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기자와 만나기 전날 귀국한 김현정과 어머니는 인천공항에서 곧장 빙상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동계체전에 출전해야 돼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던 것. 훈련은 태릉선수촌과 롯데월드에서 주로 이뤄진다. 롯데월드를 이용할 때는 대부분 밤 11시가 넘는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는 스케이트장이라 선수들이 빌려 쓰려면 새벽이나 밤 시간에 주로 배정된다. 김현정은 자신의 키가 더디 자란 이유가 ‘수면부족 때문’이라며 나름 논리적인 설명을 곁들인다.
“저녁 10시부터 아침 7시까진 충분히 수면을 취해야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전 다른 사람 잠 잘 시간에 훈련을 해야 하니까 항상 잠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왜 키가 안 크냐고 물어보면 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농담처럼 얘기 해요.”
김현정의 얘길 듣던 어머니 전 씨가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어요. 피겨를 시킨 것도 안짱다리를 고쳐보려고 했던 거예요. 처음부터 선수로 키울 목적이 아니었어요”라며 다음과 같은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다리 때문에 소아정형외과를 다녔는데 담당 의사가 교정 차원에서 발레나 스케이트를 시켜 보라고 권유했어요. 제가 현정이 손을 잡지 않으면 자주 넘어질 정도로 보행이 심하게 불편했거든요. 스케이트를 시킬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현정이가 제대로 걸을 수 있다면 뭘 못시키겠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 롯데월드에 데려 갔고 거기서 레슨을 받았는데 현정이가 피겨를 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던 거죠.”
▲ 김현정이 2008-2009 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 쇼트 프로그램의 연기를 펼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복 형태의 경기복을 입고 프리 프로그램에 출전한 모습. 사진=홍순국 전문기자 | ||
“그 후 대회만 나가면 상을 받아 왔어요. 안짱다리였던 아이가 피겨 선수로 활동한다는 게 눈물이 날 정도였죠. 그러다 4학년 말에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죠. 그때부터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했는데 어느날 방송에서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선 서울대 가는 것보다 태릉선수촌 들어가기가 더 힘들다’고. 현정이가 서울대보다 더 힘든 곳을 들어간 거잖아요. 자부심도 생기고 현정이도 운동하는 걸 재밌어 했는데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피겨를 하다보면 링크장 대관비(선수들 사이에선 ‘얼음비’로 통용된다), 레슨비, 스케이트화 구입비 등등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IMF 시절 실직한 남편이 좀처럼 재기를 못하고 있고, 수입도 없는 상황에서 딸의 뒷바라지를 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한때는 피겨를 포기하려고 생각했어요. 돈 나올 곳이 없는데 계속 지출만 늘어나는 상황을 감당하기 버거웠거든요. 공부도 곧잘 해서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키려 했는데 때마침 정식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거예요. 뛸 듯이 기쁘면서도 참 많이 서글펐습니다. 남들은 대표팀에 뽑히지 못해 안달인데 현정이는 뽑혀도 갈등이 되는 현실을 안고 있잖아요. 며칠 고민을 하다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피겨를 시켜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고 다시 뒷바라지를 시작했습니다.”
전 씨는 10년 넘게 김현정을 쫓아다니며 남다른 눈썰미로 경기복을 직접 제작하는 탁월한 솜씨를 갖게 됐다. 딸의 옷은 물론 주니어 선수들의 옷도 주문받아 수작업을 통해 판매도 했다.
김현정은 “엄마가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저한텐 돈 없다고 내색 안 하셨거든요. 저 몰래 여기저기 돈 빌리러 다니시고, 주문 받은 경기복을 만드느라 잠을 못 주무시고…, 엄마 생각하면 진짜 성공하고 싶어요. 김연아 언니처럼요”라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김현정은 전지훈련을 앞두고 3000만 원이 넘게 드는 훈련 비용을 구하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훈련을 포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현정의 딱한 사정을 안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두 차례에 걸쳐 훈련비 전액을 지원했는데 이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전 씨는 김연아 어머니에 대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절절히 표현해냈다.
“연아 어머니도 어려운 형편에서 딸을 키우셨기 때문에 제 사정을 알고 남 일 같지 않으셨대요. 처음엔 연아가 훈련하는 토론토의 훈련장으로 초빙하셨고 그 다음엔 밴쿠버에서의 전지훈련을 지원해주셨어요. 언론에 전혀 노출시키지 않고 조용히 물밑에서 지원해주시는 걸 보며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사실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를 갖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연아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의 선수들을 돌보고 도와주려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주려고 애쓰시는 편이에요.
제가 만약 연아 어머니 정도의 위치가 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현정이가 연아 모교인 군포 수리고에 입학하게 된 것도 그 어머니가 뒤에서 많이 힘이 돼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죽을 때까지 그 도움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전 씨는 밴쿠버에서 열린 4대륙 피겨스케이팅대회를 앞두고 또 다시 실의에 빠지고 만다. 지난해 온세통신에서 빙상팀을 창단하고 김현정과 2년 계약을 맺으며 한 달에 200만 원의 지원을 약속했는데 온세통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빙상팀을 해체했고 4대륙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에 김현정을 지원할 수 없다는 회사 측의 통보를 받은 것이다.
“정말 하늘이 깜깜했어요. 그 돈으로 얼음비와 레슨비 등을 지불하는데 갑자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하니까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밴쿠버로 가는 항공료도 구하지 못했거든요. 현정이는 연맹에서 지원을 해주지만 가족이나 코치는 자비로 해결해야 해요. 항공료는 물론이고 대회 공식 호텔인 특급호텔에 머물 돈도 없었어요. 결국 코치 선생님 항공료는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해결하셨고 저도 갖고 있는 돈 탈탈 털어서 비행기를 탔어요.”
“점프가 보기엔 쉬워도 2바퀴 반을 도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허구한 날 엉덩방아 찧는 건 다반사고 빙판 위에서 뒹굴고 넘어지면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요. 멍이 들 때마다 엄마가 밤 새워 마사지를 해주시지만 그 고통은 말로 표현 못해요. 솔직히 4대륙 대회 앞두고 운동이 하기 싫어 도망 다녔어요. 발목 부상으로 도통 실력이 늘지 않는 거예요. 점프도 제대로 안 되고 몸이 아프니까 연기나 표현도 잘 안 되고. 착지할 때마다 느끼는 통증이 엄청났거든요.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난 뒤에 발목에 인대 강화 주사 맞고 밴쿠버로 떠났던 거죠.”
어머니 전 씨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루는 갑자기 현정이가 사라졌어요. 분명 얼음 위에서 훈련하고 있었는데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라진 거예요. 빙상장 안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현정이를 찾다가 나중에 화장실에 숨어 있는 걸 발견했죠. 문을 잠가 놓고 열어주질 않더라고요. 더 이상 스케이트 타기 싫다면서. 제 속을 제대로 뒤집어 놓은 뒤에야 1시간 만에 문을 열고 나오는데 마음 같아선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평상시엔 친구나 자매같이 사이 좋은 모녀지간이지만 빙상장에만 가면 ‘독한 엄마’ ‘말 안 듣는 딸’로 변모한다며 서로 얼굴을 보고 웃는 두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꾸 <인간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김현정은 올시즌이 시니어 데뷔 해이기 때문에 앞으로 수정 보완하고 배워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고 한다. 기술적인 부분보다 스케이트를 폭 넓게 타고 김연아처럼 탁월한 표정 연기와 함께 우아한 피겨 스케이팅을 선보이고 싶은 소망을 안고 있다.
김현정의 목표는 국제빙상경기연맹의 심판이 되는 것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당찬 17세의 소녀는 이렇게 말한다.
“심판이 가장 높잖아요. 선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심판이 제일 멋있어 보여요. 공정한 판정으로 선수들의 사기와 희망을 꺾지 않는 심판이 되고 싶어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