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에서 지도자로 탈바꿈한 신태용 감독이 2009년 K리그 우승을 목표로 선수들 지도에 여념이 없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젊음, 신선함, 새로움, 열정 등이 차고 넘치는 성남 일화 선수단 분위기를 가까이서 접하며 감독의 교체와 변화가 선수단을 얼마만큼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선수단과 함께 속초에 위치한 한 횟집에서 신태용 감독과 맥주 한 잔을 주고받으며 ‘가벼운’ 취중토크를 나눴다.
“감독이 되고나서 처음 만난 건데 이번에도 ‘취중토크’네.”
선수 때부터 했었던 ‘취중토크’ 얘기를 꺼내는 신태용 감독은 “우리가 술을 몇 번이나 같이 마셨지?” 하면서 이전 에피소드들을 들춰내려 했다.
“2002년도인가? 성남 우승하고 바로 만났잖아요. 와! 그때 이 기자, 술 마시다 도망쳤지? 화장실 간다고 속이고선.”
그런 상대를 이젠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정말 기분이 묘했다. 이전 술자리에서 “황선홍 홍명보 신태용 선수들이 지도자가 되는 날이 과연 언제쯤 돌아올까?”하며 지도자의 세대교체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던 내용들이 현실로 이뤄진 가운데 2009년의 프로축구 개막을 기다리는 상황이 신기했고, 세월의 흐름을 절감했으며, 그리고 그들의 어깨에 놓인 숙제와 짐들이 이해와 기대로 버무려져 작은 감회로 전달됐다.
“코치를 해보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됐으니까 더욱 그런 기분이 들 거예요. 나도 당황스러운데 뭘. 하지만 이미 뚜껑은 열렸고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이 만만치 않아 나 스스로 감독 신태용에게 적응하며 그 과제들을 잘 풀어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얼마 전 일본 가고시마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성남 일화는 하루 쉬고 바로 다음날 강원도 속초에서 다시 소집됐다. K리그 개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마냥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던 것. 이전 선수단 구성원들 중에서 많은 선수들이 나가고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합류한 탓에 신태용 감독 입장에선 짧은 시간 동안 선수들과의 호흡을 맞추고 조직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고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걱정이 많았는데 예상 외로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요. 훈련 외의 시간에도 선수들이 알아서 자율훈련에 참여하는 바람에 코치들이 나서서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할 정도니까. 아까 훈련하는 거 보셔서 알겠지만 선수들이 신바람을 내며 운동해요. 구단 관계자들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분위기라고 하더라고요. 나 또한 성남에서 선수로 뛸 때 익숙했던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걸 바꿔보려고 많이 애를 썼는데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베스트11을 구상해서 훈련을 못해봤다는 거? 아직 이렇다할 베스트11을 내세울 수 있는 선수들이 부족하다는 거죠.”
신 감독은 프로축구 최연소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자리’에 연연해하며 지도자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강조했다. 김학범 감독이 경질되고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신 감독이 선임되는 과정에서 주위의 우려와 비난, 그리고 기대가 동시에 존재했던 탓에 신 감독은 ‘피박’도 ‘독박’도 안 쓰고 싶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나 혼자 모든 걸 책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남에서 나처럼 오랫동안 주장을 했던 선수는 없을 거예요. 우승할 때 감독님과 함께 선수 명단을 짜고 훈련 프로그램에도 동참하면서 우승하는 노하우를 배웠던 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난 코치들에게 철저한 분업화를 강조하고 있어요. 김도훈 코치는 공격수들을, 이영진 코치는 수비수들을 맡아 훈련을 시키고 세세한 부분들을 지도하면 내가 큰 그림을 그려서 받쳐주면 되는 거잖아요.”
이렇게 자신감을 내보이는 신 감독도 가끔 자신 없어지는 부분이 있다. 연패의 수렁에 빠질 경우다.
“한 시즌동안 몇 차례 위기가 있을 거예요. 그럴 때, 팬들과 여론의 비난이 쏟아질 때, 내가 고집스럽게 주장했던 부분들을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갈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안 그럴 것 같은데 나도 선홍이 형(황선홍 감독)처럼 부임 초기엔 합숙을 폐지했다가 성적이 안 나오니까 합숙훈련을 단행할지도 모르는 것이고. 한번 부딪혀 봐야 하겠죠.”
▲ “우승이 목표”라고 말하는 프로축구 최연소 감독 신태용의 얼굴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 ||
“김상식, 김영철 선수들은 우리 팀에서 1년만 있으면 은퇴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팀을 옮기면 2~3년 더 뛸 수 있는 선수들인데 내가 데리고 있으면 1년 하고 그만둬야 한다고요. 그리고 여론도 문제가 있어요. 2008년 하반기부터 김영철이 노쇠했다느니, 김상식이 어떻다느니, 계속 이런 기사들을 써댔잖아요. 2008년 우승 못한 게 그 선수들 탓이라고 쓴 기자들도 있었어요. 그런 선수들을 교체하니까 이번엔 신태용 칼바람 운운하면서 나한테 비난의 화살을 보내는 거야. 그리고 내 은퇴하게 된 진짜 이유는 지금 말 못해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 사정을 속시원히 말할 때가 오겠죠.”
이동국 얘기가 빠져서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이동국을 데려간다면 김상식, 김영철도 데려가야 해요. 우리 팀에서 6개월밖에 안 된 선수를 쓰려고 10년 이상된 선수를 버린다는 게 말이 돼요? 솔직히 이동국은 내보내고 김상식은 같이 가려고 했었어요. 그러다 결국 다 정리하긴 했지만. 동국이는 이름만 앞세우지 말고 경기력을 보여줘야 했어요. 코치들에게 모두 의견을 구했고 동국이에 대한 평가를 모은 결과 ‘이별’로 결론 나게 된 거죠. 지금 우리 팀에 있는 이호나 김정우도 이름만 내세우고 경기력을 발휘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어요. 억대의 연봉을 받는 선수라면 그만큼 운동장에서 보여줘야 해요.”
감독에 선임된 후 신 감독은 다른 팀 감독들에게 신고식 차원에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초짜 감독’이니까 알아서 예를 갖춰야 한다며 웃는 신 감독은 얼마 전 청소년대표팀 감독에 오른 홍명보 감독과 부산의 황선홍 감독과도 통화를 했다며 이런 내용을 들려준다.
“대표팀에서 워낙 친하게 지냈던 형들이라 그 형들 일이 남 같지 않고 그분들도 내 일이 남 같지 않을 거예요. 선홍이 형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젊은 감독은 잘해도 욕 먹고, 못 하면 더 욕 먹는다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난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 욕 먹는 건 두렵지 않다고요. 젊은 지도자들이 잘해야 후배들이 목표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많은 기회도 주어지게 될 것이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멋진 승부를 펼쳐 보이고 싶어요.”
옆에 앉아서 사이다를 마시며 얘기를 듣고 있던 김도훈 코치에게 ‘형’이자 ‘감독’인 신태용 감독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감없이 해달라고 주문했다.
“감독님과는 20년 지기예요. 선수 시절부터 남다른 리더십을 갖고 계신 분이라 코치 입장에서도 기대가 커요. 경기를 치르다보면 항상 좋을 순 없잖아요. 절망과 혼돈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어요. 그래도 감독님이 처음 가졌던 목표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적에 좌지우지되는 지도자보단 신념을 굽히지 않는 지도자를 바라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죠?”
신태용 감독보다 일찍 코치 생활에 뛰어든 김도훈 코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은 자기 눈에 선수들을 맞출 생각을 하지 말고 스타 의식을 버리고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인터뷰 말미에 신태용 감독에게 올해 목표를 물었다. 대답이 역시 신세대 감독답게 시원시원하다.
“우승입니다. 쉽게 우승이란 말을 내뱉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요. 우승을 위해선 부상 선수가 없는 팀이 돼야 해요. 우승을 가장 많이 경험해본 코칭스태프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자신할 수 있어요. 초보 감독이라고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