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윌리엄스의 첫 결혼 상대는 발레리 버랄디라는 한 살 연상의 여인이었다. 스타가 되기 전, 줄리아드에서 연기 수련을 하며 샌프란시스코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시절의 로빈. 그는 25세 되던 1976년에 손님 중 한 명이었던 발레리와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로빈은 2년 정도 사귀던 엘레인 부슬러와 헤어진 상태. 그 허전한 마음 속으로 발레리가 들어왔고, 그들은 1978년에 결혼한다. 로빈은 27세, 발레리는 28세였다.
이 시기 로빈 윌리엄스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코카인과 알코올에 의지한 나날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발레리가 첫 아이를 임신한 것. 아버지가 된다는 생각에 술과 마약을 멀리했지만, 이미 부부 관계는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1983년에 아들인 재커리가 태어났고, 부부는 다음 해 유모인 마샤 가르시스를 집으로 들인다. 가난한 화가였던 마샤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생계를 잇고 있던 상태. 그녀에게 로빈 윌리엄스의 집은 직장이자 따뜻한 가정이었다. 그녀의 나이 28세였다. 마샤의 아버지 레온 가르시스는 필리핀 사람으로 스무 살 되던 1929년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대였다. 2차 대전 때 미 해군으로 참전한 그는 이나 레이첼 마틸라라는 핀란드 여성과 결혼했고, 47세의 나이에 딸 마샤를 낳았다.
2014년 갑작스러운 자살로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로빈 윌리엄스.
아이가 태어나긴 했지만, 로빈과 발레리 부부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발레리에겐 애인이 생겼고, 로빈은 LA의 어느 코미디 클럽에서 만난 웨이트리스인 미셸 티쉬 카터라는 여성과 사귀고 있었다. 하지만 미셸은 로빈 윌리엄스에게 소송을 걸었다. 성 관계를 맺을 때 음부 포진에 걸려 있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아 자신도 옮았다며, 620만 달러의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것. 로빈은 감염 사실을 부인했지만 결국 합의해야 했다. 이때 심신이 지친 로빈을 위로한 사람이 바로 유모인 마샤였고, 로빈도 마샤의 지적인 면과 따뜻한 마음에 빠져 들었다. 그들은 1986년부터 갑을 관계를 벗어나 연인이 되었고, 마샤는 로빈의 개인 어시스턴트가 되어 <굿모닝 베트남>(1987) <죽은 시인의 사회>(1989) 등의 현장에 동행했다.
1988년에 발레리와 이혼한 로빈 윌리엄스는 1989년 4월에 마샤 가르시스와 결혼했다. 33세였던 마샤에겐 세 번째, 38세였던 로빈에겐 두 번째 결혼이었다. 결혼식 당시 임신 중이었던 마샤는 1989년에 딸 젤다를 낳았고, 1991년엔 아들 코디를 낳았다. 유모였던 마샤는 어시스턴트를 거쳐 아내가 되었고, 이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1991년에 로빈과 ‘블루 울프’라는 이름의 영화사를 설립하면서 동역자가 되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 <패치 아담스>(1998) <제이콥의 거짓말>(1999) 등의 영화는 모두 ‘프로듀서 마샤 가르시스’라는 크레디트가 들어 있는 작품들. 로빈 윌리엄스는 마샤와 함께한 1980년대 후반부터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던 셈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마샤 때문에 발레리와의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마샤가 내 첫 결혼을 깨트린 건 아니다. 나의 결혼 생활은 당시 이미 파탄 상태였고, 내가 마샤와 사랑에 빠지기 전에 발레리에겐 이미 다른 애인이 있었다. 마샤는 내 인생을 다시 봉합시켜 준 사람이다. 마샤와 결혼한 후엔 밤에 클럽에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억지로 친해지려 하지 않아도, 나에겐 항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셀러브리티와 유모 사이에 일어나는 이른바 ‘내니게이트’가 추문과 섹스 스캔들로 마무리되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로빈 윌리엄스와 마샤 가르시스는 이상적인 파트너 관계였다.
로빈 윌리엄스와 마샤 가르시스는 부부이자 이상적인 파트너 관계였다.
하지만 2008년 3월, 마샤는 이혼 청구 소송을 한다. 이유는 알코올이었다. 1980년대 초 아이가 태어나면서 끊었던 술을 50대에 접어든 2000년 이후에 다시 마시기 시작했던 것. 급기야 2006년에 로빈 윌리엄스는 금주 클리닉에 들어가야 했고, 그곳에서 나온 후엔 별거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 재결합을 시도했지만 한 번 금이 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19년 동안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2010년 이혼 소송이 완료되었지만, 로빈 윌리엄스는 2009년부터 새 연인과 사귀기 시작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수전 슈나이더와 그 상대였다. 이 시기 로빈은 심장 수술을 했는데 수전은 그의 곁에서 극진히 간호했고, 그들은 2011년에 결혼한다. 로빈의 나이 60세였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2014년, 로빈 윌리엄스는 긴 세월 동안 앓아온 우울증과 이즈음 걸렸던 파킨슨 병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 그렇게 위대한 광대는 저 세상으로 떠났고, 이젠 그를 추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기일(8월 11일)을 기억할 뿐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