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가 지난 1월 22일 밤 SK 디앤젤로 콜린스를 소환조사하면서 프로농구 외국인선수들의 대마초 흡연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콜린스는 소변검사에서는 음성반응이 나왔지만 시약 반응에서 양성이 나오자 혐의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동료 선수 2명의 혐의까지 증언해 이들 2명의 선수는 23일 오전 수원지검으로 소환됐다. 이들은 소변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와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최근 6개월에서 최장 1년까지 마약류 복용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모발 검사가 의뢰된 상태다.
팬들에게 수준 높은 농구의 진수를 보여주고 국내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위해 도입한 외국인선수 제도. 그러나 일부 외국인선수들이 일으키고 있는 끊임없는 말썽으로 인해 프로농구의 상처는 깊어만 지고 있다.
프로농구 외국인선수의 마약 파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마약 수사를 할 때마다 프로농구 외국인선수들은 언제나 수사선상에 오르곤 했다. 흑인 선수들이 주류를 이루는 농구, 게다가 성장 배경이 어두운 선수들이 많아 프로농구 용병들의 마약 파문은 끊이지 않고 발생해왔다.
그중 지난 2002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KCC에서 활약했던 재키 존스와 SK 에릭 마틴이 대마초도 아닌 해시시 흡연으로 입건된 것이다. 두 선수는 각각 징역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유죄가 확정됐고, 결국 국외로 추방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국농구연맹(KBL)은 두 선수에게 영구 제명 처분을 내렸고, 빼어난 기량을 자랑하던 둘은 다시는 한국 팬들 앞에서 활약할 수 없었다.
같은 해 SBS에서 뛰던 퍼넬 페리 역시 수사 선상에 올랐다. 2004년엔 전자랜드에서 뛰던 화이트 윌리엄스 등 6개 구단 10명이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프로농구 역사상 유일한 외국인 감독으로 활약했던 제이 험프리스 전 전자랜드 감독 역시 대마초 흡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서둘러 미국행 짐을 쌌다.
이처럼 마약 사건이 꼬리를 무는 이유는 농구라는 종목의 특성과 KBL 차원 단속의 한계 때문이다. KBL은 외국인선수 등록 시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통해 마약 성분 포함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KBL 관계자는 “근본적인 단속을 위해서는 6개월에서 1년 전의 마약 복용 사실까지 잡아낼 수 있는 두발검사까지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하루가 급한 외국인선수 등록 과정에서 2주 정도가 소요되는 두발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 한국에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잡아내기 위해 일괄적인 단속을 시행한다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일부 외국인선수들의 다혈질적인 성격은 유명하다. 프로원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나래 블루버드가 칼 레이 해리스의 독단적인 플레이를 제어하지 못해 챔피언결정전에서 1승4패로 우승컵을 넘겨줘야만 했다. 당시 최명룡 감독은 “나도 해리스를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 프로농구 초기 최고의 외국인선수로 한국 프로무대를 주름잡던 조니 맥도웰 역시 안하무인의 성격으로 동료들과 코칭스태프의 미움을 한몸에 받았다.
이 같은 외국인선수들의 추태는 결국 코칭스태프와 주먹다짐을 벌이는 사건으로까지 발전했다. 지난 1999~2000시즌 LG의 마일로 브룩스는 연습 도중 이충희 감독의 지시를 어기고 반항하다 주먹을 휘두르는 추태를 벌였다. 이 감독은 이에 대한 징벌 조치로 브룩스를 한 달가량 벤치에 남겨놓는 중징계를 내렸다. 결국 LG는 9연패의 나락에 떨어졌고 선수 전원이 삭발하고서야 겨우 연패 수렁을 벗어났다.
기아(현 모비스)의 듀안 스펜서 역시 당시 박수교 감독과 충돌 직전까지 갔고, SK의 로데릭 하니발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경기장 기물을 집어 던지는 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같은 폭력 행사는 꼭 ‘문제아’들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성실한 플레이와 모범적인 성격으로 구단과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퍼비스 파스코는 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영원히 씻지 못할 실수를 저질렀다. 지난 2006~07시즌 LG의 정규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던 파스코는 그 해 올스타전에서 슬램덩크 콘테스트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선수였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부산 KTF 매직윙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상대 선수 장영재의 거친 수비에 화가 난 파스코는 장영재의 목을 강하게 가격했다. 이후에도 화를 참지 못한 파스코는 그를 말리던 최한철 심판까지 폭행해 곧바로 퇴장을 당했다. 이후 LG 구단은 바로 다음날 파스코를 팀에서 퇴출 조치했고, KBL은 그를 영구제명했다.
▲ 외국인선수들이 국내 프로농구에서 수준 높은 경기를 선보이지만 마약 폭행 등의 문제를 끊임없이 불러오고 있다. 사진은 페리(왼쪽)와 맥도웰의 모습. | ||
그러나 2006~07시즌을 앞두고 팀훈련에 합류하기 위해 입국한 벤슨은 한국인 애인과 다툼 끝에 애인과 애인의 가족들을 폭행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결국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구단에 통보도 하지 않은 채 황급히 짐을 싸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한국과의 인연을 마감했다.
외국인선수의 해프닝 중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지난 1998년 말 그렉 콜버트(당시 대구 동양)의 야반도주다. 전희철 김병철 등 주축 선수들의 군입대로 전력이 크게 약화된 동양(현 오리온스)은 모든 희망을 외국인선수 콜버트에게 걸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 초 8경기를 뛴 콜버트가 구단에 갑자기 ‘미국에 다녀와야겠다’는 황당한 부탁을 했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자리에서 콜 택시를 불러 공항으로 떠났다. 프런트가 잡으러 갔지만 호텔에 방 번호 보안까지 당부한 콜버트는 그대로 미국으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콜버트는 미국에 있는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식에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를 말리러 간 것이었다. 결국 그 시즌에 동양은 32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1999~2000시즌 개막 직전, 창원 LG 역시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다. 시범경기까지 잘 치르고 개막을 며칠 앞둔 11월 훈련시간이 다됐는데 재계약한 용병 버나드 블런트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 숙소에 들어가 보니 짐을 몽땅 싸서 떠나버린 뒤였다. LG는 즉시 공항으로 수소문했으나 이미 출국한 상태였다. 자초지종을 알아본 결과 블런트는 신설리그인 IBL의 팀과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KBL은 당시 미국과 특별한 협정을 맺은 것도 없어 LG는 부랴부랴 IBL리그에 전화를 걸어 블런트는 한국리그의 팀과 계약을 맺은 선수니 돌려보내달라고 했으나 신통한 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LG는 이중계약을 문제 삼아 IBL에서도 뛰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한 시즌 꼭 한두 번씩 미국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던 기아의 클리프 리드, 코리아텐더와 재계약을 맺었으나 한국에 전쟁위험이 있다며 오지 않은 에릭 이버츠, 챔프전 도중 미국의 팀과 계약이 돼 미국에 경기를 하러 갔다가 다쳐서 돌아오지 않은 여자농구 삼성생명의 루스 라일리 등도 팀을 당황하게 만든 선수들이다.
2004~05시즌에는 한창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던 KCC의 찰스 민렌드가 아내의 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미국으로 떠나겠다고 고집을 펴 사무국장과 단장이 밤을 새 민렌드를 설득하는 고생을 치르기도 했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