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노무현 루트’ 구상을 밝혔다.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대권행을 위한 친노 끌어안기로 해석하고 있다. 일요신문DB
박 시장은 이어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서울시 사업 계획도 밝혔다. 그는 “서울엔 혜화동 집 등 노 대통령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많다. ‘노무현재단과 함께 노무현 루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재단과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박 시장 구상은 SNS를 타고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노무현 루트’는 뭘까.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 머물던 빌라가 있고 종로구 안국동엔 노 전 대통령 지구당 사무실이 있었다. 현대계동 사옥 옆에도 지방자치 실무연구소라고 해서 노 전 대통령이 운영했던 연구소가 있었다. 서울시가 먼저 ‘노무현 루트’의 형태로 노 전 대통령의 흔적들을 가지고 해볼 만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라고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6월 중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릴 계획이다. 실무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의견을 나눴었다. 서울시가 노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라서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서울살이를 오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연이 담긴 지역 10군데를 정하고 10군데를 점으로 이어가면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노 전 대통령 혜화동 사저와 지구당 사무실 등을 이어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할 만한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며 노무현 루트의 ‘순수한 의도’를 강조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이 노무현 루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노무현 루트를 굳이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DJ와 YS를 생략하고 곧바로 노무현 길만 만든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박 시장이 이번 총선과정에서 세를 확장해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박 시장은 한때 메르스 사태 직후 대선주자 1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밀려났다. 결국 대통령이 되려면 더민주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전히 최대 세력은 친노다. 이 사람들을 겨냥한 공약”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루트 사업이 당내 주류인 친노들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여야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는 시점은 내년 8월경이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전히 더민주 주류는 친노·친문 진영이다. 이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면 박 시장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더민주 핵심 당직자는 “박 시장은 친노들에게 자기 나름의 메시지를 던졌다. ‘친노, 당신들과 척 안지고 함께 가겠다’ 이것인데 박 시장이 좀 조급한 것 같다. 총선에서 ‘박원순계’가 지리멸렬했다. 당내 기반이 너무 취약해서 그런지 자꾸 무리수를 두고 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 다음으로 사실상 대한민국 넘버 2다. 서울시정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요즘엔 너무 정치적 행보에 치중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노무현 루트에 대해 확대해석을 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정무라인 관계자는 “대권후보로 해석하면 안 된다. 노무현 루트가 친노를 위한 정책은 아니다. 다만 시장이 원래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 노 전 대통령의 종로 사무실에 시장이 자주 가서 밥도 먹고 그랬다.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평소에도 자주 얘기하셨다. 그런 차원에서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무현 루트’가 친노 마케팅의 연장선이라는 시각은 여전하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대선출마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고 봐야 한다. 총선 뒤 호남에선 야권 대선주자가 문재인 안철수로 좁혀진 상황이다. 두 사람이 지금 고속 주행상태인데 박 시장이 끼어들기를 시작했다”며 “호남 방문은 호남 민심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지를 테스트한 것이고 노무현 루트는 소수의 강경한 친문 집단을 제외하곤, ‘문재인으로 이번 대선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노무현 정신 계승자들의 마음을 박 시장이 공략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혜화동 사저, 친노 인사 자녀가 사들여 5월 31일 취재진은 노무현 전 대통령 혜화동 사저를 찾았다. 사저는 빌라 형태의 3층 건물이었다. 빌라 앞엔 잔디가 깔린 작은 정원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을 포함해 4년간 이곳에서 머물렀다.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권 여사랑 같이 손잡고 산책도 가고 저랑 커피 자주 마셨다. 노 전 대통령은 관대하고 수수한 분이었다. 집이 65평인데 정말 잘 지은 집”이라고 회상했다. 종로 60년 토박이라는 또 다른 주민은 “노 전 대통령이 3층에 살았던 걸로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대선후보로 선출됐을 때 집값이 확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고 귀띔했다. 등기부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부부는 1999년 3월 19일 이 집을 매입했다. 2003년 2월 25일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까지 약 4년간 머물던 집이었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2003년 3월 25일 이 집을 팔았다. 이 집은 현재 여 아무개 씨와 공 아무개 씨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여 씨는 노 전 대통령 후보시절 불교 특보를 지낸 고 여익구 선생 아들이다. 공 씨는 여 씨의 부인이다. 둘은 2015년 10월 28일 이 집을 샀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