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여권이 내년 대선 필승 카드로 남북정상회담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은 장면에 노무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것. | ||
한 인터넷 신문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을 보도한 데 이어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야당 측이 이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여권이 내년 대선 필승 카드로 남북정상회담을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내년 4~5월쯤 이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일요신문> 취재에서도 이런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실현될 경우 그 위력은 정국을 당장 뒤집을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추진 과정에서도 정국의 흐름을 일거에 바꿀 핫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지금 여권 발 정계개편 변수와 맞물려 복잡한 이차방정식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햇볕정책을 고수해야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호남세력을 확보해야 하는 노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남북정상회담 추진이라는 접점으로 맞아떨어질 수도 있어 얼마 전 노-DJ 회동도 그런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내년 대선의 ‘중대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는 대북 관계의 파괴력을 진단해보았다.
북한 변수는 한국 정치의 변수로 작용해왔다. 2007년 대통령 선거도 예외가 아닐 것 같다. 특히 최근 불어닥친 북핵 위기는 한민족의 존망과도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그 동안 역대 선거에서 불었던 그 어떤 ‘북풍’보다도 강력한 토네이도가 될 전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먼저 여론조사 측면에서 보자. 국민들은 북핵 위기로 대표되는 북한 변수를 더 이상 안보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이에 대해 “남북문제가 더 이상 안보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경제의 문제가 됐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남북문제는 안보와 이념의 문제, 미래의 문제였다. 통일은 먼 장래의 일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인식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하자 남북문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현실의 문제가 됐고 위기관리의 문제, 경제의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홍 소장은 “최근 집단심층면접(FGI) 조사 결과 사람들이 북핵 문제를 전쟁비용이 됐든, 통일비용이 됐든 당장의 돈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제에 포지셔닝이 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최근 올라가는 것도 북핵과 경제 문제를 동일시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북풍이 내년 대선의 핵심 이슈가 될 수 있다.
북풍은 정치 전략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포인트다. 열린우리당의 한 친노그룹 의원은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도로 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현재의 정계개편 구도를 반대하는 까닭은 내년 대선의 구도를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을 중심으로 하는 ‘반(反) 한나라당 연대’가 아닌 특정 이슈(남북 문제)를 대립 전선의 ‘축’으로 하는 구도짜기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발언은 ‘노무현 복심’으로 통하는 이광재 의원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최근 정계개편과 관련해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연대세력을 만드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통일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강한 경제를 만드는 것, 지역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평화민주세력의 대 결집의 변화된 모습으로 21세기 신주류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내년 대선의 구도를 한나라당 대 반 한나라당 구도의 지역 대결 구도가 아닌 특정 이슈를 위한 찬반 구도로 만들어가겠다는 뜻이다. 특히 이 의원은 “지금은 정치세력의 연합 문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단계”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가 바로 특정 이슈 중심(남북관계)의 정계개편을 의미하며 그것이 내년 대선까지도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전략 전문가는 이에 대해 “북핵 위기는 내년 대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데 그 자체로 국민적 피로감을 누적시킬 뿐 아니라 경기침체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국민들의 보수적 태도도 이전보다 훨씬 강화될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북핵 위기가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이슈일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한나라당이 북한에 계속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경우 오히려 ‘전쟁불가피론’에 맞서는 ‘평화담론’이 젊은층과 중도층을 중심으로 형성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유권자들이 지지율에서 크게 앞서는 한나라당 후보보다 미래지향적인 의미의 ‘평화’를 선택할 경우 대선 3연패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권이 분열한 상황에서 ‘평화 담론’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선 승리의 기틀로 묶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평화담론’의 화두를 이미 던진 셈이다. 그는 최근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북핵 사태 이후) 남북문제가 엄중하다. 정치권이 정계개편보다는 남북문제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나라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현재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바로 남북관계이고 그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이 최우선 순위로 꼽힌다.
한 대북 전문가는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북풍 카드도 필요하다면 쓸 것이다. 효과를 의문시하는 의견도 많지만 막상 남북정상회담이 현실화되면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북한 정권도 ‘수구세력’의 집권은 결코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을 지낸 민병두 의원도 “북핵이 단순한 이슈가 아닌 (대선에서) 또 하나의 구도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 인터넷 언론이 밝힌 여권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설도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뢰를 받는 핵심 인사들이 북한 핵실험 후인 10월 중순 베이징에서 접촉한데 이어 10월 하순 ‘제3의 장소’에서 회담을 갖고 6자회담 복귀 일정 및 향후 정상회담 추진 등을 의제로 폭 넓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비밀특사로는 노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 씨 등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안 씨가 베이징에서 북측 고위 인사와 두세 차례 만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밀특사로 지목 받은 안 씨 측은 “지난 8월 가족들과 휴가를 겸해 4일 정도 베이징에 들른 적은 있지만 그 뒤에는 중국에 간 적이 없다”면서 북측 인사 접촉설을 부인했다.
그런데 안 씨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안 씨는 지인들과 중국 여행을 자주 다녔다. 올해 중반쯤에는 이수인 전 의원(작고)의 측근들과 중국 여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안다. 여기에는 배기찬 청와대 동북아시대위원회 비서관 등도 동행할 예정이었다. 같이 여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을 자주 다닌 것만은 사실이다”라고 밝히면서 “최근 안 씨는 그의 사면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지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 국정 전략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안 씨는 주로 듣고만 있었지만 지인들의 정치적 조언에 ‘왜 진작 말해주지 않느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안 씨가 실제로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정계개편 주도와 권력 재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내년 대선에 여권이 쓸 깜짝 카드가 무엇이라고 보느냐’고 물은 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24%가 ‘남북정상회담’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야당에서 북한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또한 한나라당 대권주자 3인도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내년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려 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이기도 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내가 파악한 정보로는 내년 4~5월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국을 전격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여야 대선 후보가 선출되기 전으로 전망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남북 채널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물러남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김만복 국정원장 내정자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 같다. 김 내정자는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실무진으로 참여한 바 있어서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적임자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공 의원은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정계개편과 관련이 있다고 밝히면서 “노무현 정권이 가진 마지막 카드가 바로 북한 변수 카드다. 고구려(북한)-백제(노무현·김대중 등 호남세력) 동맹이 신라(영남 한나라당)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김정일은 수구세력 집권을 막을 수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해외 은닉 비자금 의혹 등을 희석시킬 수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의 기회를 다시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은 3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최상의 카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북한이 임기가 1년 9개월 남은 노 대통령과 선뜻 회담을 하려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도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으로 넘어가면 남북 정상회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또한 회담 개최에 합의하더라도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무얼 논의할 것인지도 문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얼마나 실질적 합의 사항을 이끌어낼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도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북한 김영남 최고위원이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정상회담을 하려면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데 현재 남쪽의 내부정세로 볼 때 어렵지 않겠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노 의원은 또한 “김영남 최고위원은 남북대화를 촉구한 것에 대해서도 ‘남북관계도 북미관계의 영향을 받는 것 같으며, 북미관계가 진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진척되길 바라지 않는 미국의 통제로 인해서 남북간 직접대화도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애초부터 적극적인 성사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점점 꺼져 가는 정권 재창출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은밀히 준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최근 정계개편의 회오리 바람 속에서도 노 대통령의 행보는 어딘지 자신감과 함께 비장미를 띠고 있다. 아직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이것이 바로 한나라당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