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설현이 역사인식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다.한국방문위원회는 홍보대사인 설현의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설현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외쳤다. 지민 역시 안중근 의사를 얼굴을 향해 “긴또깡”이라고 소리쳤다. 둘의 외마디는 온라인 공간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누리꾼들은 “정말 개념 없는 무식에 충격먹었다”며 설현과 지민을 질타했다.
최근 한국방문위원회는 공식홈페이지와 SNS에서 설현의 사진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이민호 씨도 홍보대사를 맡고 있지만 설현의 사진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일각에선 “한국방문위원회가 비난 여론을 의식해 설현 사진을 삭제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대해 한국방문위원회 관계자는 “평소 홈페이지 롤링 배너를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있다. 다른 홍보대사의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하기도 하는데 시기가 맞아 그 이미지를 바꾼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방문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1월 6일 설현과 이민호를 나란히 한국 방문의 해(2016~2018) 홍보대사로 위촉한 바 있다.
‘연예인 홍보대사’는 양날의 검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지속적으로 설현과 같은 스타들을 홍보대사로 위촉해왔다. 정부는 홍보대사 임명을 통해 정책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각 부처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다. 반면 유명 연예인이 구설수에 휘말리면 난처한 입장에 처하기도 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우리라고 방송에서 설현 씨가 그렇게 말할 거라고 예상했겠나. 설현 사건이 터졌을 때 정말 당황했다. 설현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홍보대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연예인들은 소속사하고도 엮여 있기 때문에 해촉하기도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민폐’ 연예인 홍보대사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법무부 홍보대사를 맡았던 가수 박봄은 2014년 의사 처방없이 복용이 금지된 암페타민 밀반입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당시 법무부는 박봄이 마약 사범 수사선상에 올랐는데도 홍보대사직을 해촉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에도 가수 이승철을 ‘공익신탁’ 초대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하지만 이승철은 2013년경 한 방송에서 “전과 9범에 대마초로 감방 두 번 갔다왔지만 최고의 가수로 살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승철은 1989년부터 공연 수익금으로 심장병 어린이를 지원하고, 2010년부터 아프리카 최빈국 차드에 매년 1개씩 학교를 건립하기로 한 후 현재까지 4개 학교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공익 활동을 하는 그가 새로운 기부제도인 공익신탁 홍보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연예인 홍보대사가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 정부와 공공기관의 홍보대사 선정기준이 ‘주먹구구식’이기 때문이다. 한국방문위원회 관계자는 “동남아시아 해외팬 인지도 조사 정도만 하고 있다. 선정을 위한 객관적인 지표들은 없다. 다만 문체부와 협의해서 정한다”고 밝혔다.
문체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오점을 남기지 않고 몇 년 이상 활동을 했고 좋은 일을 했어야 하고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특별히 정부가 기준이 있겠나. 무보수가 중요하다. 아무래도 돈을 들여서 하면 우리 마음대로 고를 수가 있지만 돈을 안 들였기 때문에 연예인 홍보대사를 통제할 수가 없다”고 보탰다.
그러나 정부와 공공기관이 연예인 홍보대사에게 고액의 모델료를 지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14년 이노근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중앙정부 및 공공기관들이 연예인 홍보대사에 지급한 모델료는 70억 3380만 원이었다.
2010년부터 2년간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홍보대사를 맡았던 가수 이승기는 5억 7000만 원을 벌어 가장 많은 모델료를 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배우 조재현(2008~2014년)도 4억 9500만 원을 벌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배우 임현식도 6년간 4억 8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국민의 혈세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해당 정부와 공공기관은 모델료가 과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5억 7000만 원을 지급한 것은 많은 돈이 아니다. 그 때 이승기는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다른 기업과 같은 조건으로 CF 촬영 하고 봉사활동 참여하면 매년 5억 이상을 줘야 했다. 최소한의 모델료를 준건데 하도 얘기가 많아서 지금 홍보대사인 달샤벳은 무보수로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임현식 씨는 현재도 한 해 7000만~800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다른 홍보대사인 정미선 아나운서나 오상진 전 아나운서는 2000만 원 내외로 받고 있다. 공단은 전국에 조직이 200여 개 정도의 지사와 지역 본부가 있다. 조직이 전국 팔도에 다 퍼져 있는데 홍보대사들이 직접 내려가서 행사를 해주는 부분이 있다. 워낙 거리가 말고 행사가 잦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무보수로 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연예인 홍보대사의 과도한 모델료를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미 올해 예산 집행이 시작됐기 때문에 내년부터 예산편성지침에 넣을 계획이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 연예인 홍보대사 선정은 각 부처의 자율적인 권한이기 때문에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다. 다만 모델료가 과도하다는 점은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설명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