수 없어 우승 상금 8000만 원은 2위 박효원(박승철헤어 박승철 원장 아들)에게 돌아갔고 허인회는 상금 대신 포상으로 1박2일의 휴가를 받았다.
허인회는 9월 7일 제대 후엔 KPGA 투어를 소화하고, 내년에 다시 일본 무대를 노크한다. 2014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도신 토너먼트에서 최종합계 28언더파를 올리며 역대 일본프로골프투어 최저타 신기록을 거둔 허인회는 일본에서 실력을 쌓은 후 2년 정도 있다가 미국 PGA투어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