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1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9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스피드스케이트 500미터에서 남자일반부에 출전한 의정부시청 이강석이 역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 ||
2007년 이강석이 세계선수권대회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을 때 빙상연맹은 ‘반짝’ 들썩였다. 쇼트트랙에 밀려 관심조차 끌지 못했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세계신기록이 수립된 탓에 매스컴의 집중 취재를 받았고 주인공 이강석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인터뷰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그 열기는 잠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강석은 이전처럼 비인기종목 선수로 생활했고 간간이 들리는 수상 소식은 ‘화제’보단 ‘단신’으로 취급받았다. 이번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금메달 또한 2년 만에 정상 탈환이라는 값진 타이틀이 붙었음에도 WBC대표팀에서 연일 승전보를 날리는 한국야구대표팀에 밀려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등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며 ‘국민 동생’으로 부각되는 것과 달리 스피드스케이팅의 기록 행진은 그에 비해 한층 ‘감’ 떨어지는 반응이지만 정작 이강석은 ‘별로 신경 안 쓴다’는 태도다.
“어쩔 수 없잖아요. 현실이 그런 걸. ‘우리한테도 관심과 응원 좀 보내주세요’라고 외친다고 한들 먹히겠어요? 그래서 올림픽 금메달이 중요해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스타도 되고 대접도 받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때까진 조금 서운해도 꾹 참고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어요.”
이강석한테 이번 대회는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의 실력을 재평가하는 무대였다. 지난해 9월 왼쪽 허벅지 근육이 1cm 정도 찢어지면서 훈련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그 후 참가했던 월드컵시리즈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는 바람에 이강석은 내심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캐나다 전지훈련을 앞두고 중요한 시기에 부상을 당했어요. 다른 선수들은 전훈 동안 자신의 기량을 테스트하고 보완하는데 전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야 했으니까 속으로 많이 답답했죠. 한 달 반 정도 훈련을 못하고 쉬기만 하다가 지난 1월 초부터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는데 스케이트 타면서도 감각이 돌아오지 않아서 무척 힘들었어요. 때마침 (이)규혁이 형은 월드컵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과 1000
m에서 은메달을 따는 등 연거푸 메달을 목에 걸었어요. 마음이 편치만은 않더라고요.”
▲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아, 이강석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구나’ 싶었죠. 15위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 인생이 참 재미있는 게 별 볼 일 없었던 시절엔 28위 하다가 20위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1등 하다가 15등으로 떨어지니까 죽을 맛인 거예요. A급 레벨에서 놀다가 B급으로 내려가니까 진짜 스케이트 타기 싫더라고요. 한 마디로 얼굴 팔렸죠.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안 들었어요.”
이강석은 자신의 성적 부진을 부상 탓으로 돌리기 싫었다고 한다. 부상도 실력이란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틀 위에서만 머물던 선배 이규혁이 부러웠단다.
“정말 잘 타는 선수는 별다른 슬럼프가 없어요. 큰 기복없이 꾸준하게 가는 거죠. 규혁 형이 그렇잖아요. 그런데 전 부상이란 이유로 바닥까지 내려가고 말았어요. 항상 올라가기만 해봐서 그런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러다 2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100m와 500m에서 월드컵 랭킹 1위인 중국의 유펭통을 물리치고 2관왕에 올랐죠. 그제야 비로소 자신감이 회복됐습니다. 모두들 유펭통이 1등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제가 그걸 깨트린 거예요. ‘역시 난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이강석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시원시원한 대답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자칫 그를 잘 이해 못하는 사람은 ‘건방지다’거나 ‘싸가지 없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강석은 “잘나갈 때 건방 떠는 거지, 밑에 있을 땐 건방 떨 수 있는 거냐?”면서 “워낙 솔직하게 표현하는 탓에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하고 ‘똘끼’ 있다는 얘기도 듣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신세대다운 당찬 면모를 나타냈다.
일곱 살 연상인 선배 이규혁과 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이강석은 두 사람의 실제 친분에 대해 묻자, ‘서로 안 좋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쿨하게 대답한다.
“제가 처음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는 규혁이 형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한국의 최고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인데다 어렸을 때부터 롤모델로 삼았던 선수였는데 어떻게 쉽게 쳐다보겠어요. 말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포스가 있었거든요. 토리노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규혁이 형이랑 많이 가까워졌어요. 절 제대로 봐 주셨고 인정을 해주셨죠. 물론 규혁이 형 입장에선 제 존재가, 또 제 도전이 부담스럽고 신경 쓰이실 거예요. 10여년간을 간판 스타로 인정받았던 선수를 제가 잡았잖아요. 그러나 저 또한 언젠가 후배의 도전을 받을 것이고 또 그 후배로 인해 밀려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형한테 미안하지 않아요. 세월은,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이강석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m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데 대해 심적 부담감을 토로했다. 4년 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선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동메달을 획득할 거라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마음 편히 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그러나 진짜 ‘사이즈’ 큰 선수는 그런 부담을 이겨내고 메달을 따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만약 부담감에 자폭한다면 그 정도의 ‘사이즈’밖에 안 되는 선수인 거죠. 제가 유럽 선수들에 비해 하체 길이는 짧지만 스타트와 순발력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거든요. 남은 시간동안에 제 장점을 더욱 더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강석은 인터뷰 내내 ‘사이즈’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만큼 남자다운 기질을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목표를 부와 명예라고 잘라 말하는 이강석. 부모의 도움 없이 운동 생활하면서 강남에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장만하는 게 꿈이라는 이색 목표도 덧붙인다. 대학 때부터 남다른 용돈 관리로 목돈을 손에 쥐어봤던 이강석은 지금도 수입의 대부분을 펀드와 주식에 투자하며 탁월한 재테크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잘 살던 집안에 온통 빨간딱지가 붙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돈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성공에 대한 집착도 강했고요. 만약 집안이 계속 부유했다면 운동은 하다 말았을 것이고 ‘날라리’처럼 생활했을 거예요. 돈의 소중함, 절박함을 느껴서 그런지 전 운동을 통해 돈을 벌고 싶었고 아직 어린 나이지만 재테크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거죠.”
이강석의 동생 이강호도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동생 얘기를 하던 이강석은 “비인기 종목에서 어설픈 성적으로 어설프게 선수 생활 끝내면 정말 남은 인생은 암흑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올림픽 금메달이 내 남은 선수 생활의 색깔을 좌우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잠시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