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 5월 30일 LG배 32강전을 시작으로 1일 16강전을 치른 다음 2일에는 오전 10시부터 한국여자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을 소화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한국바둑리그 소속 팀 BGF리테일 CU의 개막전 경기에도 출전했다. 이틀간 세 번, 하루 2국의 강행군을 치른 것이다.
하지만 강행군도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성적이 따라야 한다. 최정은 올해 20승 8패를 기록 중이다. 승률도 놀랍지만 대국 수도 국내 프로기사 중 제일 많다.
2일 한국여자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최종국에서 오유진을 꺾고 부광탁스의 우승을 확정지은 최정을 한국기원 4층 국가대표실에서 만났다. 트레이드마크인 약간은 졸린 듯한 표정의 그녀를 만났다.
최근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최정 6단. 상반기 최다대국 1위, 다승 1위를 질주 중이다.
“솔직히 좀 그렇다. 쉬고 싶은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냥 즈잉이(최정은 중국의 용병 위즈잉을 이렇게 부른다)와 수다를 떨며 오후 대국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LG배 활약이 화제였다. 세계대회 본선진출도 힘든데 16강이라니, 꽤 화제가 됐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첫 판은 운이 따랐고 펑리야오 5단과의 16강전이 아쉬웠다. 종반 무렵 내가 중앙 석 점을 잡았는데 그게 패착이었다. 그 수로 하변을 밀어갔으면 아마 좀 남길 수 있었을 것 같다. 많지 않은 시간 속에서 두 가지 선택을 놓고 많이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 선택이 나빴다.
―굉장히 아쉬웠을 것 같다. 그 고비만 넘었으면 세계대회 8강이었는데.
“그게 실력인 것 같다. 한편으론 후련한 느낌도 있었다. 제한시간 3시간 바둑은 참 오랜만이었다. 내게 주어진 3시간을 원 없이 썼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진 않다. 예전에는 속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장고대국이 편하다. 많은 시간 공들여 바둑을 두다보면 공부도 된다. 속기는 좀 정신이 없다.”
―초반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 그래도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라이벌 위즈잉과의 대국도 초반을 그르치고 중후반에 따라가는 바둑이 많았다. 힘이 통하면 이기지만, 통하지 않으면 지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국가대표 연구실에서 집중연구를 통해 많이 좋아졌다고 느낀다. 펑리야오 5단과의 대국도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평소 국가대표 상비군 팀에서 연구하는 것으로 아는데.
“기사에 따라서는 상비군 팀 훈련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대부분의 바둑 공부가 상비군 팀에서 이뤄진다. 아주 좋다. 강한 상대도 많아 보고 배울 게 많다.”
―여자바둑리그에서 소속팀 부광탁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우리 팀 분위기가 좋았다. 사실 지난해는 처음이라 그러지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즈잉이도 한국문화가 낯설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초반 레이스부터 술술 풀리다보니 팀 분위기도 좋아졌고 그것이 끝까지 이어졌다.”
최정 대 판윈뤄의 LG배 32강전 대국. 최정이 불계승을 거뒀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신아오배 통합예선전에 굳이 여자부 출전을 마다하고 일반부 출전을 고집했다. 이유가 있나.
“LG배처럼 남자 기사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싶었다. 바둑에서 남녀를 구분 짓는 것이 싫다. 그런 구분 자체를 불식시키고 싶다. 내가 일반기전 타이틀을 따내면 아마 인식이 많이 바뀔 것이다. 바둑이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빨리 일반기전 타이틀을 따내고 싶다.”
―꿈의 무대라는 한국바둑리그에 주전으로 지명됐다.
“젊은 기사들의 입단 후 첫 목표는 한국바둑리그 출전이다. 목표를 이뤘으니 당연히 기분 좋다. 열심히 두겠다. 초반이 중요하다. 주전이라지만 단체전이기 때문에 연패를 당하면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개막식 인터뷰에서 신인왕을 노려보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신인왕 조건은 나를 포함해 2명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목표를 수정했다. 승률 60%를 달성하고 싶다고 써 달라(웃음).”
여자바둑리그 우승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지은 최정이었지만, 오후 열린 한국바둑리그 개막전에서는 박정상 9단에게 쓴맛을 봤다. 과연 남녀가 함께 겨루는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최정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다.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