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재판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전북 전주지방법원 제2호 법정 앞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재심청구 재판을 보기 위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 재판이 시작됐고 강도치사 범인으로 몰렸던 최 아무개 씨, 임 아무개 씨, 강 아무개 씨 등이 피고인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첫번째 증인은 사건의 피해자인 최 아무개 씨(여)였다. 사건의 피해자가 피의자로 지목됐던 이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석에 선 것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최 씨는 여전히 17년 전인 과거에 갇혀있었다. 최 씨는 증인석에서 17년 전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최 씨는 “당시 방에 아이 아빠와 아이와 셋이서 자고 있었다. 대문이 고장나서 열려 있는 상태였는데 3년 전부터 문을 열고 살았던 터라 누군가가 한밤중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강도가 눈을 가리고 손을 묶었고 ‘소리 지르면 네 새끼하고 서방하고 죽여 버리겠다’며 협박을 했다. 자고 있는 아이가 깨어나면 돌발상황이 발생할까봐 묶인 손으로 아이를 안고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당시 범인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범인과 유일하게 대화를 했던 당사자다. 범인에게 협박을 당했고 패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등의 대화를 했던 것이다. 최 씨는 이때의 범인 목소리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범인은 경상도 말씨를 쓰고 있었고 가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강도들은 장롱 등을 뒤져 250여 만 원 상당의 현금과 패물 등을 훔쳤다. 이 사건으로 최 씨는 시어머니를 잃었다. 강도들이 다른 방에 있던 최 씨의 시어머니인 유 할머니의 입을 막는 도중에 유 할머니가 사망한 것. 최 씨는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경찰서를 찾았고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진술을 했다.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3명이 억울한 옥살이를 주장하고 있다. 17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는 소송이 진행됐다. 사진은 전주지법 전경.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최 씨의 진술 이후 세 명의 범인이 강도 치사 혐의로 구속됐지만 최 씨의 증언과 매우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최 씨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경상도 말투를 쓸 수 없었던 전라도 삼례 토박이들이었다. 당시 경찰은 “절도 등의 비슷한 범행 전과가 있는 주변의 불량 20대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3명이 범행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최 씨는 당시 피의자들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지금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최 씨는 “나쁜 놈들 얼굴이 궁금했고 당시 들었던 목소리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경찰한테 피의자들 얼굴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경찰은 무섭게 뭐하러 보냐며 보여주지 않았다”며 “나중에 이들 중 한 명인 임 씨 목소리를 들었는데 사건 당시 들었던 목소리 톤과 말투와는 전혀 달랐다. 그때 들었던 경상도 말투는 전라도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삼례 친구들을 직접 보고 목소리를 확인했다면 지금까지 17년 전의 괴로운 상황을 설명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삼례 친구들의 인생이 꼬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친구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최 씨는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삼례 3인조가 진범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히려 재심을 청구하는 피고인들보다 최 씨가 더욱 강력하게 이들의 무고를 주장했다. 최 씨가 잘못 진술한 것과 이들의 진술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상세하게 진술했던 것인데 경찰이 이를 토대로 범인을 만들어낸 것이 괘씸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 씨는 당시 도난당한 현금을 40여 만 원이라고 진술했는데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다시 확인해보니 실제로 도난당한 현금은 10만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 따르면 삼례 3인조는 40여 만 원을 훔쳤다고 자백했다. 범인들의 자백이 최 씨의 진술과 일치하는 것이다.
또 최 씨는 강도들이 목에 칼을 대고 협박을 했다고 진술했다. 눈을 가려 보이지는 않고 차가운 것이 목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 씨의 진술처럼 삼례 3인조 역시 당시 칼로 최 씨를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나중에 당시 사용된 흉기는 칼이 아님이 밝혀졌다.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맞다면 당시 협박했던 도구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그들의 진술은 이번에도 최 씨의 잘못된 진술과 일치한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과 관련해 억울한 옥살이를 주장하는 3명(가운데부터 오른쪽 끝)과 피해자 유족이 지난 5월 3일 전주지법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삼례 3인조로 불리는 임 아무개 씨(37), 최 아무개 씨(37), 강 아무개 씨(36)는 입을 모아 경찰들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들은 검거되는 과정에서 중학교 졸업 이후 3~4년 만에 서로를 처음 본 사이였다. 이들은 현장검증 때 삼례 나라슈퍼에 처음 갔다고 했다. 범행을 재현하는 현장검증 장소에 처음 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대목이다.
이들 가운데 두 명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고 장애를 가진 부모를 대신해 불우한 가정을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삼례 3인조 중 한 명인 최 아무개 씨는 어릴 적에 머리를 다쳐 지적장애 3급진단을 받았다. 최 씨는 증인석에서 받침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도 했는데 과거 최 씨의 진술서에는 오자가 없었다.
최 씨는 “당시 경찰이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밖으로 나오게 해서 긴급체포해갔다. 경찰서에 가서 할머니를 죽였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를 알지도 못하고 사망 사실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범행을 부인했다”며 “경찰은 사실대로 말하라고 손으로 머리를 때리고 지하실에 데려가 경찰봉으로 발바닥을 때렸다. 온몸이 마비되는 것처럼 아팠고 몸이 덜덜 떨렸다. 너무 아파서 허위자백을 하고 말았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최 씨는 “재판 전 국선변호인에게도 강도짓도 하지 않았고 할머니를 죽이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지만 국선변호인은 범행을 인정해야 형이 줄어든다고 했고, 인정하지 않으면 무기징역을 살아야 한다고 해서 겁이 나 허위자백을 했다”며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절대로 하라는 대로 허위 자백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임 씨 역시 억울하게 수감됐다고 말했다. 임 씨는 “범행을 저지른 적이 없었지만 다들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포기했다. 국선변호인조차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마라. 범행 부인하면 형이 더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감옥에 가서 자살시도를 한 적도 있다”면서 “형사들은 목수였던 아버지가 사용했던 드라이버와 공구들이 범행 현장에서 쓰였던 도구의 용도로 압수해갔다”고 말했다.
최 씨의 동창인 강 씨 역시 한글을 읽고 쓸 줄 몰랐다. 강 씨는 오히려 수감 이후 재소자들로부터 한글을 배웠다. 강 씨는 “경찰서에 가자마자 형사들이 험악하게 ‘할머니 죽였지?’라고 물어 집에 있었다고 하니 형사가 ‘산에 파묻어버리겠다’며 자술서를 써왔다. 한글을 몰라서 자술서를 쓸 수 없었다. 써진 자술서 내용을 보려고 해도 못 보게 했고 형사가 내 손을 잡고 강제로 지장을 찍었다”며 “범행을 부인하면 형사들이 돌아가면서 손, 발, 등짝을 때렸고 주변에 여러 명의 순경들이 이를 보고 있었다. 조사 당시 친구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이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강 씨 역시 재판 전 국선변호인에게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애원했지만 국선변호인은 ‘이러면 곤란하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이들이 수감 중이던 지난 1999년 11월 부산지방검찰청은 진범을 찾게 된다. 강도치사사건과는 별개로 부산 3인조의 필로폰 투약 혐의를 조사하던 중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이 범인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 이들의 범행을 자백받은 부산지검은 사건을 전주지검으로 이송한다. 강 씨는 수감 중에 진범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 씨는 조사를 위해 예전에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마주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이때 피해자 최 씨는 부산 3인조의 목소리를 확인했고 사건 현장의 목소리와 99% 일치하는 것을 확신했다. 또 부산 3인조의 진술은 최 씨의 잘못된 진술과 일치했던 삼례 3인조의 진술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부산 3인조는 최 씨가 도난당한 패물의 디테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삼례 3인조는 그릴 수 없었던 최 씨 집 구조 역시 정확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했던 최 아무개 검사는 부산 3인조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부산 3인조의 진술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었다. 사건 발생 여덟 달 만에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삼례 3인조는 강도치사 혐의로 3~6년 동안 수감됐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던 지난 17년 동안 삼례 3인조와 피해자 최 씨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들이 감옥에서 나온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억울한 누명은 벗겨지지 않았다. 삼례 3인조의 최 씨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00년 6월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삼례 3인조는 “그동안 억울해서 재심 청구를 하기도 했지만 기각이 됐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피해자 최 씨는 “시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남편과 사이가 나빠졌다. 사건 이후 바로 삼례를 떠났지만 그 후 저녁시간에는 집밖을 나가지 못했다”며 “삼례 친구들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하다.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이 친구들이 억울한 인생을 살고 있어 가해자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신문기일에는 경찰관 A 씨가 증인으로 나왔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A 씨는 “재심 청구인들에게 조사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사건담당 검사는 지난 신문기일에 이어 이날도 증인석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진범이 증인으로 나타나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다. 부산 3인조 가운데 한 명인 이 아무개 씨(48)가 지난 신문기일에 참석해 “친구들과 익산에 가서 놀던 중 돈이 떨어져 인근 삼례의 슈퍼에 들어가 강도짓을 했다”고 털어놓은 것. 이 씨는 “경찰과 검찰에 ‘우리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는데도 들어 주지 않았고 더 이상 떠들지 말고 조용하게 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날 최후변론에서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은 돈이 없고, 배경이 없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 쓴 사건이다. 진범이 나타났는데도 공판검사는 왜 이 사건이 왜곡되고 잘못됐는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검사 역시 당시 현장검증 때 경찰들에게 왜 재심청구인들을 폭행했는지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은 16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재판부가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국민이 이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지켜보는 만큼 재심은 반드시 개시돼 사법정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나고 여기저기에서 박수 소리가 나왔다. 박수를 치는 이들 가운데에는 지난 1972년 춘천에서 경찰 간부의 딸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간 복역했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정원섭 씨(82)도 있었다. 재심 여부의 결정은 7월 초에 날 것으로 보인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