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이 20대 여성을 성추행한 혐으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손 회장은 지난 5월 3일 지인의 갤러리에 들렀다가 서빙을 하던 20대 여종업원 A 씨의 다리를 만지고 자신에게 안마를 하도록 시키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A 씨는 손 회장을 피해 밖으로 나갔으나 해당 갤러리의 관장인 조 아무개 씨(여‧71)가 손님을 응대하라며 다시 A 씨를 가게로 들여보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A 씨는 사건 직후 일을 그만두고 13일 뒤인 5월 16일 손 회장과 조 씨 등을 강제추행 및 방조 등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5월 23일 갤러리 내부 CCTV를 조사한 뒤 “CCTV에 (손 회장의) 객관적인 행위 장면이 확보됐으며 장면만 놓고 봤을 때는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손 회장은 “격려차 했을 뿐이고 고의성이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으며, 관장 조 씨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 분(손 회장)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하겠나”라며 억울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각각 5월 23일과 24일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이 방문했던 서울 강남의 H갤러리.
건물 내부 곳곳에는 갤러리의 메인 화가 M 씨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판매와 전시를 겸하는 갤러리의 특성상 각 작품 옆에 가격표가 붙어있는데 인테리어용 작은 작품은 100만 원에서 500만 원가량이었고, 최고가는 1억 원에 달했다. 손길승 회장은 M 화가의 후원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난 2014년에 열린 M 화가의 개인전에선 축사를 써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VIP룸’이 있는데 바로 그곳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가 직접 방문한 VIP룸에서는 따지 않은 와인 여러 병과 숙취 해소제 등이 발견됐으며, 룸 안에 마련된 작은 냉장고 위에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칵테일 냅킨과 육포 등 마른안주를 구매한 영수증이 흩어져 있었다. 술을 접대했다는 보도로 항간에선 해당 갤러리 카페가 ‘고급 주점’이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술을 판매하는 곳은 아니라는 게 건물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술을 판매했으면 (갤러리에서) 내놓는 쓰레기 중에 술병이 있을 텐데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며 “행사를 종종 열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옆 골목의 와인 가게에서 직접 와인을 사 오는 것은 본 적 있다”고 귀띔했다.
사건이 발생한 H갤러리 VIP룸 내부.
손 회장은 사건 당일 오후 8시쯤 H갤러리에 도착했다. 손 회장은 관장 조 씨와 35년 지기로 “갤러리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잠시 들른 것”이라고 밝혔던 바 있다. 기자와 만난 H갤러리 건물의 또 다른 관계자는 “(손 회장이) 보통 기사를 대동하는데 이날은 기사 없이 직접 차를 몰고 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한 손 회장이 해당 갤러리를 방문한 것은 사건 발생일인 5월 3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갤러리가 지난해 11월 개관했는데 손 회장이 그 이후 2~3차례 낮 시간에 방문을 했다. 차를 기억하고 있어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VIP룸에는 따지 않은 와인병과 숙취해소제 등이 있었다.
또한 이날 손 회장의 행적에 몇가지 의혹이 남는다. 손 회장은 갤러리에 10여 분 정도만 방문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해당 건물 관계자들은 “이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밤 10시까지 빠져나간 차 가운데 손 회장의 차는 없었다”고 말했다. 해당 건물의 발렛 파킹을 맡고 있는 한 직원은 이날 갤러리를 방문한 차들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고급 국산 승용차 등 3대가량의 차가 빠져나갔지만 손 회장의 차가 나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것. 손 회장이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랜 시간 H 갤러리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차량만 H 갤러리 주차장에 주차해 놓았을 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은 손 회장이 갤러리에 머물렀던 시간에 대해 “수사 진행에 있어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곳 갤러리와 같은 층을 공유하는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은 남성 셰프 2명과 서빙·계산 등을 담당하는 알바 여직원 등 3명으로 알려졌다. 바로 그 한 명뿐인 여직원이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로 파악되고 있다. 갤러리와 관계없는 카페의 여직원이 사건 당일 늦게까지 남아 서빙을 담당했다는 점에 대해 O 씨는 “입점한 지 얼마 안 되는 카페 대표가 조 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 답례로 직원들에게 그날 서빙 등을 돕게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