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율이 높았던 수원시 팔달구 지동이 벽화 그리기 사업으로 밝아졌다.
“‘오원춘 사건’이 터진 다음에 동네 분위기가 확 안 좋아졌었는데 이렇게 벽화를 그려놓으니 낡지만 따뜻한 마을 느낌이 나서 좋더라고요. 바뀐 동네 분위기를 참고삼아 직접 아크릴 물감을 사서 우리 미용실 벽과 천장에도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어요.”
범죄율이 높은 지역으로 알려진 수원시. 수원시가 이런 오명을 벗고 안전하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2011년부터 시작한 ‘마을 르네상스 사업‘은 많은 일반인들과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수원시 마을 르네상스 센터 관계자는 “벽화 그리기 사업은 그동안 우범지역으로 꼽히던 수원시의 환경개선과 이야기 공동체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수원시에서도 유독 범죄율이 높던 지동의 강력범죄 발생률은 2010년 304건에서 2015년 182건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숲을 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지난해 기준 수원시 팔달구의 범죄 발생 건수(1만 7493건)는 경기지역 평균(9875건)에 두 배가량이다.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에도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불안에 떠는 이유다.
지은 지 50년이 넘었다는 점집의 한 무속인은 “꽃 그림처럼 화사한 걸 그려달라고 했는데 우중충한 사람 그림을 그려놓으니 애들이 밤에 지나갈 때 무섭다고 해 옆 교회는 민원을 넣고 페인트로 벽화를 덮었다”며 “원래 대낮에도 대문을 못 열어놓는데 얼마 전에는 방심하고 열어뒀다가 웬 정신 나간 사람이 불쑥 들어와서 3시간 동안 떠들고 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시에서 진행 중인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들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9살부터 줄곧 지동에 살았다는 50대의 공업사 주인은 할 말이 많은 듯 일단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동이 재개발 지정 구역으로 묶였고 수원화성 때문에 건축물 높이 제한이 있어 개축이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마을이 슬럼화(Slumism)됐다”며 “벽화 사업이나 CCTV 추가 설치 모두 필요한 사업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재개발 지정을 취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력범죄 발생 이후 지동에는 벽화 이외에도 CCTV와 비상벨 등의 안전장치들이 추가 설치되었다.
이어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노후화된 집이 싼값에 나오다보니 조선족이나 불법 체류자 등 저소득 계층이 많이 모여드는 것도 마을 치안이 나빠진 원인”이라며 “딸이 남문 쪽에서 귀가하던 중에 2번이나 성추행을 당해 한동안 직접 데리러 갔다”고 털어놨다. 전단지를 제작하는 일을 한다는 한 주민도 “사건이 발생한 뒤 상가들이 확실히 밤에 문을 일찍 닫는 것 같다”며 “지역의 이미지가 안 좋다보니 지동이라는 말 대신 ‘수원시장 옆’ 등으로 표현해 달라는 고객들도 많다”고 말했다.
물론 오원춘 사건 이후 여러 가지 시도가 이루어지며 동네가 확실히 안전해진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그 원인으로 벽화를 꼽기보단 CCTV 설치와 순찰 증회 등에 의한 변화라고 느끼고 있었다.
지난해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법 질서 실천구역’에 벽화길이 조성되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지역은 2014년 발생한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용의자 박춘봉의 전 거주지로 알려진 매교동. 지동에서 불과 1.6km 떨어진 한적한 마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것은 벽화가 시작되는 골목 입구에 세워진 ‘법질서 실천 지역’이라는 표지판. 지난해 동사무소와 법무부가 매교동 7개 권역에 조성한 벽화길은 아직 선명한 빛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벽화에 대해 묻자 대개 “마을이 밝아진 느낌이 들어서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떤 식으로든 ‘강력범죄’와 마을이 연결되는 게 탐탁지 않다는 입장도 있었다. 벽화골목 인근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관계자는 “그 사건 때문에 집들이 거래가 안 된다”며 “어떤 식으로든 범죄와 마을이 연관 지어지는 게 못마땅하다”고 불평했다.
지난 2월 강력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의 한 주택가에 도색작업이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의 한 주택가. 구도심이어서인지 도색한 지 얼마 안 돼 윤이 나는 원색 벽화가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난 2월 이곳에서 목사 겸 교수인 아버지가 중학생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집 안에 시신을 방치한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이 발생했다. 지나가던 한 주민은 “시에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예쁘잖아요. 그 집 바로 앞에 가로등도 새로 달아준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곳의 벽화는 사건 발생 직후 ‘밝고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부천시청 관계자는 “시장님의 특별 지시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처음에는 4채만 칠했다가 지난 5월 새마을협의회에서 10여 채를 확장해 더 칠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업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범죄 예방이라는 벽화 그리기 작업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50대 중반의 송 아무개 씨는 “그 집 근처 몇 곳에 도색 작업하고 가로등 하나 다는 걸로 안전한 마을을 만들었다고 홍보하는 것은 겉치레에 불과하다”며 “심지어 벽화가 어떤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 그 구역에만 칠해져 있어 전체적인 통일성도 해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주민도 “진짜 필요한 건 비상벨, 가로등과 같은 실질적으로 안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안전장치”라고 거들었다.
실제로 인근 골목들을 돌아다닌 결과 꽤 많은 CCTV가 눈에 띄었지만 비상벨 등의 안전장치들은 보이지 않았고 가로등이 고장 난 채로 방치된 곳도 있었다.
정규상 한국공공디자인학회장은 범죄예방의 대안으로서 벽화 사업에 대해 “여러 지자체들에서 범죄 예방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벽화 그리기 사업을 유행처럼 시행하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큰 가시적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유지·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거나 감천문화마을이나 이화마을의 사례처럼 관광객 때문에 주민들이 몸살을 앓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회장은 최고의 셉티드(CPTED·범죄를 줄이기 위한 도시환경 설계 기법) 방안으로 주민들에 의한 자연스러운 감시를 꼽았다. 그는 “골목을 중심으로 창이 나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골목을 중심으로 담벼락이 있어 자연감시가 더욱 힘들다”며 “담을 허물고 가지치기를 하는 등의 노력으로 자연감시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혜리 인턴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