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벽에 금이 계속 가고 있어요. 건물이 무너질까봐 불안한데 자주 찾는 단골 손님들이 여기로 오니 쉽게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 소재의 한 건물 1층에서 자영업을 하는 A 씨는 균열이 일어난 벽을 보여주며 건물 붕괴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건물 벽의 균열뿐만 아니라 건물이 기울어짐에 따라 문이 잘 열리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기자가 A 씨를 만나고 있는 순간에도 바로 옆 가게는 이삿짐을 싸는 등 건물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A 씨는 “건물 바로 옆에 새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 건물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A 씨의 말대로 해당 건물 바로 옆에는 9층짜리 아파트 건물이 다 지어져 분양신청을 받고 있었다. 군청에 따르면 아직 준공 신청은 되지 않은 상태였다.
20cm 정도 기울어진 경북 울진 소재의 한 다가구주택.
건물 세입자 등은 건물이 기울기 시작한 이유로 옆 건물의 신축 공사를 지적했다. 1층에서 자영업을 하는 A 씨는 “바로 옆에 아파트 건물이 지어지면서 이 건물이 기울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경 옆 건물은 해당 건물과 매우 근접한 위치에서 공사가 시작됐다. 실제로 이 건물은 신축건물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두 건물의 이격거리는 10cm 정도로 보였고 기울어지는 건물이 닿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간이식으로 20여 개의 짧은 나무막대가 두 건물 사이에 위태롭게 덧대어져 있었다.
인접해 있는 두 건물이 닿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막대로 고정해 놓은 모습.
남 씨는 옆 건물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대한산업안전협회에 의뢰했고, 신축 건물이 해당 건물의 기울어진 현상에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신축 건물주 역시 조사를 의뢰했고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지반이 침하됐고 균열이 심해 8~20cm까지 기울어져 있었다는 것. 안전등급은 B~E등급이 나왔다. 신축 건물의 건축으로 건물이 기울어진 것이 증명된 것이다.
대한산업안전협회 관계자는 “기울기의 정도가 20cm라는 것은 건물의 높이를 고려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붕괴가 될 수 있는 정도이고 대피를 해야 하는 수준”이라며 “B~E등급이면 부분적 폐쇄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건축을 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건물 안전등급 의뢰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는데 이 정도의 기울기는 예삿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공시설 및 민간시설에 대해 안전점검과 안전진단 등을 실시하고 재난우려가 있는 시설 등을 ‘재난 위험시설물’로 지정 및 관리하고 있다. 건축물의 상태를 A~ E까지 총 5단계로 구분 평가하고 있는데 D, E등급을 재난위험시설로 지정했다. A등급은 안전시설로 현재는 문제점이 없으나 정기점검이 필요한 상태를 의미한다. B등급은 경미한 손상이 있지만 양호한 상태로 간단한 보수정비가 필요한 정도를 말한다. C등급은 보조부재에 손상이 있지만 보통 상태로 보강이 필요한 상태다. D등급은 노후화로 인한 구조적 결함이 보이는 상태로 긴급한 보수가 필요하고 사용제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E등급은 가장 위험한 등급으로 시설물 사용을 금지하고 개축이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붕괴위험에 놓인 건물 관계자들은 울진군청 공무원들이 애초에 건축 허가를 결정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울진군청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신축건물의 건축을 허가했는데 적법한 지역에 짓겠다는데 허가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면서 “시간이 지나 11월이 돼서야 건물이 기울어진다고 건축을 중지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굴착을 할 때 문제가 발생되면 당연히 공사를 중지하고 조사를 하는 것인데 7층까지 지어진 상태에서 근거가 없이 공사를 중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건물의 건물주들은 소송을 진행하다 문제의 건물의 재건축에 대한 합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 씨는 “건물의 지반 검사에서부터 감정평가가 이뤄지는데 수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들었고 보상을 위한 합의가 아직 진행 중”이라며 “건물주와의 합의가 끝나지 않은 데다가 아파트 분양이 많이 돼 입주를 해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을텐데 위험성이 많이 알려져 주민들이 이를 알고 분양을 하지 않을 수 있어 기사가 나가는 게 곤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축건물의 건물주는 “소송까지 온 마당에 더 이상 복잡해지는 것은 싫다. 합의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